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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나의 오래된 물건] 내 사랑 곰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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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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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순이는 내가 여섯살 때 엄마가 큰맘 먹고 백화점에서 사온 개 인형이다. 어린 내가 왜 개 인형에게 ‘곰순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어쨌든 엄마가 곰순이를 사온 이후 난 곰순이 없이는 잠들지 못하게 되었다. 홍콩할매 귀신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무서운 밤에도, 엄마랑 아빠가 소리 높여 싸우는 새벽에도 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곰순이를 꼬옥 껴안고 잠들었다.

나는 곰순이가 살아 있다고 믿었다. 곰순이 털에 껌이 붙었을 때(오빠가 붙여놨던 것 같다), 가위로 다듬어주며 ‘며칠 뒤면 곧 자라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심지어 엄마가 곰순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려 하면 난 안 된다고 떼를 써서 내가 직접 손빨래를 했다.

언제나 날 괴롭힐 방법을 연구하던 오빠는 곰순이를 납치해서 문을 잠그고 마구 때렸다. 문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나를 위해 친절하게도 상황 전달을 위한 효과음까지 내줬다. “에잇, 맞아라 퍽퍽퍽.” “깨갱깨갱깨갱.”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그때 난 곰순이가 아플까봐 엉엉 울었다.

난 곰순이의 왼쪽 얼굴이 선량하고 서글픈 느낌이고, 오른쪽 얼굴은 심술궂고 사악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곰순이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주변 사람들에게 곰순이의 이중인격을 설명하곤 했다. “엄마, 봐봐. 오른쪽 눈 곰순이는 못된 애고, 왼쪽 눈 곰순이는 착한 애야.” 그러자 엄마와 아빠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을 접한 어른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눈길을 교환했다. 이 장면이 유독 기억 나는 건 부모님 사이의 싸늘한 공기가 걷히고 따스함이 감돌았던 유년 시절의 몇 안 되는 기억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난 어릴 때 어딜 가든 곰순이를 꼭 데리고 갔는데, 심지어는 “나 죽을 땐 관에 곰순이도 같이 넣어줘”라고 말해서 엄마 마음을 철렁하게 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곰순이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밤에는 습관처럼 곰순이를 안고 잤다. 고3을 마치고 대학에 떨어진 날에도 곰순이를 꼬옥 껴안고 눈물을 삼켰고, 재수를 해서 원하는 대학에 붙은 밤에도 곰순이를 껴안고 들뜬 맘을 가라앉혔다.

지금 나는 부모님을 떠나 대학교 근처에서 혼자 자취를 한다. 집에 돌아오면 텅 빈 방 침대 위에 곰순이가 앉아 있다. 털은 까슬까슬하고, 목의 솜이 다른 부분으로 옮겨져서 헐렁하다. 오른쪽 눈 곰순이는 나이를 먹었는지 심술궂은 느낌이 사라지고 대신 고독하고 어른스러운 얼굴을 갖게 되었다. 나의 지친 몸을 침대에 눕히고 곰순이의 축 늘어진 목을 껴안는다. 곰순이가 크고 뭉툭한 손으로 등을 툭툭 친다. 힘내 유효진. 오늘도 열심히 살았어.

유효진/ 서울 성북구 안암5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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