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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또 몰려오진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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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1-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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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또 몰려오는 게 아닐까.”

334호 표지이야기를 보도하면서 <한겨레21>의 일부 기자들은 이런 걱정을 했다. 고엽제전우회 등 일부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이 다시 난동을 부릴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두드러진 항의는 없었다. ‘주월미군사령부 비밀보고서’의 내용 자체를 전하는 객관적 사실보도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독자들의 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는 너무 상투적인 감이 돼버린 ‘참전군인 명예논쟁’은 이메일과 ‘인터넷한겨레21’ 토론방을 통해 재연됐다. “100개의 선행이 1개의 악행에 의해 뭉뚱그려져서 짓뭉개지는 현실을 참아내기 힘들다”윤정철·jnick@korea.com)는 반론과 “이제야말로 정부차원의 사과와 보상이 시작돼야 한다”(이병로·인천 부평구 산곡4동)는 등의 재반론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사실 베트남전 학살관련 기사에 대한 비판은 <한겨레21>이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의혹’을 처음 다뤘던 지난해 4월의 수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와 함께 사진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너무 선정적이고 끔찍하다. 혹시 화끈한 표지사진을 통해 판매부수를 늘리려고 하는 건 아닐까.”(김진·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사진이 끔찍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68년 2월12일 퐁니, 퐁넛 현장사진 12장은 모두 참혹한 주검사진이었으니 당연하다. 그 때문인지 ‘미군 비밀보고서’를 보도한 모든 일간신문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사진을 일체 싣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를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의 천박한 자세와 비교한다면 사진은 사실 점잖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당했던 일에 대해서는 흥분하면서도, 우리가 ‘저질렀던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대다수가 지나칠 정도로 둔감한 탓이다.

<한겨레21>의 ‘미군 비밀보고서’ 보도는 단순한 폭로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의 현대사와 지도자들을 재평가하는 문제와 닿아 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가 지난 11월15일 아침 이 문제와 관련해 ‘박정희기념관 반대국민연대’와 함께 기자회견을 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두 단체는 기자회견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베트남에서의 민간인 학살의 근원적 원인이 박정희 독재정권의 인명경시 풍조, 특히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극단적인 극우반공이데올로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의 궁극적 책임은 박정희에게 있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논쟁이 더욱 생산적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고경태 기자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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