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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보통사람’이 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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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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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독자/ 변호사 서태영씨

“변호사도 이젠 ‘보통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 좋은데요.”

이주의 독자 취재약속을 잡기 위해 변호사 서태영(48)씨에게 전화를 하자 이런 뜬금없는 말을 던진다. 평소 이주의 독자란에 실리는 서민들의 아기자기한 얘기가 좋았다는 서씨는 변호사 같은 ‘상류층’은 아예 실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러나 동네 아저씨같이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그는 서민들보다 더 ‘서민적’이었다.

서씨는 <한겨레21>의 창간독자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잡지를 구독해오고 있는 이유를 묻자 “맹목적인 사랑” 때문이란다. 70학번으로 유신의 암흑기를 대학에서 보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간직하고 있었고, <한겨레신문> 창간시 주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겨레21>이 간직하고 있는 ‘정신’의 핵심을 그는 인간다움의 추구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음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주는 기사를 볼 때마다 “앞으로도 계속 구독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최근에는 <한겨레>와 <한겨레21>에 이어 대학생인 딸을 위해 <씨네21>까지 구독을 시작했다.

잡지를 받으면 가장 먼저 읽는 난은 ‘쾌도난담’이다.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사고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에 가장 잘 맞는 난이다. “변호사라고 하면 우선 딱딱하고 고지식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뜻밖인데요.” 농담조로 한마디 건네자 이런 농담으로 응수한다. “저는 친구들과 밥먹을 때도 똑같은 메뉴를 시키지 않아요. 일부러라도 남과 다른 걸 시키죠.”

판사로 20년을 재직한 그는 98년에 사퇴하고 변호사로 개업했다. 변호사로 길을 바꾼 뒤 가장 힘든 것은 소송에서 지면 화를 내며 다그치는 의뢰인에게 그동안 힘들게 준비했던 과정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수임료를 되돌려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서씨는 소송에 이기기 위해 전관예우를 악용하는 관례를 목청높여 비판한다. 판사 재직시부터 후배 변호사들로부터 “선배님한테는 변호사를 선임한 피고인이 더 불리하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힘없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써왔다.


공부를 잘하면 무조건 법대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법학과를 지망했지만, 정작 그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국문학’이다. 창조적인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만약 국문과를 갔으면 지금쯤 ‘문학비평가’라는 명함을 들고 다닐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법조계 생활이 그리 행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의 싸움에 끼어들어 이리저리 판단 내리는 건 어렵고 힘든 일이죠.”

현재 법조계의 가장 큰 문제는 ‘불신’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재판이 당사자나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동안 정치적인 이유로 사법부가 불신받을 만한 모습을 보여온 것은 사실이나 당사자들도 지나치게 공정성을 불신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제대로된 사회는 ‘균형감각’을 가져야 하며, 약자를 무시하는 사회는 자유경쟁의 싹을 자르는 불합리한 사회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균형잡힌 사회를 위해 국가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하지만, 사법부의 판결도 올바라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조금씩 나아져가는 모습이 보여요. 최소한 저 때문에 더 나빠지진 않도록 노력하고 있죠.” 이 겸손한 말이 “내가 나서서 고치겠다”는 말보다 더 신뢰가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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