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의미를 새로 배우다
저는 사실 ‘보수’라고 하면 우선 좋지 않은 이미지만을 떠올렸습니다.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보수’라는 말에 걸맞지 않은 사람들이 그저 자신들의 호칭 정도로 써왔으니까, 그 의미가 혼동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사람들이 쓰는 ‘보수’의 의미는 그저 자기의 기득권만을 지키려는 저급한 부류로밖에는 통용될 수가 없을 듯합니다. 이번호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읽고 진정한 의미의 ‘보수’라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생명처럼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진보와 보수는 동전의 양면, 음양의 관계가 되어 서로 상생하는 좋은 모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보수가 없다는 게 문제군요…. 우리의 현실이 보수적 지식인들조차 진보주의자로 만들었다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저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무명독자
우리 안의 차별의식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일본의 첫 재일동포 변호사의 성공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정말 눈물겨운 성공이었습니다. 한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이 사시에 응시할 수 있으며 붙는다고 하더라도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이 공무 관리직에 오를 수 있을까?” 남의 나라를 비판하기에 앞서 항상 우리나라를 먼저 생각해보면 우리가 남을 비판할 처지가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부모가 외국인이면 그 아인 외국인, 외국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외국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은 얼마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돈있는 외국인은 항상 대우를 받지만 돈없이 노동으로 돈벌러 온 외국인은 미개인 취급받기 십상입니다. <한겨레21>이 이 문제를 다뤄주실 순 없을까요? 인터넷 독자 군에서 얻은 병?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군인입니다. 바쁘게 군생활하고, <한겨레21> 읽고 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전역을 40일 정도 남기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그 중독성이 심해지더군요. 지금은 볼펜으로 줄쳐가며 읽고, 다 읽고 나선 복습삼아 또 읽습니다. 그런 뒤에는 분야별로 중요한 부분을 기록해둡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후임병들이 혀를 끌끌 찰 정도죠. 앞으로 철책과 함께 <한겨레21>이 서 있는 사진도 찍어볼까 합니다. 의미있지 않을까요? 시사주간지가 드디어 민족의 허리에 이르다…. 김태현 병장/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대체복무제, 다른 나라에게 배우자 사람은 완전하지 않으며 누구나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보고 배워 개선해나간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나라들을 보고 배워 법들을 개선해나간다면 더 나은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개선해야 할 법 중 하나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시대와 세계의 흐름을 따르는 일이며 양심과 종교와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입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에 국회의원들과 인권단체들과 교수들과 언론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적극 찬성하지는 못할지라도 반대하는 행위는 옳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고, 남의 나라는 남의 나라’라는 식의 생각은, 좁고 근시적인 안목을 갖고 있는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일일 것입니다. 박재현/ 인터넷 독자 알립니다 370호 논단 ‘우리안의 복거일’중 “중복, 말복의 무더위에 복씨가 주장한 영어공용화론을 생각하면 정말 복장이 터질 정도로 답답하기만 하다”는 문장과 관련, 필자 최연구씨가 “희귀성씨인 복씨에 대해 모욕감을 주었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독자만화
우리 안의 차별의식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일본의 첫 재일동포 변호사의 성공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정말 눈물겨운 성공이었습니다. 한데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이 사시에 응시할 수 있으며 붙는다고 하더라도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이 공무 관리직에 오를 수 있을까?” 남의 나라를 비판하기에 앞서 항상 우리나라를 먼저 생각해보면 우리가 남을 비판할 처지가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태어나더라도 부모가 외국인이면 그 아인 외국인, 외국인 남자와 한국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외국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은 얼마나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돈있는 외국인은 항상 대우를 받지만 돈없이 노동으로 돈벌러 온 외국인은 미개인 취급받기 십상입니다. <한겨레21>이 이 문제를 다뤄주실 순 없을까요? 인터넷 독자 군에서 얻은 병? 최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는 군인입니다. 바쁘게 군생활하고, <한겨레21> 읽고 하는 사이에 시간이 흘러 어느덧 전역을 40일 정도 남기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그 중독성이 심해지더군요. 지금은 볼펜으로 줄쳐가며 읽고, 다 읽고 나선 복습삼아 또 읽습니다. 그런 뒤에는 분야별로 중요한 부분을 기록해둡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후임병들이 혀를 끌끌 찰 정도죠. 앞으로 철책과 함께 <한겨레21>이 서 있는 사진도 찍어볼까 합니다. 의미있지 않을까요? 시사주간지가 드디어 민족의 허리에 이르다…. 김태현 병장/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대체복무제, 다른 나라에게 배우자 사람은 완전하지 않으며 누구나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보고 배워 개선해나간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습니다.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나라들을 보고 배워 법들을 개선해나간다면 더 나은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개선해야 할 법 중 하나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시대와 세계의 흐름을 따르는 일이며 양심과 종교와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입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기에 국회의원들과 인권단체들과 교수들과 언론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적극 찬성하지는 못할지라도 반대하는 행위는 옳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우리나라고, 남의 나라는 남의 나라’라는 식의 생각은, 좁고 근시적인 안목을 갖고 있는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일일 것입니다. 박재현/ 인터넷 독자 알립니다 370호 논단 ‘우리안의 복거일’중 “중복, 말복의 무더위에 복씨가 주장한 영어공용화론을 생각하면 정말 복장이 터질 정도로 답답하기만 하다”는 문장과 관련, 필자 최연구씨가 “희귀성씨인 복씨에 대해 모욕감을 주었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독자만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