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 인치과의원 치과기공사 이미경씨
서울시 서초구 서래마을 앞에 위치한 작은 치과. 진료실을 지나 ‘기공실’이라 적혀 있는 문을 여니 기계들로 가득 찬 작은 방이 나온다. 각종 기계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방 안은 한증막처럼 덥고 숨이 막힌다. 책상 한켠에서 의치를 만지고 있던 치과기공사 이미경(26)씨는 기자를 보자마자 선풍기부터 틀어준다.
지난주 <한겨레21> 사무실에 10만원권 수표가 동봉된 그의 편지가 날아왔다. “지난주 저의 독자엽서를 지면에 실어주고 사은품으로 책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보답으로 베트남 성금을 보냅니다. 학창 시절 국사 선생님이 베트콩들을 잔인하게 죽인 국군의 활약상을 얘기하셨을 때 아무 생각없이 감동했던 기억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엽서가 실리면 당연히 받아야 할 사은품에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가 있을까. 또 대수롭지 않게 잊어버릴 수 있는 학창 시절의 기억에 죄의식까지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쩜 그렇게 밑도 끝도 없이 순수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그를 만난 이유였다.
이씨가 <한겨레21>을 구독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였다. 하루종일 혼자 답답한 기공실에만 있다보니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언니가 “<한겨레21>을 읽으면 재미있고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적극 권유하는 바람에 구독을 신청했다. 잡지를 읽으면서 특히 ‘마이너리티’ 등 소외된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최근 ‘아시아 네트워크’에 연재되는 하마스 의장 야신의 자서전을 인상깊게 읽었고, ‘이상수의 동서횡단’도 열심히 보고 있다. 잡지에 바라고 싶은 점은 없냐고 묻자 “그렇게 물어보실 줄 알고 무슨 대답을 할까 고민했는데, 할말이 없네요”라며 웃는다. <한겨레21> 독자라면 비판적 글읽기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자신은 아직도 기사를 읽으면 ‘맞아, 맞아’ 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수준이란다.
환자의 치아모델을 떠서 의치나 틀니 등을 만드는 치과기공사는 힘든 직업이다. 좁은 골방에 처박혀 ‘기름냄새’를 맡으며 기계와 씨름하다보면 금세 피로가 온몸을 잠식해온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현재 활동하고 있는 치과기공사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그도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회의가 많이 들었다. “배워놓으면 돈 많이 번다”는 말 때문에 시작하긴 했지만 매일 밤 8∼9시까지 일하고 휴일도 제대로 못 챙길 정도로 업무량이 많아 “내가 미쳤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기공사 일이 완전히 몸에 익어 그렇게 힘든 줄 모르고 산다. 앞으로 좀더 기술이 늘고 경제적 여유가 쌓이면 돈 없는 노인들에게 무료로 의치를 만들어줄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씨는 그가 쓴 글만큼이나 소박하고 진실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을 갖고 있는 법이다. 수십개의 ‘이빨’들이 나뒹굴고 있는 덥고 좁은 방에서도 그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즐겁게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이씨는 그가 쓴 글만큼이나 소박하고 진실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능력을 갖고 있는 법이다. 수십개의 ‘이빨’들이 나뒹굴고 있는 덥고 좁은 방에서도 그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즐겁게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