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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딴따라 공대생 인문학도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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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8-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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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대학원생 김성수씨

사진/ 김성수씨.
‘딴따라 공대생.’ 매일같이 실험으로 밤을 새우고 복잡한 공식을 줄줄이 암기하는 ‘건전한’ 공대생 주변엔 사회과학서적을 옆에 끼고 민중가요를 읊조리는 ‘아웃사이더’들이 있게 마련이다. 김성수(29)씨는 정확히 그 부류였다. 실험실보다는 교지편집실에서 밤을 새우고 즐겨 찾는 허름한 주점에서 기타를 퉁겨댔다. 워낙 고운 음색을 지닌 ‘배짱이’였던 탓에 그가 노래를 시작하면 여학생들의 ‘일치단결’된 시선을 받곤 했다. 김씨가 공대생의 터프한 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입학했다. 연세대학교 지역학대학원 중국학 전공. 드디어 먼길을 돌아 ‘인문학도’가 된 것이다. 대학원이라고 그의 ‘끼’가 사라질 리 만무하다. 입학하자마자 대학원신문사 기자로 활동했고 지난해에는 대학원 학생회장까지 맡았다. 그러면서도 할 공부는 다 챙겼으니, 인문학이 적성에 맞기는 맞나보다.

창간호부터 가판대에서 자주 사보곤 하던 <한겨레21>을 정식으로 구독한 것은 대학원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학생회 재정이 넉넉지 않아 고심 끝에 <한겨레21> 구독을 끊었다. 대신 자비로 정기구독을 신청해 학생회실에 비치해놓았다. 최근 인상깊게 본 기사는 ‘기자가 뛰어든 세상’의 금연학교 체험이다. “끊는다 끊는다 하면서 못 끊었는데, 기사를 보고나서 결심했죠. 담배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만리재에서’에 실린 글귀가 머리를 때렸어요.” 한 개비의 담배와 한개의 극우신문. 얼마 전 집안을 설득해 <조선일보>를 끊었고 이제는 담배까지 완전히 끊었으니, ‘만리재에서’의 글귀가 더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을 것 같다. 고정란 중에서는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본다. 한홍구 교수의 글 때문에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사학과에 들어가고 싶다는 소망까지 품었단다.

대학생활 중 그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대학원 학생회장을 맡았던 지난해다. 특히 그를 괴롭힌 것은 학내 성폭력문제였다. 100인위원회 성폭력 사례 공개가 있은 뒤, 학생회에 두건의 성폭력 사례가 접수됐다. 회의를 열어 한건은 성폭력으로 규정짓고 가해학생에게 피해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휴학하라는 권고를 했고, 나머지 한 건은 성폭력이 아니라고 결론을 지었다. 어떤 잣대로 성폭력인지 아닌지를 판별해야 하는지, 개인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한겨레21> 기사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과연 중국을 사회주의국가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 때문에 중국학을 전공하게 됐지만 박사과정까지 학업을 이어가지는 않을 생각이란다. 교지편집, 학내 언론협의회 활동, 대학원신문사 기자 등 “하던 도둑질이라” 졸업을 하면 언론계로 진출할 생각이다. 그의 목표는 바로 한겨레신문사. 특히 매체비평쪽 일을 맡고 싶다고 한다.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달라고 했더니 면접장에서 자신의 각오를 밝히듯이 말한다. “월급 적다고 힘들어하지 말고 신념을 갖고 열심히 일합시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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