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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자퇴생, 대학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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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1-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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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백가윤씨

“자퇴 생활이 더 좋았어요.”

백가윤(19)씨는 지난해까지 자퇴생이라는 ‘딱지’를 달고다녀야 했다. “지금 뭐 하고 있냐”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난감했던 그는 올해부터 ‘대학생’이라고 당당히 자신의 신분을 밝힐 예정이다.

그가 자퇴한 것은 외국어고등학교를 다니던 지난 1999년. ‘내신’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고심하다, 결국 자퇴서를 냈다. 그뒤 자퇴자들만을 모아 가르치는 이른바 ‘자퇴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꽉 짜인 학교의 교과과정보다 훨씬 자유롭고, 자신의 취미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까지 가지게 되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저는 음악,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학교 다닐 때는 예체능 과목도 천편일률적이어서 재미가 하나도 없었는데 자퇴학원은 그렇지 않았어요.” 학원에서는 체육시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친구들과 즐길 수 있었다고 한다. “자퇴가 좋더라”라는 말을 하는 그의 해맑은 얼굴엔 그림자가 없었다. 그러나 기자는 잠시 질문하는 것도 잊은 채 ‘즐거운 자퇴생’까지 만들어내는 이 땅의 교육현실에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그는 지난해 5월부터 논술고사를 대비해 <한겨레21>을 정기구독하기 시작했다. “논술학원에서는 이미 <한겨레21>이 교과서처럼 돼 있어요.” 처음 잡지를 읽었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쾌도난담’이었다. 그뒤부터 매주 잡지를 받으면 “오늘은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게스트는 누굴까”를 궁금해하며 쾌도난담부터 읽었다. “쾌도난담 왜 폐지했어요? 너무 재미있었는데.” 이렇게 항의하는 그에게 다른 기사들은 재미없었냐고 묻자, 베트남전 기사 등 다른 잡지에서 볼 수 없는 참신하고 진보적인 글들이 많아서, 대학교에 입학해도 계속 정기구독할 생각이란다.

그는 지금 불어교육과, 사회과학계열, 컴퓨터공학과 등 각기 다른 학교의 세과에 원서를 낸 상태다. 현재 그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외국어다. 외국어를 열심히 갈고 닦아 제3세계를 원조하는 국제기구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꿈이다. 대학 4년 동안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할 계획이지만, 그의 취미인 영화와 음악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록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간다면 가장 먼저 음악동아리에 들 계획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어린왕자, 별, 류시화, 신해철, 뚝길, 안개, 음악, 인도, 이집트, 노을, 사랑한다는 것….” 그가 독자엽서에 써보낸 내용이다. 이 건조한 세상에서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일 것이다. “나이들면 더 너그러워진다고들 하는데, 전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어느 영화의 홍보필름에서 한 청소년 출연자가 나와 한 말이다. 그와 헤어지면서, 나이가 들수록 더 너그러워지고, 순수해지는 모습을 갖기를 간절히 기원해보았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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