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가내수공업을 벗어나라
한겨레를 사랑하는 30대 중반의 디자이너입니다. 이번 독자청문회 기사를 읽고 제가 오해한 건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해한 대로라면 실망이 큽니다. 기사에 표지제작 시스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로 봐서 <한겨레21>의 디자인 시스템도 가내수공업적인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아트디렉터가 표지디자인 작업을 한다고 작업에 신경을 쓰고 있으면 잡지 전체의 아트디렉션이 될 리가 없죠. 저의 직책이 아트디렉터이기 때문에 정확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표지디자인류의 작업도 과거에 했기 때문에 그 작업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필요한지도 알고 있죠. 1주일마다 돌아오는 마감이라면 그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입니다. 이런 프로세스라면 <한겨레21>의 아트디렉터는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이건 영화감독이 포스터디자인 작업을 직접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일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외국잡지의 표지디자인을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봅니다. 참여한 인원 수와 디자인의 시스템이 다른데 이걸 어떻게 비교할 수 있습니까? 아는 사람 몇몇과 내부 직원이 대충 때우는 디자인은 가내수공업적인 양상입니다. 반면 사용할 이미지의 성격과 종류에 따라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선진국들의 디자인 시스템은 발전되어 있습니다. 제대로 된 디자인 시스템은 언제나 우리나라에 정착되려나…. 제대로 된 잡지를 만들고 싶은 회사부터 그런 작업을 해나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신병준/ 인터넷 독자
빨갛게 물든 식단은 싫어! 이번호 과학면 ‘이종찬의 건강 바로읽기’에서 우리의 음식문화에 대한 지적은 적절했습니다. 채식과 육식을 했을 때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한번 시도해보라는 아이디어가 정말 좋았습니다. 계속 빨갛게 변해가는 우리 식단에서 저 역시 맵고 짜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식생활을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러나 몇장 뒤에 이어진 음식이야기 ‘맵기에 더욱 시원한 면발’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뭔가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보기에 정말 먹음직스럽게 나와 있는 비빔냉면,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마음이 또 움직이는 기사를 보면서, 물냉면이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터넷 독자/ shiri@asiatex.co.kr 언론개혁, 몇수 앞을 보자 언론개혁으로 정국이 시끄럽습니다. 몇수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언론탄압이다, 언론개혁이다 하는 논쟁 속에 급기야 ‘홍위병’이라는 말까지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년 전 남북정상이 만났을 때보다 지금 더 큰 감동을 느낍니다. 제가 전후세대라서 전쟁의 아픔,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전 세대들과 공유하지 못하는 점도 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그동안 ‘밤의 대통령’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절대권력을 향유하던 자들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 같던 철옹성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100년이 지나야만 그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합니다. 100년 뒤 후손들이 지금 사태를 언론개혁으로 부를지 언론탄압으로 부를지는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바둑에서도 몇수 앞을 내다보고 두는 사람이 처음에는 수세에 몰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판 전체에서는 이기게 마련입니다. 언론들도 몇수 앞을 내다보고, 역사 앞에 떳떳한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강아롬/ 인터넷 독자
빨갛게 물든 식단은 싫어! 이번호 과학면 ‘이종찬의 건강 바로읽기’에서 우리의 음식문화에 대한 지적은 적절했습니다. 채식과 육식을 했을 때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한번 시도해보라는 아이디어가 정말 좋았습니다. 계속 빨갛게 변해가는 우리 식단에서 저 역시 맵고 짜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식생활을 되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러나 몇장 뒤에 이어진 음식이야기 ‘맵기에 더욱 시원한 면발’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뭔가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보기에 정말 먹음직스럽게 나와 있는 비빔냉면, 채 1분도 되지 않아서 마음이 또 움직이는 기사를 보면서, 물냉면이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터넷 독자/ shiri@asiatex.co.kr 언론개혁, 몇수 앞을 보자 언론개혁으로 정국이 시끄럽습니다. 몇수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언론탄압이다, 언론개혁이다 하는 논쟁 속에 급기야 ‘홍위병’이라는 말까지 나오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년 전 남북정상이 만났을 때보다 지금 더 큰 감동을 느낍니다. 제가 전후세대라서 전쟁의 아픔, 이산가족의 아픔을 이전 세대들과 공유하지 못하는 점도 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그동안 ‘밤의 대통령’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절대권력을 향유하던 자들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 같던 철옹성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100년이 지나야만 그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합니다. 100년 뒤 후손들이 지금 사태를 언론개혁으로 부를지 언론탄압으로 부를지는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바둑에서도 몇수 앞을 내다보고 두는 사람이 처음에는 수세에 몰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판 전체에서는 이기게 마련입니다. 언론들도 몇수 앞을 내다보고, 역사 앞에 떳떳한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강아롬/ 인터넷 독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