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독자/ 블라디보스토크 국립경제대학 한국어 강사 김수진씨
함박눈이 세차게 내리는 밤, 한국에서 날아온 소포를 받고 김수진(30)씨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외국생활의 외로움에 지친 그에게 낯익은 <한겨레21> 표지는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운 선물이었다. 그 밤에 김씨는 러시아에서 처음 받아본 <한겨레21> 기사들을 읽고 또 읽었다. 심지어 광고들까지 한자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고국 소식에 ‘타는 갈증’을 느낄 때였다.
거센 빗줄기가 몰아치던 지난 7월4일,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에 묵직한 가방을 들고 나타난 김씨의 얼굴은 보는 사람이 즐거워질 정도로 환했다. 가족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동토’로 떠나는 사람의 얼굴이 저렇게 밝은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여대 국문과 석사논문을 준비할 무렵 김씨는 지도교수에게 ‘특이한’ 제안을 받았다.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국립경제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어 강사를 구하고 있으니 지원해 보라는 것이었다. 러시아를 전혀 모르는데다, 러시아에서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관광객의 목에 총을 들이대곤 한다는 이야기도 멈칫거리게 했다. 그러나 김씨는 결단을 내렸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국제적인 안목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얘기를 듣자마자 선뜻 허락해 주었다.
98년 8월, 한여름인데도 가을 점퍼를 입고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그는 “이 추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러시아어 알파벳도 모른 채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으니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권을 안 가지고 시장에 나갔다가 경찰서에 붙들려 가서 철창 신세를 질 뻔한 적도 있고, 만원 버스 안에서 자신의 주머니에서 지갑을 빼내는 소매치기를 빤히 보면서도 러시아어를 못해 그냥 당한 경험도 있다. 그렇게 힘들게 적응해갈 무렵 친구가 선물로 <한겨레21> 정기구독을 신청해준 것이다.
그는 모든 기사를 꼼꼼히 읽는다. 창간호부터 빼놓지 않고 가판대에서 잡지를 사모았다. 학부 시절부터 학생회 활동을 한 ‘골수 운동권’이었던 그는 ‘한겨레’에 대한 변치 않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최근 베트남 관련 기사를 보며 큰 감명을 받았다. “역사의 진보에 회의가 들 때였어요. 베트남을 줏대있게 파헤치는 기사를 읽으며 ‘역사는 이렇게 정리해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러시아에서 한국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은 한국을 알고자 하는 열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한국을 통해 경제난의 돌파구를 마련해 보자는 생각에서이다. 러시아 학생들은 다른 민족과 문화에 매우 우호적이다. 그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도 한국어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음식, 술, 노래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추석, 어버이날 등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서 그들은 신선한 충격을 느낀다.
그는 지금 심정을 “절반의 자유, 절반의 고독”이라 표현한다. 외롭기는 하지만 박사과정에서 이리저리 교수들 눈치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것. 현재 같은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렇게 말한다. “뭐, 열심히 살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죠.”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그는 지금 심정을 “절반의 자유, 절반의 고독”이라 표현한다. 외롭기는 하지만 박사과정에서 이리저리 교수들 눈치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것. 현재 같은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씨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렇게 말한다. “뭐, 열심히 살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죠.”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