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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의 오래된 물건] 가뿐해서 더 자유로운 배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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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1-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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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지연 카타르 도하

멀리 카타르 도하에 살고는 있지만 한국에 있는 친구 덕분에 <한겨레21>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상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문득 ‘나의 오래된 물건’ 코너에 소개할 소장품이 생각났다.

스물한 살 첫 배낭여행 때부터 사용한 이 배낭은 스물여덟인 지금도 여행 때면 내 곁에서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든든한 친구다. 구식 디자인에 푹신한 등받이 하나 없는 보잘것없는 가방이지만 천이 얇고 불필요한 장식이 없어 장기간의 배낭여행에서도 어깨를 가뿐하게 해 피로를 덜어준다.


이번 여행에서도 이 배낭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도하에서 파리로, 또 파리에서 쿠바로, 일정으로는 짧지만 스탠바이 티켓(항공사 직원 할인 티켓)으로 떠난 일주일간의 멀고 험난했던 여행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하나같이 “이 가방 하나?”라는 질문을 받았고, 내가 ‘예스’라고 대답하면 대부분이 가뿐한 짐에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랬다. 이 가방 하나면 일주일의 쿠바 여행이든, 석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이든 어디든 갈 수 있다. 즉, 이 가방 하나로 사람이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물론 어떻게 사느냐가 관건이겠지만 어찌됐든). 사람이 사는 데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욕심을 부리면 어느새 가방이 커지고, 무거운 가방으로 여행은 더 고난해질 것이고, 그만큼 분실의 책임감도 커지고…. 긴 여행길에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게 된다.

우리 삶도 그렇다. 어쩌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이 가방 속의 꼭 필요한 물건들처럼 거창한 집이 아닌 소소한 일상 속에 묻어난 작은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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