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말뚝’박은 공익근무요원

379
등록 : 2001-10-09 00:00 수정 :

크게 작게

이주의 독자/ 소방파출소 공익근무요원 정규상씨

전북 군산시 지곡동 소방파출소의 공익근무요원 정규상(24)씨는 ‘말뚝’을 박을 결심을 굳혔다. 실제 군생활보다는 덜하겠지만 이런저런 잡일에 치이면서 고생하다보면 공익근무기간이 끝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보통이다. 정씨의 이 특이한 결심은 그래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소방관은 그냥 불만 끄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이곳에 들어와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무의탁 노인들을 병원으로 데려다주는 일 등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도와줘요.” 그는 소방파출소에서 근무하며 인생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다고 한다.

정규 소방관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하는 일은 고작 소방차가 들어오면 소방호스를 감고 각종 뒤처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옆에서 보기에도 소방관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통 9급 경찰공무원은 3교대가 일반적인데, 소방서는 격일제로 근무한다. 뿐만 아니라 일을 하다보면 사고가 날 때도 많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그래도 자신이 해볼 만한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선 무엇보다 보람있는 일이고 국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무기간이 끝나면 소방공무원 시험을 봐서 아예 눌러앉을 생각이다.

정씨가 <한겨레21>을 보기 시작한 것은 지곡동 소방파출소에서 일하면서다. 파출소에서 정기구독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주간지를 접하게 됐다. “원래 잡지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요, <한겨레21>은 참 좋은 느낌을 줬어요. 신선하고 도움이 되는 기사들도 많은 것 같고….” 그가 특히 즐겨읽는 난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와 문화면이다. 정씨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역사이야기나 문화 관련 책들을 보면 정신없이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런 기질이 <한겨레21>을 읽는 데도 나타난 것이란다. 그는 처음 접해보는 <한겨레21>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독자엽서라는 걸 써봤다. “난생처음 이런 글을 써서 그런지 많이 설렙니다. 두서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셨다면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이주의 독자’로 자원까지 했다. 그로선 대단한 용기를 낸 셈이다.

정씨에게는 공익근무요원 외에 ‘대학생’이라는 직함이 하나 더 있다. 일하면서 야간 전문대학 부동산학과에 등록한 것이다. 낮엔 일하랴, 밤엔 공부하랴 바쁘고 힘들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소방관 아저씨들이 많이 이해를 해주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 수 있어 오히려 즐겁단다. 하긴 인생의 목표가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인 만큼 주경야독의 생활을 즐길 만도 할 듯싶다. 2003년 2월 정씨는 공익근무를 마침과 동시에 학교를 졸업한다. 이미 공인중개사 시험을 치렀고, 앞으로 소방공무원 시험을 남겨두고 있다. 그렇다면 2003년에는 두개의 진로를 놓고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천만에요. 전 소방관이 될 겁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