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베트 문제, 미국만 비판? 이번호에서 박노자 교수는 티베트의 인권 문제를 놓고 철저하게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고 북한을 이용하는 미국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과 지배계급의 이익에 맞춰 행동하지 않는 세력이 있을까요. 미국과 서구 열강이 인권 문제를 들먹이며 중국을 규탄하여 뭔가를 얻곤 정작 독립에 아무 도움을 주지 않았듯이, 중국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침략을 했고, 주변국도 자국의 이익을 따라 침묵했을 뿐입니다. 조선왕조가 수탈 왕조였듯이 티베트의 전근대적 지배계급도 동일한 문제가 있었을 것이고요. 그렇다면 유독 미국에 대해서만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침략 뒤 강제 점령을 하고 있는 중국에 비난의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리고 남북 공조를 하면 필자 의견대로 미국에 전쟁의 명분을 안 줄 수 있을까요. 박노자 교수의 뛰어난 혜안에는 감탄하고 있지만 유독 제국주의와 관련된 문제에선 과거의 억압 사실에 기반해 중국이나 북한에 관대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민족 공조와 남북 화해도 필요하지만, 북한의 독재정권을 어떤 방식으로든 민주화하고 우리가 박정희에게 책임을 묻듯이 북한의 수탈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slow9 -> 독자님의 지적에 저도 일부 동의합니다. 티베트의 전근대적인 지배층의 수탈적 성격과 인권 인식의 부재, 중국의 티베트 침략과 식민지 정책 등은 당연히 집중적인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마치 조선왕조 말기의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와 일제 침략의 가혹성이 정당한 비판을 받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제 글의 초점은 침략의 모순이나 피침 지역의 계급 구조의 모순을 밝히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이 침략을 용인하면서도 티베트 민중의 반침략 투쟁을 여러모로 이용한 미국의 태도를 비판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것이 티베트와 중국의 지배계급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만, 티베트 문제에서 잘 생각해보지 않았던 미국의 개입을 다루면서 조선의 비극적인 역사와 연관시켜보려고 한 것입니다. 지배계급의 문제점은 다른 기회에 충분히 다룰 것입니다. 그러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성조기를 흔들면서 ‘한-미 동맹’을 외치는 이들에게 절망 가까운 기분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왜 미국이라는 나라가 누구와도 평등한 ‘동맹’을 맺는 일이 없다는 걸 모를까요. 미국과의 ‘동맹’이나 미국의 ‘지원’은 단순히 미국의 이용물이 된다는 걸 의미하며, 티베트의 역사야말로 이를 잘 증명해준다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미국이 해당국을 이용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중국이나 북한이 선을 대표한다는 걸 말하는 건 아닙니다. 국가관료 자본주의 성격을 띠는 북한의 독재 체제와 세계적 독점자본의 대표, 미국의 유사 민주는 똑같이 현재의 자본주의적 세계 체제의 틀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 자본층으로의 전환을 꿈꾸며 남한에 우호적인 북한의 지배층보다는 무기 생산을 늘리면서 중국 고립화에 대비하기 위해 북한을 침략할지도 모르는 미국의 지배층이 더 위협적이라는 건 사실입니다. 이건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박노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