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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왜 실연을 하면 가슴이 아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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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13 20:25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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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가슴앓이’를 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비유인 줄 알았는데, 제게 이런 일이 닥치자 정말 흉부 쪽에서 찌르는 듯한 아픔이 느껴져 당황했습니다. 왜 그럴까요?(독자 손희제님)

한겨레 자료
실패한 사랑이 육체적 통증을 유발하는 사례가 아주 없는 건 아니더군요.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기자 ㄱ군이 조심스럽게 털어놓은, 정말이지 ‘가슴 아픈’ 연애 사는 이렇습니다. 때는 20세기 말. ㄱ 기자는 입대를 앞두고 있었답니다. 사랑하 는 그녀를 홀로 남겨둬야 하는 미안함과 조급함이 결국 문제였네요. “나를 기다 리진 못할 거야”라는 때이른 실망과 “제발 끝까지 기다려달라”는 맹목적 기대를 동시에 그녀에게 쏟아냈답니다. 당연히 차였지요.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갑자기 가슴이 아프더랍니다. 독자님의 표현대로 ‘찌르는 듯 한’ 통증이라기보다는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뼈가 아팠고, 손으로 누르면 더 아팠다”고 합니다. 병 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지만 “군대 가기 싫어서 그러느 냐”는 핀잔만 들어야 했답니다. 결국 그의 흉통은 육 군훈련소의 얼차려 프로그램이 선사하는 온몸의 근 육통과 함께 ‘희석됐다’고 하는 슬픈 이야기.

서두가 길었습니다. 답을 드려야겠군요. 대략 세 가지의 학설이 가능해 보입니 다. 우선 ‘꾀병설’. 애인을 이렇게 놓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든 붙잡아야 한다 는 절박함이 휘몰아칩니다. 동서고금에 이런 비련의 주인공은 없었습니다. 어 라?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묵직하게 아픈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몸과 마음이 그대로 믿어버리는 겁니다.

오, 진정하세요. 당연히 동의 못하시겠죠. 두 번째 학설이 준비돼 있습니다. 이름 하여 ‘빡침설’. 첫 번째 학설과 달리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독자님이나 ㄱ 기자의 경우처럼 임상적 경험이 보고되고 있으니까요. 결국 고도의 스트레스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에게 물었 습니다. 심혈관계 질환 전문가였지만, 자신은 없어하더군요. 익명을 전제로 그는 “실연의 상처 등 단기간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게 되면 호흡곤란, 두근거림, 가 슴 통증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심근병증이 나타날 수는 있다”며 “하지만 그 원인 을 뚜렷하게 확정하기는 어렵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호전되는 경우가 대 부분”이라고 합니다. 특히 역류성 식도염 환자는 가슴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네요. 금연, 금주,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휴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 지 않을 무병장수의 비결이겠죠. 실연을 당했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금주하세요.

마지막 학설입니다. 바로 ‘자해설’. 혹시 실연 직후 대성통곡을 하지는 않았나 요? 후회와 자책 속에 자신의 가슴을 세게 내려치진 않았나요? 그렇다면 의심 해볼 만합니다. 목이 쉰 겁니다. 또는 주먹으로 가슴 부위에 반복적으로 너무 큰 충격을 줬던 겁니다. 당연히 목이 붓거나 가슴이 아프겠지요. 어차피 실패한 연 애란 백에 아흔아홉은 아니더라도 열에 아홉은 쌍방 과실 때문일 터. 지나친 자 책은 건강에 해롭답니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제가 너무 메마른 사람처럼 보 이기는 하네요. 하지만 진짜 결론은 따로 있답니다. 까짓 실연의 상처가 대수일 까요.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껏 사랑하세요. 봄날은, 언젠가는 가버린답니다.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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