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 생각이 있는 겁니까?”
등록 : 2001-09-19 00:00 수정 :
이름에서 짐작되듯 그는 딸 많은 집의 네째딸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난 박후남씨는 영리하고 재능 많은 소녀였으나 그 시절 다른 집 딸들처럼 대학 진학이 어려웠다. 간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3년간 간호사로 근무한 뒤에야 배움의 뜻을 펼칠 수 있었다. 장학금 받아 생활비 쪼개면서 공부하던 20대 때 독일인 법대생 한명이 그를 쫓아다녔다. 30년 세월이 흘러 세 자녀를 둔 박씨는 ‘Dr. Hoonam Seelmann’이라는 이름으로 독일과 스위스 신문에 글을 쓰는 프리랜서가 됐다. 한국문화도 소개하고, 전공인 철학과 문학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왕성한 글쓰기 활동은 쉰줄에 접어든 그의 새로운 날개이다.
교환교수로 근무하는 남편 실만 교수를 따라 6년째 스위스에 살고 있는 박씨가 한국소식을 접하는 창은 <한겨레21>. 인터넷보다는 종이로 보는 게 좋아 꼬박꼬박 구독해 본다. 이번에 서울에 온 목적은 <한겨레21> 370호 성역깨기에 소개된 여성성직자문제를 취재하기 위해서. 담당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조심스레 협조를 타전했던 그는 한달 뒤인 8월 말 서울로 날아와 불교계와 기독교계 여성성직자들을 만나고 있다. 기자가 한 ‘협조’란, 취재원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게 전부였지만 그는 “모든 정보가 아쉽다”며 터무니없이 고마워해 기자를 몸둘 바 모르게 하기도 했다.
한국을 떠난 지 30년, 어느 틈에 말도 어눌해지고 입맛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를 기른 공동체의 폭폭한 정감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한겨레21>이 우리 시대의 ‘사라진 업종’으로 취급받는 농민들의 사연을 자주 다뤄주길 바란다. 안타깝고 애틋하고 미안하기 때문이다. “내 이름과 지난 삶에 한국 여성들의 사연이 아주 많이 담겨 있다”는 말에서 엿보이듯 그의 50인생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유럽에서 살면서 공부하고 일하고 아이 키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한국이었으면 아예 불가능했을 것 같아요. 가끔 유럽에서 만나는 내 또래 아줌마들 중에는 ‘나는 어느 여자대학을 나왔다’는 이야기를 제일 먼저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어요. 고질적인 학벌주의와 함께 여성으로서 재능을 사회화하지 못하고 묻어버린 현실이 둘다 담겨 있죠. 우리 딸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21>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지는 못하지만 의미있는 통계와 수치를 만나면 빠짐없이 스크랩해둔다. 여성과 지식계에 관련된 내용이면 더 자주 손이 간다. 68세대인 남편과 살다보니 주로 좌파들과 어울리게 된다는 박후남씨는 “돈도 버는 좌파가 되라”고 <한겨레21>에 충고한다. 구독기간이 끝날 때 확인전화 한번 없이 발송을 중단해, 몇주째 영문도 모른 채 책을 못 받아본 적이 있었다고. “돈 벌 생각이 있는 거냐”는 날카로운 지적과는 달리 말끝에 베어무는 특유의 웃음(웃을 때 얼굴부터 빨개지는)은 다정했다. 사진을 찍기 전 그는 “<조선일보>에서 글로벌시대 관련 독자칼럼난에 글을 써달라고 해서 보낸 일이 있는데, 스위스 생활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청탁에 응한 것이니 나중에 혹시 실리게 되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달라”고 귀띔했다. 원 별말씀을.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