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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재수생활, 힘들지만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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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3-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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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재수생 백다은씨

독자엽서에 모 패스트푸드점 콜라 쿠폰을 붙여 보내준 독자. 독자면 담당자로서 초콜릿 이후에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기는 처음이다(안타깝게도 그 쿠폰은 이미 기한이 지난 것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 깜찍한 ‘뇌물’에 감동해 바로 전화를 걸었다.

백다은(19)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거의 하루종일 학원에서 생활하는 재수생이다. 언론정보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를 한다고 했을 때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는 싫은 내색없이 그를 격려해 주었다. 재수생이란 어정쩡한 신분 때문에 대학에 입학한 친구들 만나기가 꺼려진다는 그는 그래도 장점이 많다고 강조한다. 가장 큰 장점은 진정한 ‘자율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것. 강압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모두가 자기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특히 나이가 많은데도 새로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우리 반에 결혼해서 아이까지 두고 있는 아저씨가 있는데요, 공부 진짜 열심히 하세요. 가끔 저녁에 아들한테 ‘아빠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화를 하기도 하죠.” 힘들긴 하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재수생활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그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한겨레21>을 정기구독하게 된 계기는 또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논술 때문이다. 수능 시험을 치르고 지금까지의 공부방식에 회의가 들어서 우선은 논술 공부에 조금이나마 투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수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은 뒤, <한겨레21>에 대한 주위의 권유를 듣고 바로 신청을 했다. “보수적인 다른 잡지와 달리, <한겨레21>은 여러 면에서 참신하다는 인상을 받게 돼요.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을 부담없이 접할 수 있다는 것도 독특한 매력이죠.” 그는 347호 표지이야기 ‘당신은 주류인가, 비주류인가’를 읽고 분개하기도 했다.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상류층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고. 짧은 시간에 잡지의 열광적인 팬이 된 그는 독자들의 목소리를 좀더 많이 담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주문도 한다. “가끔씩 독자면이 형식적인 것처럼 보여서 아쉬워요.” 담당기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비판이지만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정보학부에 꼭 들어가고 싶다는 그가 정작 하고 싶은 것은 음악이다. 예체능계를 지원하지 않아서 음대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어릴 때부터 익힌 피아노 연주 실력을 더욱 가다듬고 작곡 공부도 할 계획이란다. 그가 이런 꿈을 꾸는 것은 <유희열의 음악도시>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광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희열님 같은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성이 같은데, 혹시 유희열씨와 친척되는 분 아니냐는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유희열씨가 정말 좋기는 좋은가 보다.


‘재수’라는 인생의 아주 작은 시련이 그의 몸과 마음을 한층 성숙시킨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또 있을까.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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