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 전신마비 장애인 한영석씨
전신마비 장애인 한영석(60)씨. 그의 하루는 조용하고 너무도 길다. 목 아래부터 전신이 마비되어 엉덩이에 욕창이 생길 정도로 종일 누워있어야 하는 그가 더딘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한겨레21>을 읽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잡지 한권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눈을 감고 한번 상상해 보자. 침대 옆에 친지에게 부탁하여 만든 엉성한 ‘특수독서대’가 있다. 간병인이 잡지를 오른쪽으로 경사지게 독서대에 올려놓는다. 수평으로 올려놓으면 눈이 피로해 도저히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욕창이 난 엉덩이 때문에 침대에 모로 누워서 한자 한자 천천히 읽는다. 한면을 다 읽고 난 뒤 끝에 고무를 끼운 막대를 입에 물고 책장을 넘긴다.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목에 힘을 주고 안간힘을 써도 수십번 실패를 되풀이 해야 한다. 일주일 동안 이 힘든 작업을 되풀이하면 얼추 한권의 잡지를 다 읽게 되고, 이어 다음호가 배달돼온다.
문학과 등산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한씨는 91년 10월 친구들과 산에 오르다 그만 실족을 하고 말았다. 자신이 다시는 두 다리로 서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 말 그대로 “죽으려고 발광”을 했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의 인생은 그 시점에서 다시 출발했다. 입에 막대를 물고 컴퓨터 키워드를 두드리는 방법을 익혔고, 평소 읽고 싶었으나 바쁜 사업일 때문에 읽지 못했던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한겨레21>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기 위해 아내에게 부탁해 정기구독하기 시작했다. 부피가 큰 신문은 독서대에 올려놓고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잡지에 실린 기사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샅샅이 읽지만, 특히 문화면을 중점적으로 읽는다. 최근에는 아시아 네트워크나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재미있게 읽는다고 한다. “너무 대단한 분들이죠.” 기자들에게 할말이 있으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며 웃음을 짓는다. 담당 기사량이 너무 많아서인지 전문성을 살린 글이 아쉬울 때가 있다고 살짝 토를 달면서.
최근 그는 엄청난 ‘사고’를 쳤다. 6·25 당시 전쟁고아의 삶을 다룬 <저 무서운 눈 앞에 그대들>(한솜출판사 펴냄)이라는 장편소설을 출간한 것이다. 이 소설은 학창 시절부터 문학청년이었던 그가 무려 5년 동안 막대를 입에 물고 한자 한자 찍어 완성한, 그의 말대로 “피눈물의 결정체”이다. “장애인 하면 으레 동정심을 일으키는 신앙간증이나 수필 같은 것만 쓰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에요.” 그는 서사를 잃어버린 시대에 좀더 큰 얘기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 6·25라는 소재를 택한 것은 그의 세대라면 공통으로 간직하고 있는 ‘원체험’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행복하고 누구의 동정도 바라지 않는다. 평생 붙들고 늘어져야 할 사명, 글쓰기가 있기 때문이다. 다음 소설도 이미 구상중이다. 박정희시대를 배경으로 대체역사소설을 쓰고 싶단다. “다친 게 차라리 잘됐어요. 안 그랬으면 게을러서 소설 쓸 생각도 못했을 거예요.”
생계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의 아내가 꾸려나가고 있다.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사람들이 힘들어도 참으라고 위로할 때면 “하나도 안 힘들어요. 사는 게 즐겁기만 해요”라고 말하는 아내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을 하고 말았다. “만약 걸을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워낙 산을 좋아하니까 관악산은 그동안 어떻게 변했나, 도봉산은 또 어떤가 올라가보고 싶네요.”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생계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의 아내가 꾸려나가고 있다.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사람들이 힘들어도 참으라고 위로할 때면 “하나도 안 힘들어요. 사는 게 즐겁기만 해요”라고 말하는 아내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을 하고 말았다. “만약 걸을 수 있다면 뭘 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워낙 산을 좋아하니까 관악산은 그동안 어떻게 변했나, 도봉산은 또 어떤가 올라가보고 싶네요.”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