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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기타리스트를 꿈꾸는 신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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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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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가톨릭대 신학대학생 정인성씨

“나는 아직 나이가 어려 투표권이 없지만, 투표를 할 수 있게 되면 소중한 한표를 날려보내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래저래 나는 한겨레를 사랑한다.”

지난 1월20일, 졸업을 한달 앞둔 고3 학생이었던 그는 ‘당신의 한표는 10만원짜리’라는 총선관련 기사를 읽고 이런 ‘조숙한’ 엽서를 보냈다. ‘지금은 어떤 길을 가고 있을까’라는 강한 호기심을 느끼며 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신학대에 다니고 있다는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거렸다. 엽서 내용에서 아주 똑똑하고 착실한 학생이 돼 있을 것 같은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1학년 정인성(19)씨. 종로 근처의 한 찻집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는 그를 보고 약간 당황스러웠다. 노랗게 물들인 정씨의 머리가 유독 돋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생들이야 머리를 염색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노랑머리의 신학생이란 좀 뜬금없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리에 앉자마자 “머리 염색이 이상한가요? 신부님들이 멋있다고 칭찬해 주시던데요”라며 미소짓는 그의 표정엔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다. 갑자기 든 생각 하나. ‘이거 취재가 재미있어지겠군.’

정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겨레21>을 구독했다. 한겨레 주주인 부모님이 <한겨레21>을 구독신청한 뒤부터 매주 기사를 빠짐없이 읽었다. 소외된 이들의 삶을 많이 다루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특히 ‘20에서 21로’처럼 공부가 되는 기사들이 많다는 점이 좋았다. 요즘은 쾌도난담을 즐겨 읽는다. “논리적으로 뒷받침되는 삐딱한 시각”에 공감한다고 한다. 그는 특히 문화면에 할말이 많은 것 같았다. “소재에서 고급예술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대중문화들을 많이 다뤘으면 좋겠어요. 특히 ‘마이너’로 취급받고 있는 대중문화 말이에요.” 그가 대중음악에 대해 긴시간 얘기하는 것을 보고 혹시 음악에도 관심이 많냐고 넌지시 물어봤다. 그러자 현재 베이스기타를 연습하고 있으며, 내년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밴드에 들어가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노랑머리의 기타리스트가 꿈인 신세대. 그는 왜 신학을 전공하게 됐을까?

“젊은 시절 아버지가 가장 공부하고 싶었던 학문이 신학이었죠. 어머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시고요. 성직에 입문할 생각은 아직 하지 않지만 인간을 탐구하는 이 ‘신학’이란 학문은 정말 재미있어요.” 지금은 신학공부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지만 사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가톨릭대에 지원하게 됐다. 수능시험을 보고 전공을 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던 시절, 전자오락실에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가톨릭대 안내서를 보자마자 진로를 결정지었단다.


한 시간여 얘기를 하면서 엉뚱하고 통통 튀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엉뚱한 신학생이 또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곁에 있으면 즐겁다. ‘자유로움’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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