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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 모자는 당첨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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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2-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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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박호란씨, 문장백군

“우리 당첨됐어요? 예?”

집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말처럼 동시에 이런 질문을 던지는 어머니와 아들. 그 간절한 눈빛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잡지에서 직접 확인하시죠”라고 대답하자 맥이 풀리는 듯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박호란(39)씨와 문장백(12)군 모자는 벌써 세 번째 퀴즈큰잔치에 도전하고 있다. 잡지를 구독하기 시작한 뒤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응모했는데, 결과는 낙방의 연속이었다. 이번에도 어머니와 아들은 밤을 새워가며 문제를 다 풀고 기대에 가득 차 당첨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보낸 정답엽서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세 번째 응모하는데요,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구독하면서 그만 보려고 해도 우겨서 그냥 보고 있습니다.” 지난번 초등학교 6학년인 이한준군을 이주의 독자로 소개했을 때 문장백군은 두살이나 많은 형은 인터뷰하면서 자기처럼 어린 독자는 인터뷰를 안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들이 <한겨레21>을 구독한 계기는 “<한겨레>에 미안해서”이다. 원래 <한겨레>를 구독했는데 이웃집의 권유로 다른 신문으로 바꾼 뒤, 대신 <한겨레21>을 구독하기로 마음먹었다. 집안에서 잡지를 가장 열심히 읽는 독자는 문군이다. 그가 가장 재미있게 읽는 난은 뜻밖에도 경제면이다. “경제 문제에 대해 읽는 게 재미있어요”라고 말하는 초등학교 5학년이 한국에서 몇명이나 될까. 그외에도 ‘반쪽이의 뚝딱뚝딱’을 매주 빼놓지 않고 유심히 본다고 한다.

박호란씨는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을 열심히 탐독하고 있다. 북유럽사회의 현실을 분석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날카로운 시각이 맘에 든다고. 잡지에 바라고 싶은 점은 “대안없는 비판은 하지 말 것”이다. 문제에 대한 해법은 없이 비판만 하면 독자로서 답답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중문과를 나와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 박씨는 대만이나 홍콩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논리가 없고 부패한 사회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한다. 그가 아들의 이름을 백두산의 ‘장백’이라 지은 것도 한국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전한 시민으로 자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장백군의 장래희망은 정치가가 되는 것이다. ‘이주의 독자’란에 그렇게 나오고 싶어한 이유의 하나도 장래 정치가가 되기 위해 자신을 홍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 정치지망생으로서 자신의 포부를 밝혀달라고 부탁하자 이렇게 말한다. “저는 대통령이 돼서 나라를 발전시키고 싶어요. 정말 돈 안 드는 정치를 만들고도 싶구요.”

박호란씨 모자는 이번에 당첨이 됐을까. 당첨이 됐으면 금상첨화고, 안 되더라도 ‘이주의 독자’란에서 문군이 ‘유세’까지 했으니 위안을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궁금한 독자들은 이번호 당첨자 명단을 샅샅이 훑어보시길!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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