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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환장할 청춘’을 달래주는 술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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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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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주점 ‘환장할 청춘아’ 배문철 사장

주당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젊은 시절부터 드나들던 ‘고향’ 같은 술집 하나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첫사랑의 여인과 술잔을 기울이고, 그 시절에는 심각하게만 느껴졌던 삶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때론 폭음으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한 그런 술집말이다. 술집은 힘든 청춘을 지나오는 데 필수적인 휴식과 소통의 공간이다. 중앙대 앞에 자리잡은 ‘환장할 청춘아’는 지금도 새내기 대학생부터 ‘향수’를 느껴 찾아오는 직장인들로 북적거린다. 여느 화려한 술집과는 다르다. 북한소주와 닭가슴살 볶음을 시켜놓고 얼큰해질 무렵이면 가끔 정태춘의 음악도 들을 수도 있다. 이 술집의 사장인 배문철(34)씨가 <한겨레21>의 열혈독자라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그를 만났다.

80년대 ‘골수 운동권’ 출신인 만큼, 사회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그는 바로 아래층에 있는 사회과학서점 ‘청맥’에서 매주 잡지를 사 본다. 대학 학보사 활동을 하며 진보적인 언론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한겨레21>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주로 표지이야기를 가장 자세히 보는 편인데, 최근 ‘무덤까지 간다, 당신의 학벌’이라는 기사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른바 명문대학 출신이 아닌 그도 학벌사회의 피해자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잡지에 바라고 싶은 점이 있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작은 권리 찾기’에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말한다. “생활 속에서 서민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를 빼앗기는 사례가 많아요. 이런 것은 <한겨레21>만이 다뤄줄 수 있는 문제 아닐까요?”

‘격동기’라고 명칭할 수밖에 없는 87년에 대학에 입학한 그는 ‘직접적인 저항’에 더 관심이 많았다. 선배의 권유로 우연히 학보사에 들어가서 사무실 한쪽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선배의 글을 보고 “아, 글로도 운동할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대학 시절 가장 기억남는 일은 88년 같은 대학의 박래전씨가 독재타도를 외치며 분신했을 때 그의 병실로 직접 찾아가 취재를 했던 일이었다. 희미한 생명의 불이 꺼지고 산소호흡기를 떼기까지 그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히 남아 있다고 한다. 군대를 마치고 학생회활동을 했던 그가 술집을 차린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취직이 안 됐기 때문이다. 영문과를 나왔기 때문에 웬만하면 대부분 취직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워낙 학점이 좋질 않았다. 결국 “내 길은 자영업이구나”라는 생각에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 97년 경제위기 직전에 ‘부업’으로 시작한 술집이 지금은 주업이 되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이런 뜻밖의 대답이 되돌아온다. 우선 최선을 다해서 돈을 벌고,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시민단체 등에서 어렵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는 술집주인인 만큼 대학생들의 술문화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다. 예전에는 주로 단체로 와서 삶의 고민을 털어놓던 술자리였던 반면, 요즘 대학생들은 ‘놀이’를 우선시한다. PC방이 너무 많아져서 공동체문화가 사라진 탓에 단체 손님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서 술을 많이 절제하고 즐겁게, 깔끔하게 술을 마시는 태도는 좋아보인다고.

앞으로 이 술집을 체인점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는 배씨의 마지막 다짐은 이렇다. “각 지역에 내 술집을 하나씩 두는 거예요. 그리고 그 술집을 지역문화의 중심지로 만드는 거죠.”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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