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나의 오래된 물건] 조개청소와 뽀삐

582
등록 : 2005-10-27 00:00 수정 :

크게 작게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이다. 1, 2학년 때의 그림 일기장은 아쉽게도 보관하지 못했다.

1982년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때는 초등학생들도 일요일 아침마다 마을별로 모여 6학년 대표를 중심으로 마을 청소를 했다. 일명 ‘조기청소’라는 것인데, 그때는 그런 어려운 말을 몰라 그냥 들리는 대로 ‘조개청소’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5학년 때까지 그렇게 알고 지낸 것 같다. 그리고 청소가 끝나면 간단한 운동경기도 했다. 일요일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던 ‘명랑운동회’를 흉내낸 것이었다. 변웅전씨 사회로 연예인들이 대결하는 프로그램이다.

방학 때는 놀다가 밀린 일기를 한 번에 몰아쓰기도 했는데 다음날로 미루지 않고 당일에 쓰는 일기에조차 ‘~하고 잤다’라는 표현을 꼬박꼬박 쓰고는 잤다.

일기의 마지막 부분을 보니 “뽀삐를 뽑아 먹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뽀삐!

야산에 나는 풀 종류로 초록색의 껍질을 까면 하얀 솜 같은 것이 나온다. 약간의 단물이 나와 씹는 맛이 좋다. 그 시절 껌은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이었는데 동네 어른들이 뽀삐를 오래 씹으면 껌이 된다고 얘기해 우린 그걸 삼키지 않고 계속 씹어먹곤 했다. 우스운 기억이다. 앞으로도 힘들 때 일기장을 보면 많은 위로를 얻을 것 같다.


아내는 옛날 물건을 어릴 때부터 보관할 생각을 한 게 신기하다고 한다. 난 그 당시 내가 커서 일기장이 보고 싶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금도 아이들 사진과 동영상은 물론 떨어진 배꼽도 보관하는데, 이런 날 보고 아내는 웃는다. 아무튼 그 시절 일기에 담긴 일들이 바로 어제 일 같은데 벌써 25여 년 전 일이다. 이만큼의 세월이 또 흐르면 내 환갑도 지나버리겠지.

장준기 hdmusa21@naver.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