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 아스트라제네카 노조 사무국장 조재성씨
“전 창간호부터 구독했는데요. 이주의 독자로 안 써주더라고요.” 한국을 방문한 통신원을 만나는 자리, 함께 온 풍채좋은 사내가 슬쩍 이런 소박한 ‘민원’을 했다. 통신원의 후배라고 자신을 밝힌 이 경상도 사내는 이야기하면 할수록 ‘진국’이었다. “아이고, 농담이었어요.” 서둘러 쑥스러워하는 그의 손을 잡고 사무실로 가서 사진부터 찍었다. “이게 웬 떡인가” 싶었던 기자의 속마음을 알기나 했을까.
다국적 제약회사 아스트라제네카 노동조합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재성(37)씨. 시사주간지는 보수 일색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는 <한겨레21>이 창간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독신청을 했다. 조씨는 <한겨레21>은 회사원들에게 지식과 교양의 자양분이라고 단정짓는다. 가장 즐겨보는 난도 이상수의 동서횡단,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등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글들이다. “회사원 생활을 하다보면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아요. 시사주간지를 통해 여러 가지 살아 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죠.” 비판도 좀 해달라고 하자 “고생하시는 분들한테 뭐라고 하겠어요”라며 머뭇거리더니 따끔한 비판을 늘어놓는다. 지면을 읽다보면 예상된 논조가 보인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시야를 좀더 깊고 넓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너무 뻔한 이야기만 늘어놓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가 많다고. 책 읽고 술 먹는, 지극히 80년대적(?)인 취미를 가진 그의 책상에는 언제나 <한겨레21>이 놓여 있다.
조씨는 몸으로 80년대를 겪은 사람이다. 학창 시절 대구의 한 노동선교단체에서 계속 활동했고, 졸업하고 난 뒤에는 공장에 투신하기도 했다. 모든 가치가 붕괴하던 90년대 초, 밤을 새워 고민하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선택한 길을 자신도 가기로 결심했다. 91년 활동을 정리하고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한 것이다. ‘안정’을 택했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치열한 경쟁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그를 짓눌렀다. 게다가 불투명한 영업관행이나 불안한 미래도 조금씩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고 살고 싶었어요.” 93년 조씨는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올해 처음 단체협약을 했고, 외국계기업에서는 보기드물게 노조 홈페이지까지 만들었다. 노조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때문에 홈페이지는 크게 성공을 거뒀고, 이후 다른 외국기업 노조에서도 홈페이지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현재로서는 자신이 사무국장으로 있는 노조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큰 삶의 목표라고.
“부조리하고 잘못된 부분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해요. 의지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아야죠.” 아무리 봐도 조씨의 ‘의지의 불씨’는 그리 쉽게 꺼지지 않을 것 같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