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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시사주간지 읽는 게 바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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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9-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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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함안종합고등학교 강소미양

찬바람이 불면 초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가을의 낭만이라고? 그건 먼 미래의 이야기다. 시시각각 ‘습격’해오는 수능시험에 속수무책인 수험생들에게 가을하늘은 잿빛이다.

경남 함안군 함안종합고등학교 3학년인 강소미(19)양의 책상에는 가지런히 놓인 각종 참고서와 함께 <한겨레21>이 쌓여 있다. 그가 <한겨레21>을 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식당을 하시는 어머니가 정기구독을 신청했는데, 배달이 되면 가족 중 누구보다 먼저 소미양이 펼쳐든다. “요즘 수험생들은 시사문제도 많이 알아야 돼요.” 한시가 급한데 독서할 시간이 있냐고 묻자 그는 정색을 하고 반론을 편다. 예전과 달리 수능시험 언어영역 등에서 시사적인 글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없어 신문은 자주 읽지 못하지만 한주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한겨레21>이 있어 걱정이 없단다. 그가 최근 가장 분노하며 읽은 기사는 372호 살인적인 초과근무에 시달리는 철도노동자를 다룬 ‘기차가 밟고 간 절규’다. “우리 철도노동자들은 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주먹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죽음을 담보로 한다면 억만금을 준다 한들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강양은 그 기사를 읽자마자 이런 내용을 담은 독자엽서를 보내왔다. 마침 친구가 철도대학을 가고 싶어했기 때문에 더욱 가슴 아프게 읽었다고.

‘초과근무’는 철도노동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강양이 학교에 등교하는 시각은 아침 7시 반,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시간은 밤 10시다. 물론 곧바로 잠자리에 들진 않는다. 최소한 12시까지 책상에 앉아 참고서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가 지원하고자 하는 과는 유아교육학과나 사회복지학과다.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유아교육학과에 가고 싶어했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 사회복지학과에도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장래희망도 유치원 교사다. “그런데 공부는 잘 못해요. 제가 장녀인데 동생들한테 부끄러워요.” 공부는 잘하느냐는 기자의 짓궂은 질문에 그는 무척 쑥스러워했다.

강양은 처음 이주의 독자로 모시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놀랐단다. “이런 시골 학생이 보낸 독자엽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세심하게 다 읽어본다는 것을 알고 고마웠어요.” 강양의 친구들은 ‘매스컴’을 타게 됐으니 한턱 내라고 벌써부터 난리란다. ‘이주의 독자’란이 그의 한달 용돈을 축내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그 나이 또래의 누구나 그렇듯 강양도 대학 들어가면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남자친구도 사귀고 싶고, 집에서 독립해보고도 싶고, 공부를 잘해 장학금도 받고 싶고. 이 소박한 꿈을 위해 그는 지금 잔인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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