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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의 오래된 물건] “진서비 오빠 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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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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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여 전 고등학교 시절, 난 한 가수를 흠모했다. 그의 테이프를 구비하는 건 기본, 그가 출연한 프로그램을 전부 녹화했다. 그가 진행한 <밤을 잊은 그대에게> <가위바위보>의 열혈 애청자였고, 사연과 신청곡을 담아 엽서를 보내는 게 생활화돼 있었다. 덕분에 상품도 많이 받았는데, 요즘도 종종 친구들은 말한다. “너거 진서비 오빠 잘 있나”라고.

왼쪽 사진은 15년 전 창원 콘서트 이후 가졌던 팬미팅에서 찍은 것이다. 그의 별명을 딴 ‘마산둘리’ 팬클럽에서 가진 모임이다. 콘서트에서 직접 오빠를 본다는 맘에 들떴는데 팬미팅까지 하게 되어 정말 잊지 못할 날이 됐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을 복기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날이었다. 사춘기 시절 밤마다 베개를 적시는 절절한 러브레터를 썼던 날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그땐 진심으로 대학 졸업 뒤 꼭 진섭 오빠와 결혼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별명이 ‘변진섭’인 수학 선생님과 나는 결혼했다. 그 뒤로도 가끔 서울 갈 일이 있거나 지방 공연이 있을 때마다 뵙곤 했다. 십수 년을 함께해온 덕에 오랜만에 만나도 친근하다. 그는 친오빠 같다. 함께 기뻐해주고 걱정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남편이 나의 진섭 사랑을 이해해준 덕분에 결혼 10주년인 올해, 우리 가족과 진섭 오빠는 함께 캠프를 다녀왔다. 정말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지금은 남편도 변진섭씨의 골수팬이다.

사춘기를 돌아보면 항상 진섭 오빠가 있었고, 그의 음악이 있었고, 그의 방송이 있었다. 지금은 그도 나도 삶의 희비를 아는 나이에 도달해버렸지만 기억 속 어딘가에 순수했던 진섭 오빠와 우리들 모습이 있다. 지금도 맘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오빠에 대한 순수한 사랑. 사진을 볼 때마다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언니, 동생들이 한없이 그립다.

안지현/ 경남 진해시 여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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