“생생한 기사 오래 기억 남더라”
제주의 창간독자 김옥
등록 : 2014-03-11 14:38 수정 :
“축하한다”는 말이 몇 번이나 오고 갔다. 창간독자인 김옥씨는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은 <한겨레21>에, <한겨레21>은 ‘인생 시즌2’의 두 번째 생일을 맞은 그에게.
그는 꼭 2년 전인 2012년 3월6일 제주도 서귀포시에 뿌리내렸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생활을 했지만 늘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아내와 며느리와 엄마라는 무거운 자리로부터, 집과 차와 자녀 교육에서 끊임없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서울로부터, 무엇보다 그 지긋지긋한 상황에 익숙해져가는 자신으로부터. 섬 생활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사회복지사 일을 하며 창업에 대비해 염색과 규방공예 기술도 틈틈이 익혔다. 발로 뛴 끝에 멀리 북쪽으로는 한라산이, 남쪽으로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작은 집도 얻었다.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바쁜 나날 속에서 <한겨레21>은 남들과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끈이 돼줬다. “서울에 살 때는 해외에서 일어난 일에도 분노했어요. 그런데 제주는 자연이 좋아서 그런지 세상일이 나와는 상관없이 느껴지곤 해요. 그래도 <한겨레21> ‘만리재에서’ 한 장을 읽으면 우리가 어떤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어 좋아요.” 최근엔 기자들이 직접 취업 전선에 뛰어든 ‘취업 OTL’ 시리즈를 마음으로 읽었다고 했다. “OTL 시리즈처럼 생생한 기사가 기억에 오래 남더라고요. 대구 지하철 참사 9주기를 다룬 기사(제900호 ‘3300일의 악몽’)처럼 대형 사건의 후유증을 좇은 기사도 그렇고요. ‘아,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며 스스로 환기하게 되더라고요.” 제주에 내려가 안타까운 점도 있다. <한겨레21>을 나누는 일이다. 서울에선 ‘아무나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하철에 일부러 두고 내리곤 했는데, 제주에는 지하철이 없어서다. “나만 보기 아까워요. 제주에선 몇 권 모이면 가끔 동네 청년을 가져다주는 정도죠.” 이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안타까운 일이 하나 더 있다. 제주에 불고 있는 ‘투기 바람’이다. 중국인은 마을을 통째로 사들이고, 육지 사람들도 아파트와 땅 재테크에 뛰어들고 있단다. “몸은 안 오고 돈만 오고 있어요. 자연은 망가지고 땅값은 뛰니까 제주에서 평생 살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프죠.”
제주도민이 된 지 2년이 됐지만 그는 아직도 “관광객 같다”고 했다. 제주를 떠올리면 마냥 설레고 기대가 된단다. <한겨레21>도 창간호를 만들던 떨림과 두근거림으로 계속 그에게 다가가고 싶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