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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의 오래된 물건]‘수업 형태의 분석’에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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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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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영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 전곡고등학교

교생실습 할 때이던가? 아버지께서 주셨던 낡은 책자 <수업 형태의 분석>. 당시 시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께서 손수 작성해 실제 교실에서 적용했던 모든 과정과 결과가 그대로 기록된 살아 있는 수업안이었다. 그때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교직에 나온 지 한참 지난 뒤 우연히 이삿짐 정리하다가 책꽂이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을 발견해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순간 무언가 가슴을 확 치면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아버지의 낯익은 글씨, 일일이 철필로 쓰시고 빨간 연필로 첨삭을 하신, 여전히 살아 숨쉬는 교실 수업안. 그때의 아버지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나. 나는 과연 교실에서 얼마나 살아 있고 거짓이 아닌, 아이들이 주인공인 수업을 하고 있을까 반성하게 하는 책자. 이제는 유품이 됐다.


그리고 퇴임 뒤 운동시간과 식사량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하셨는데 그 작은 수첩 또한 내게 남아 있다. 아버지는 당뇨가 있으셨지만 성실하게 관리하셔서 건강하게 지내셨다. 낡아진 부분은 테이프로 붙여가며 썼던 만보기에서 검소함을 깊이 새긴다.

적당히 살고 싶을 때, 분노할 일을 외면하고 싶을 때, 학교 현장이 씁쓸해질 때 나는 이 물건들과 만난다. 그러면 아버지는 이 땅의 교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낮게 말씀해주신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힘을 얻고 아이들을 희망 속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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