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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하나님이 선물한 나의 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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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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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전신마비 장애인 최종진씨

나의 왼손

죄 많은 나를 치시어
많은 것을 잃어버리게 하셨지만
좋으신 하나님은 끝끝내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이렇게
글 쓸 수 있는 힘을 남겨주었네


최종진(45)씨의 왼손은 <나의 왼발>에 나오는 크리스티 브라운의 왼발만큼이나 특별하다. 그의 왼손도, 브라운의 왼발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의료보험조합에서 일하던 그가 오토바이로 출근하다 덤프트럭과 부딪친 것은 89년. 전신을 움직일 수 없는 그에게도 왼손의 신경은 살아남아 주었다. ‘나의 왼손’이라는 시는 무언가를 쓸 수 있게 해준 하나님께 드리는 절절한 감사의 기도이다.

학창 시절부터 시에 관심이 많았지만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96년부터다. 아내와 이혼하고 경남 양산의 노부모와 살면서 견딜 수 없을 만큼 공허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펜을 잡았다. 여든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그를 일으켜주면 왼손으로 펜을 붙잡고 힘겹게 한자 한자 써나갔다. 그는 그해 <한겨레21> 설 특대호 독자시단에 자신의 시가 실린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낸 시였다. 그뒤 최씨는 오로지 시만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졌고 최근에는 <그리움 돌돌 말아 피는 이슬꽃>(내일을 여는 책 펴냄)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시와 <한겨레21>이 그를 세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원래 한겨레신문사 창간주주였던 최씨는 96년 “<한겨레21>이란 잡지가 있더라”라는 말을 듣고 바로 구독을 신청했다. 특히 문화면과 정치면 기사를 좋아하지만 잡지에 나오는 모든 기사를 꼼꼼히 읽는 편이다. “약자의 시각에서 쓰여진 기사들이 너무 좋아요. 약자를 지켜주는 자세, 앞으로도 계속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일주일 내내 침대를 지키고 있는 최씨가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때는 일요일 오전뿐이다. 그를 보살펴주고 있는 어머니가 연로하다보니 휠체어에 태워 멀리 산책나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저 일주일에 한번, 방을 치우기 위해 그를 앞마당에 데려다주는 정도다. 좀더 멀리 산책을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 일을 도와줄 자원봉사자를 구하기도 여간 어렵지 않다. 일요일 아침, 그는 앞마당에 앉아 세상을 느낀다. 하늘도 보고, 나무도 보고, 바람도 느껴보고….

그러나 최씨는 외롭지 않다. 가끔씩 후원금을 보내오는 190명가량의 독자들을 위해 그는 <징검다리>라는 회보를 발행하고 있다. “도와주시는 분들께 감사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걸 계기로 아예 회보를 만들었어요.” <징검다리>의 모든 글은 그가 직접 펜으로 쓴 것들이고, 복사와 발송만 어머니가 도와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수원에 사는 독자가 최씨의 시를 읽고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my.dreamwiz.com/stepstone). 새 시집을 또 낼 생각은 없고 먼저 펴낸 시집을 계속 보완해나갈 생각이라는 최씨. 환경과 자연을 노래하는 그의 왼손이 점점 더 많은 사람의 가슴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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