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의 징후적 공간 읽기’는 마치 한 편의 문학평론 같았다. ‘저항의 거점’이던 학생회관 건물의 역사를, 비평가가 텍스트를 분석하듯 ‘진정성’과 ‘허무’라는 키워드로 해석해냈다. “건축물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그곳을 이용하는 자들의 ‘공간적 실천’”이라는 관점하에, 한 건물의 역사를 학생운동의 발자취로, 나아가 각 시대가 갖는 ‘정조’의 변천사로 파악한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러나 기사의 결말이 ‘허무와 권태감’만으로 끝난 것은 아쉽다. 오늘의 캠퍼스에도 실천과 연대를 향한 치열한 고민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말미에 인용된) 보들레르에게도 권태란 “우울한 무관심의 결과”임과 동시에 새로운 창조의 동인이 되지 않았나. 온라인 독자편집위원회 리뷰는 www.facebook.com/groups/DOK21/에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이세영의 징후적 공간 읽기’는 마치 한 편의 문학평론 같았다. ‘저항의 거점’이던 학생회관 건물의 역사를, 비평가가 텍스트를 분석하듯 ‘진정성’과 ‘허무’라는 키워드로 해석해냈다. “건축물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그곳을 이용하는 자들의 ‘공간적 실천’”이라는 관점하에, 한 건물의 역사를 학생운동의 발자취로, 나아가 각 시대가 갖는 ‘정조’의 변천사로 파악한 것이 인상 깊었다. 그러나 기사의 결말이 ‘허무와 권태감’만으로 끝난 것은 아쉽다. 오늘의 캠퍼스에도 실천과 연대를 향한 치열한 고민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말미에 인용된) 보들레르에게도 권태란 “우울한 무관심의 결과”임과 동시에 새로운 창조의 동인이 되지 않았나. 온라인 독자편집위원회 리뷰는 www.facebook.com/groups/DOK21/에서 더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