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삽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소풍을 가면 항상 서오릉이나 서삼릉이었습니다. 신기한 건 주변 음식점들이 죄다 갈빗집이라는 겁니다. 대체 능 주변엔 왜 갈빗집이 많은 건가요? (aprilgirl@naver.com)
같은 은평구민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두 달 전쯤 차를 몰고 서오릉 앞을 지나오는데, 아내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듣고 보니 그랬습니다. 아내가 나고 자란 태릉 주변에도 유독 갈빗집이 많았으니까요. 심지어 왕족은커녕 내시 무덤 하나 없는 제 고향 광주에도 어릴 적 ‘홍능’이란 옥호를 가진 고깃집이 있었습니다. 능과 갈비, 대체 무슨 궁합일까요?
인터넷을 검색하다 ‘갈비문화원’이란 데를 찾아냈습니다. 왕갈비로 유명한 경기도 수원에 있더군요. 김종만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딱 떨어지는 답이 안 나옵니다. 대신 중요한 정보를 알려줍니다. 지금처럼 양념에 재어놓은 갈비를 불에 구워먹는 요리법이 일반에 소개된 것은 길어야 90년이 되지 않는답니다. 조선왕조가 망한 뒤 궁중 요리사들이 시중에 고급 음식점을 열면서부터라는데, 그전까진 소의 도축이 엄격히 통제돼 일반인들은 쇠고기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고, 당연히 조리법도 발달하지 않았다는군요.
이번엔 문헌 자료를 찾아봅니다. <조선왕릉의 비밀>이란 책이 눈에 띕니다. 책장을 들춰보니 간단한 언급이 있습니다. 예부터 왕릉 주변에선 능제 때 사용한 쇠고기를 일반 백성들에게 나눠주던 관례가 있었는데, 그 결과 능 주변에 살며 쇠고기 맛을 본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요리법이 생겨났다는 겁니다. 그럴듯하지만, 썩 신뢰가 가진 않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경기도 포천의 이동갈비나 전남 담양의 떡갈비는 대체 뭐란 말입니까? 게다가 홍릉과 태릉 말고는 능 이름을 단 갈빗집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습니다. 선릉갈비, 정릉갈비,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마지막으로 민속학자 주강현 선생께 물었습니다. “뭐, 거창한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볼거리가 많지 않던 시절엔 교외의 능 주변이 가장 쉽게 찾는 행락지였고,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자연스레 고깃집·갈빗집이 성업하지 않았겠느냐는 겁니다. 실제 신문 자료를 검색해보니, 능의 이름을 단 갈빗집은 1967년 서울 청량리에 문을 연 ‘홍능갈비’가 최초입니다. 근처에 홍릉이 있어 붙은 이름인데, 소갈비를 팔았습니다. 비싸지만 맛이 좋아 장안의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 사이에 명성이 자자했다 합니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 ‘태릉갈비’가 등장합니다. 태릉이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행락객이 몰리자, ‘홍능갈비’의 유명세에 착안한 능 주변의 배밭 주인들이 배나무 아래 평상을 깔아놓고 별다른 요리법이 필요 없는 돼지갈비를 팔기 시작한 겁니다.
1980년대 후반 소득이 증가하자 육류 소비량이 급속하게 늘어납니다. 자가용이 대중화되면서 서오릉·서삼릉 등 서울 근교의 능 주변에 대형 주차장을 갖춘 갈빗집이 경쟁하듯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는 능 이름을 단 갈빗집 옥호가 전국화되는 시기와 겹치는데, 내시는커녕 무수리 무덤 하나 없는 남도의 변두리까지 ‘능 갈비’의 명성이 알려진 것도 이즈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