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문제는 국민의식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분석한 기사는 비슷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고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분석이 경제정책, 국제정세쪽에 치우친 감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아르헨티나의 노동운동과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관한 것이다. 노동운동은 얼마나 조직화되어 있으며 지도자들의 역량은 어떠하며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언론을 통해 알 수 없다. 아르헨티나 위기의 원인은 단지 경제정책에 국한될 수 없으며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슈퍼맨이 나타나 단칼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랄 순 없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인 하부계층의 의식수준이 성숙한가, 그들을 결집시키고 이끌어갈 수 있는 구조와 정신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경제공황도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이다. 하지만 하나의 역사적 사건 자체가 역사의 흐름을 크게 바꾸지는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건이 국민의 정신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민창/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기자도 인간이었군! <한겨레21>을 구독한 지도 발써 1년이 되어가네요. 워낙 시사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지금까지도 제 머리로는 많이 어렵고, 한번 쓱 보고마는 그런 일상적인 일들만 반복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번호의 ‘기자가 뛰어든 세상’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왜 여태 이렇게 재미있는 걸 몰랐을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 어디다 둘지 몰라서 방 한켠 상자 속에 무작정 모아두었던 <한겨레21>을 몽땅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곤 ‘기자가 뛰어든 세상’만을 골라 읽었죠. 그런데 읽을 때마다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기자도 인간이었다! 그것도 순수한…. ‘기자가 뛰어든 세상’ 없는 호가 가끔 있던데 다음호에 이 기사가 없다면 아쉬울 거예요. 너무 자주 뛰어들어 지치시죠? 힘네세요! 장미화/ 전남 고흥군 금산면 나를 깨우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중독됐다. 매주 화요일 가판대에 달려가 산다. 수요일이 돼야 서점에 깔리는데, 그건 못 기다리겠다. <한겨레21>을 통해 세상을 본다. 한 5년 정도 꾸준히 보고 있는데, 정말 멋지다. 아직 ‘초보 독자’인 나는 기사를 비판할 힘은 없고, 그냥 자세히 읽고 받아들이는 데 급급하다. <한겨레21>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위한 잡지라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영무 편집장님이 쓴 ‘적극적인 독자를 바란다’는 글을 읽고 반성을 많이 했다. 그래도 아직 능력이 짧아서 일단 받아들이고, 밀어주고 싶다. <한겨레21>의 소수에 대한 관심이 눈물나도록 좋아보인다. 반성하고 깨어 있게 도와준 이 시사주간지를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최미영/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동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마지막 희망 문화면 ‘토토로, 넌 잘돼야 해’를 읽고 착잡했습니다. 재패니메이션의 흥행 성패에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앞으로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데에 동의하기는 합니다만 어쩌다 우리 애니메이션이 이 지경까지 갔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고 신동우 화백께서 대한민국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만들었던 그 시절, 그리고 태권 브이가 악의 무리를 쳐부수던 그때만 해도 우리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일본과 대등했다고 봅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쇠락하게 된 시기는 역시나 국사독재시대인 것 같습니다. 만화는 저급문화로 퇴색돼갔고 애니메이션은 독재정권의 홍보물 내지 반공교육의 매체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해돌이 대모험>이나 <똘이장군> 등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가 지났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중흥을 외치며 만든 <돌아온 홍길동>은 왜색으로 떡칠을 해서 논란을 빚었고, 최근 그나마 기대를 모으던 <가이스터즈>는 청소년층을 겨냥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사의 무지로 유아용 시간대인 5시30분에 방영되다 중간종료됐습니다. 그리고 2001년 여름 우리 애니메이션계는 마지막 희망을 일본 애니메이션에 걸고 있습니다. 이상희/ 충남 공주시 반죽동
독자만화
기자도 인간이었군! <한겨레21>을 구독한 지도 발써 1년이 되어가네요. 워낙 시사에는 관심이 없었던 터라 지금까지도 제 머리로는 많이 어렵고, 한번 쓱 보고마는 그런 일상적인 일들만 반복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번호의 ‘기자가 뛰어든 세상’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왜 여태 이렇게 재미있는 걸 몰랐을까 하는 생각에 그동안 어디다 둘지 몰라서 방 한켠 상자 속에 무작정 모아두었던 <한겨레21>을 몽땅 꺼내들었습니다. 그리곤 ‘기자가 뛰어든 세상’만을 골라 읽었죠. 그런데 읽을 때마다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기자도 인간이었다! 그것도 순수한…. ‘기자가 뛰어든 세상’ 없는 호가 가끔 있던데 다음호에 이 기사가 없다면 아쉬울 거예요. 너무 자주 뛰어들어 지치시죠? 힘네세요! 장미화/ 전남 고흥군 금산면 나를 깨우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중독됐다. 매주 화요일 가판대에 달려가 산다. 수요일이 돼야 서점에 깔리는데, 그건 못 기다리겠다. <한겨레21>을 통해 세상을 본다. 한 5년 정도 꾸준히 보고 있는데, 정말 멋지다. 아직 ‘초보 독자’인 나는 기사를 비판할 힘은 없고, 그냥 자세히 읽고 받아들이는 데 급급하다. <한겨레21>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을 위한 잡지라는 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정영무 편집장님이 쓴 ‘적극적인 독자를 바란다’는 글을 읽고 반성을 많이 했다. 그래도 아직 능력이 짧아서 일단 받아들이고, 밀어주고 싶다. <한겨레21>의 소수에 대한 관심이 눈물나도록 좋아보인다. 반성하고 깨어 있게 도와준 이 시사주간지를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최미영/ 부산시 해운대구 재송동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마지막 희망 문화면 ‘토토로, 넌 잘돼야 해’를 읽고 착잡했습니다. 재패니메이션의 흥행 성패에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앞으로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데에 동의하기는 합니다만 어쩌다 우리 애니메이션이 이 지경까지 갔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고 신동우 화백께서 대한민국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을 만들었던 그 시절, 그리고 태권 브이가 악의 무리를 쳐부수던 그때만 해도 우리 애니메이션의 수준은 일본과 대등했다고 봅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이 쇠락하게 된 시기는 역시나 국사독재시대인 것 같습니다. 만화는 저급문화로 퇴색돼갔고 애니메이션은 독재정권의 홍보물 내지 반공교육의 매체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해돌이 대모험>이나 <똘이장군> 등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가 지났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중흥을 외치며 만든 <돌아온 홍길동>은 왜색으로 떡칠을 해서 논란을 빚었고, 최근 그나마 기대를 모으던 <가이스터즈>는 청소년층을 겨냥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사의 무지로 유아용 시간대인 5시30분에 방영되다 중간종료됐습니다. 그리고 2001년 여름 우리 애니메이션계는 마지막 희망을 일본 애니메이션에 걸고 있습니다. 이상희/ 충남 공주시 반죽동
독자만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