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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왜 ‘100%항균’ 제품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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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09 13:43 수정 : 2013-09-0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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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균 제품은 왜 모두 ‘99.9% 항균’인가요? ‘100% 항균’일 수는 없나요? 씻는 걸 가장 싫어하는 기자가 답변해주세요.(고3 여학생)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단언컨대, 저는 <한겨레21>에서 가장 깔끔한 기자입니다. 근거가 있습니다. 다수의 기자가 불타는 마감으로 사무실에서 풍찬노숙하며 몸에 번식하는 세균의 개체 수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금요일 아침에도, 저는 ‘세균 박멸’을 외치며 집에서 반드시 목욕재계하고 출근을 하곤 합니다. 다만 마감 때만 되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제가 집에서 어떤 몰골을 하고 있는지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사무실에서만큼은 가장 깔끔한 제가 이번 질문의 답변을 맡게 된 건, 단지 전문 용어로 ‘아다리가 맞아서’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질문이 ‘팩트’(사실)인지부터 확인해봤습니다. 대형마트로 달려가 항균 제품들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현장 취재 결과 실제 100%는 없었습니다. ‘항균 99.9%’ ‘살균 99.9%’ ‘유해균 99.9% 제거’ ‘감기독감 바이러스 99.9% 제거’ ‘99.9% 건강살균’.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모두 99.9%를 내세우고 있더군요.

각종 항균 제품을 만드는 LG생활건강에 따져 물었습니다. “혹시 항균 100%, 살균 100% 제품을 만들 기술이 없는 것 아닙니까?” 민망한 답변이 돌아옵니다. “항균과 살균의 구분부터 하시지요.” 그럼 구분을 해보겠습니다. 항균은 특정 제품에 균이 침투하거나 활동하지 못하도록 물리적·화학적 처리를 하는 걸 뜻합니다. 반면 살균은 이미 제품에 묻은 균을 죽이거나 생활력(증식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살균이 ‘균의 제거’라면 항균은 ‘균의 예방’인 셈이지요. 그러니 부엌이나 화장실에 눌어붙은 때를 벗겨내는 주방·욕실 세제는 살균 제품, 혹시 모를 균에 대비하는 손소독청결제나 특수 수세미·도마 세제는 항균 제품으로 불러야 정확한 표현인 겁니다.

이제 본론에 들어갈 자격이 생겼습니다. 의미는 살짝 달라도 항균력과 살균력에 100%를 쓰지 않는 이유는 같습니다. 애경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미생물인 세균은 개체 수가 100 이하이면 육안으로 보이지 않아 사멸된 것으로 간주된답니다. 그러니 항균(살균) 실험을 할 때 남은 균 수를 100으로 가정하고 항균력(살균력)을 계산한다고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균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확신할 수 없으니깐요. 수치상 항균력 100%가 나올 수 없는 건 이 때문입니다.

이쯤에서 호기심이 돋습니다. 100%든 99.9%든 항균·살균 제품을 부지런히 써서 균을 최대한 박멸하고 예방하는 게 좋긴 한 걸까요. 한국감염관리본부 진단의학연구센터 이동구 연구원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일상적인 균에 감염되더라도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균은 면역체계를 자극시키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즉, 과도하게 균을 제거하려다보면 몸이 너무 예민해지면서 아토피 피부염 같은 자가면역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인체 면역체계가 자기 몸 안의 물질도 적으로 간주해 공격하게 되는 것이지요. 징글징글했던 균이 새삼스레 고맙게 느껴집니다. 저도 이제부턴 덜 깔끔해져야겠습니다. 금요일 아침인 지금부터 말이죠.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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