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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만평’이 수난받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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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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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김진수 스튜디오’ 사장 김진수씨

“그땐 그랬죠.”

‘독자만화’란에서 가끔 만날 수 있는 김진수(40)씨는 만화에 관심갖게 된 계기를 묻자 ‘그땐 그랬던’ 대학 학보사 시절을 떠올렸다.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던 김씨가 학보사에 들어간 것은 만평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시사만평을 그린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학보사 건물에는 사복전경이 상주해 있었고, 좀 비판적인 만화다 싶으면 어김없이 동판을 긁어버렸기 때문에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나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땐 정말 냉혹한 언론탄압이 있었죠. 요즘 유력 일간지들이 할말 못할 말 다하면서 언론탄압 운운하는 걸 보면 가증스러워요.” 학교는 언제나 감시의 대상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이나 동아리 모임 등 학생들이 좀 모이는 곳이면 으레 사복전경이 나타나곤 했다.

운동판을 기웃거리던 그가 군에서 전경으로 차출되리라곤 친구들도, 스스로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자대배치를 받고 하늘이 노래진 것은 당연한 일. 게다가 그가 군생활을 한 85년부터 87년 10월 사이에는 6월항쟁이 끼어 있었다. 매일 같이 최류탄 냄새를 맡고 날아오는 돌에 부상을 입는 생활은 거의 지옥에 가까웠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대치상황에서도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동료나 후임들을 보면 뜯어말렸지만 그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20대 중반을 김씨는 그렇게 넘겼다.

김씨는 제대 뒤 학보사에서 만평을 그리며 틈틈이 사진을 찍어왔던 경험을 살려 93년 ‘김진수 스튜디오’라는 사진관을 차렸다. 생계에 쪼들리느라 찍고 싶은 사진만 찍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사진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가 <한겨레21>을 구독한 것은 95년부터다. 어떤 계기로 구독을 시작했느냐고 묻자,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라며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아마 이런 진보적인 잡지가 한국사회에 하나 정도는 있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지금까지 구독해 오면서 별 불만스러운 점은 없었다. “시사주간지는 뷔페 같은 거예요. 여러 기사들을 실어야 하다보니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겠죠. 하지만 뚜렷하게 견지해오고 있는 진보적인 시각이 맘에 들어요.” 최근 가장 인상깊게 읽고 있는 기사는 ‘이상수의 동서횡단’이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요즘 사회분위기에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게끔 해준다고 한다. 김씨는 잡지를 읽다가 말 그대로 “어느날 갑자기” 만평을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직업적인 만화가가 될 생각은 없지만 자신의 만화가 잡지에 실리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만족감을 느낀다.


그의 꿈은 어느 정도 여유가 되면 시골에 내려가 아름다운 자연을 필름에 담는 것이다. 전시회를 열 생각도 ‘작가’라는 명함을 내밀 생각도 없지만,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기 때문이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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