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실 경남 양산시 북부동
연예인보다 운동선수가 더 인기 있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생 무렵엔 특히 배구가 인기였는데, 나와 몇몇 친구들은 배구선수 하종화의 광팬이었다. 부산에서 경기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실내체육관을 찾았고, 경기 뒤엔 선수들이 곧잘 묵는다는 유명 온천장 근처를 밤늦도록 배회하기도 했다. 그러니 하종화 선수 없이는 내 중딩 시절을 말하기가 참 어렵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나의 오래된 물건 ‘하종화의 사인’은 복제품이다. 사인을 복사하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고 기막히다.
하지만 사연이 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거대한 정문 앞엔 각종 가게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 ‘백화점’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 유난히 여학생들로 항상 바글거리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복사’를 겸하는 ‘음반(테이프)’ 가게였다. 그 이유는, 그 가게를 운영하는 두 명의 잘생긴 총각들에 있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빠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지도 않을 테이프를 구경하고 그 앞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친구가 하종화 선수를 직접 만나서 사인을 받아왔단다. 연방 “부럽다”를 내뱉으며 우리의 ‘백화점’을 통과하던 순간, 하종화는 하종화고, 바로 앞에 있는 잘생긴 총각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채 순간 아이디어를 낸 것이 ‘사인 복사’였던 거다. “이거 복사해주세요.” 주인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훑어보고는 마지못해 복사를 해줬다. 이런 복사는 첨이야, 하면서. (나도 처음인데, 뭘.) 하종화 선수가 얼마나 멋졌는지에 대해 친구가 수다를 떨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오빠와 한마디라도 더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날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기나 한 건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사인 복사에 얽힌 사연은 나에게 아직도 풋풋한 설렘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 스파이크를 날리는 하종화가 멋진 건 사실인데, 어쩌겠는가. 14살 소녀에게는 ‘먼 당신’보다 ‘가까이 있는 오빠’가 더 소중했던 것을. A4 크기에 들어 있는 ‘하종화’를 보고 있어도, 그것을 복사해준 그 ‘오빠’의 손길에 더 가슴 떨렸던 14살 소녀였던 것을.

내가 다니던 중학교의 거대한 정문 앞엔 각종 가게들이 일렬로 죽 늘어서 ‘백화점’을 이루고 있었다. 그중 유난히 여학생들로 항상 바글거리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복사’를 겸하는 ‘음반(테이프)’ 가게였다. 그 이유는, 그 가게를 운영하는 두 명의 잘생긴 총각들에 있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빠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지도 않을 테이프를 구경하고 그 앞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친구가 하종화 선수를 직접 만나서 사인을 받아왔단다. 연방 “부럽다”를 내뱉으며 우리의 ‘백화점’을 통과하던 순간, 하종화는 하종화고, 바로 앞에 있는 잘생긴 총각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채 순간 아이디어를 낸 것이 ‘사인 복사’였던 거다. “이거 복사해주세요.” 주인은 이해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훑어보고는 마지못해 복사를 해줬다. 이런 복사는 첨이야, 하면서. (나도 처음인데, 뭘.) 하종화 선수가 얼마나 멋졌는지에 대해 친구가 수다를 떨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오빠와 한마디라도 더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날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기나 한 건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사인 복사에 얽힌 사연은 나에게 아직도 풋풋한 설렘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 스파이크를 날리는 하종화가 멋진 건 사실인데, 어쩌겠는가. 14살 소녀에게는 ‘먼 당신’보다 ‘가까이 있는 오빠’가 더 소중했던 것을. A4 크기에 들어 있는 ‘하종화’를 보고 있어도, 그것을 복사해준 그 ‘오빠’의 손길에 더 가슴 떨렸던 14살 소녀였던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