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은 겉으로는 청소노동자의 노고에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황이라의 스머프 통신’의 대학생들처럼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우려는 이는 거의 없다. 동시에 대학생들은 노동자와 연대하려고 쌍용차 시위에 참가하겠다는 학생회를 정치적·좌파적이라고 비난한다. 결국 대학생들이 청소노동자에게 보이는 호의는 오히려 나는 절대로 그들과 같은 ‘노동자’가 될 리 없다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대다수 대학생들이 보여주는 청소노동자에 대한 호의가 불편한 이유다. 황소연 B급이 아니었던 이야기 내 이야기가 아닌 차별에 공감하기 힘든 시대다. 또 많은 경우 차별 자체보다는 당사자가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 자극적인 부분에 방점이 찍힌다. B형간염 보유자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기사는 누구나 겪을 수 있기에 더 예민해져야 하는, 차별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다. 분리와 혐오에 대한 집착은 구성원들이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폐쇄적인지 보여주는 척도다. 다름을 틀림과 동일시할 때 혐오증은 만들어진다. 사회가 차별의 ‘수직감염’을 잉태해서는 안 된다.
대학생들은 겉으로는 청소노동자의 노고에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황이라의 스머프 통신’의 대학생들처럼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우려는 이는 거의 없다. 동시에 대학생들은 노동자와 연대하려고 쌍용차 시위에 참가하겠다는 학생회를 정치적·좌파적이라고 비난한다. 결국 대학생들이 청소노동자에게 보이는 호의는 오히려 나는 절대로 그들과 같은 ‘노동자’가 될 리 없다는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대다수 대학생들이 보여주는 청소노동자에 대한 호의가 불편한 이유다. 황소연 B급이 아니었던 이야기 내 이야기가 아닌 차별에 공감하기 힘든 시대다. 또 많은 경우 차별 자체보다는 당사자가 얼마나 궁지에 몰렸는지, 자극적인 부분에 방점이 찍힌다. B형간염 보유자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기사는 누구나 겪을 수 있기에 더 예민해져야 하는, 차별의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다. 분리와 혐오에 대한 집착은 구성원들이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폐쇄적인지 보여주는 척도다. 다름을 틀림과 동일시할 때 혐오증은 만들어진다. 사회가 차별의 ‘수직감염’을 잉태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