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2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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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 : 2013-01-10 11:22 수정 : 2013-01-11 10:20
J씨 혁신을 원하는 유권자 
민주통합당은 자기혁신 의지가 없었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호남의 지지 기반만큼은 포기하지 못한다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정희의 경제 성장이 가져온 성과는 외면하고 도덕적 한계만 지적하는 방식도 여전했다. 지금의 50∼60대는 박정희 경제성장의 일원이었다는 훈장을 가슴에 품고 산다. 비도덕적 경제성장이었다는 지적은 그들 인생이 비도덕적이었다는 비난과 다름없다. 유권자들이 ‘안정’을 원한 적은 없다. 언제나 ‘혁신’을 보여준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민주당이 보여준 혁신은 새누리당의 빨간 잠바 입기보다 못했다.
이정주 주거래 은행 바꾸기 같은 
대부분 사람들은 대학 입학이나 입사 초기에 주거래 은행을 선택당(?)한다. 문제는 처음 거래한 은행을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표지이야기 ‘잿더미에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더 인간은 관성에 길들여진 존재일지 모른다. 주거래 은행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혜택은 거기서 거기인 데 비해, 꽤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대선에서 진보세력은 50대에게 기꺼이 심리적 발품을 팔 수있는 비전과 혜택을 제시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황소연 살아 있는 존재는 불안하다 
열 명이 모이면 열 가지 분석이 쏟아진다. 찍은 칸도 이유도 달랐지만, 모두를 관통하는 매직키가 있음은 알 수있었다. 무엇을 말미암든, 살아 있는 존재는 모두 불안하다는 것이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불안은 안정에 대한 불안을 이기지 못했다. 이제 한국에서 50~60대는 누구보다 ‘핫’한 세대로 떠올랐다. 다른 연령대와는 삶을 대하는 공식 자체가 다르다. 그러나 문제가 어렵다고 손놓을 수는 없다. 가치관의 교류가 절실하다. 설득과 일방향 소통, 그 기로에 5년의 시간이 주어졌다.
 
 
백대현 대탕평에 쌍용 없다 
대선 결과는 우리나라 국민의 모습을 정확히 드러냈다고 판단된다. 표지이야기 ‘대탕평에 MBC·쌍용도 있나요?’를 보며 마음이 복잡했다.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꿈은 잠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민주화는 한판 승부가 아니라는 말처럼 이제 당선인이 올바른 정치를 하도록 힘껏 감시하는 게 주어진 일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