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된 물건] 눈빛이 닮았다
등록 : 2005-05-18 00:00 수정 :
세월의 때가 묻은 할아버지의 사진은 카메라로 다시 찍었지만 그 꾸깃꾸깃함은 여전하다. 내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이 사진뿐이다. 할아버지는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돈 벌러 가셨다가 병을 얻어 돌아오셨고 한국전쟁 중에 돌아가셨다. 그때 할머니의 연세가 서른 초입, 아버지는 두 여동생이 있는 열두살 소년이었다.
서른 초입에 아이 셋을 둔 청상과부가 된 할머니와, 한창 뛰어놀아야 할 열두살에 가장이 된 아버지는 시간이 지난 뒤에도 할아버지에 대해 쉬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그것이 너무 일찍 가버린 그에 대한 원망인지, 아니면 이미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 까닭인지 난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할머니와 아버지는 소작을 하며 그렇게 긴 가난을 버텨냈다.
결혼과 동시에 광주로 올라온 아버지의 삶은 한국이 겪은 발전의 궤적과 일치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아버지는 여전히 평범한 서민이라는 것. 그에게 부재했기에 할아버지는 내게도 부재한다.
어느 날 나와 눈빛이 꼭 닮은 이 사진 속의 인물을 발견했을 때에도 난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짐작컨대 나의 할아버지였고, 할머니와 아버지는 그네들이 겪었을 고생을 그냥 단순한 말 몇 마디에 묻어버리셨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내 아이들을 끔찍이 아끼는 걸 보면서, 내가 자랄 때에도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연세와 내 나이가 비슷해진 지금, 내 두 아이를 보며 어린 아내와 자식 셋을 두고 떠나야 했던 그이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할아버지와 눈빛이 꼭 닮은 나는 분명 그에게 큰 사랑을 받았을 것만 같다.
박형천/ 광주시 북구 신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