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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독편위 베스트 10] 끈질김과 발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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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4-01-0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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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베스트 10 기사는 어떤 것들인가… 네이스 문제와 쿨 문화 기사 높은 점수

해마다 연말이면 되풀이되는 진부한 수식어 ‘다사다난했던’은, 그러나 해마다 진실이다. 뉴스가 차고 넘치는 떠들썩한 나라 대한민국에서, 2003년 역시 무난했을 리 없다. 10대 기사를 선정하는 독자편집위원들의 표정에는 2003년에도 이렇게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살아남은 ‘우리’에 대한 자긍심, 혹은 모골 송연함이 느껴졌다.

워낙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해인지라, 10개의 기사로 한해를 압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위원들은 한달 동안 분기별 10개씩 40개의 후보작을 추려낸 뒤 치열한 토론을 통해 20개를 털어내고, 투표를 통해 최종 베스트 기사를 선정했다. 선정 기준은 다른 매체와 차별성 있는 접근이나 분석, 우리 시대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참신함, 숨어 있는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는 용기 등이었다.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은 기사는 이춘재 기자의 삼성SDS와 네이스의 ‘부적절한 관계’를 다룬 일련의 기사였고, 478호 표지이야기 ‘쿨에 살고 쿨에 죽는다’도 이례적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2003년의 문을 닫는 <한겨레21>의 베스트 10 기사들은 다음과 같다.(순위 없이 게재된 날짜 순)

미래로부터 들려오는 경고음


443호 경제 ‘애 낳는 사회를 설계하라’(조계완 기자)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도 2003년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중요한 열쇠말이다. 기사에서는 “저출산 대책은 육아와 교육 등 사회복지 시스템 강화와 여성(또는 가정)의 가치관 변화라는 두 가지에 맞춰진다”고 지적하며, 결국 이것이 ‘애 낳기를 꺼리는 사회’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아이가 없으면 미래도 없다. 저출산율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매우 빠르게 진행되는데 한 세대 뒤에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적정한 생산인구의 유지 등 출산의 사회경제적 기능을 알린다는 측면에서 2003년 10대 기사로 선정할 만하다. ☞ 관련기사

노동자로 산다는 것의 슬픔

447호 사람과 사회 ‘노조 파괴, 인간성 파괴’(조계완 기자)

군사정권 시절이나 있었을 법한 노동조합에 대한 엄청난 폭력 앞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목숨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인간성 자체를 파괴해버리는 엄청난 폭력 앞에서 아직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살기란, 노동조합을 만들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준 대표적인 기사다. 더불어 참여정부의 노동관에 유감에 유감을 더한다. 또한 두산그룹의 이면에 담겨 있는 추한 모습들을 파헤친 용기를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 관련기사

외쳐라, 이라크의 진실

452호 표지이야기 ‘미국은 진다’(정인환 기자)

‘미국은 진다’라고 당당하게 큰소리로 얘기하는 제목부터 좋았다. 첫 기사에서 전쟁의 참화 속에서 떨고 있는 이라크 이주민들의 일상이 친근하고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이라크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픔이 절절하게 와닿는 좋은 기사였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 아무리 예쁜 꽃들도 열흘이면 떨어진다. 기사가 나간 뒤 미군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바그다드에 진주할 때만 해도, 기사의 예측은 틀린 듯했다. 그러나 이라크가 내전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이 기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진실은 언젠가는 이기게 마련이다. ☞ 관련기사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더이다

462호 이슈추적 ‘네이스 뒤에서 삼성SDS 웃네’/ 464호 이슈추적 ‘감사원도 네이스 문제 지적’/ 465호 이슈추적 ‘네이스, 소송 내면 이긴다’(이춘재 기자)

‘물고 늘어지기’와 ‘한놈만 패’ 정신이 빛난 이춘재 기자, 삼성 킬러로 거듭나다 어쨌든 기자의 집요함이 빛난 기사였다. 네이스 탄생의 본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서 자본과 ‘교육부 마피아’의 결합이 빚어낸 결과를 시원하게 보여주었다. 앞으로는 네이스를 추진한 교육부 인사들이 ‘영전’하고 있는지, 아니면 책임을 지고 있는지 계속 추적해줬으면 한다. 그는 할 수 있다. ☞ 관련기사

한장의 사진이 웅변하는 것

466호 표지이야기 ‘아체의 통곡’(아시아 네트워크)

충격적인, 너무나 충격적인 사진의 아체 이야기는 2003년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외면했던 소수민족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사진 한장만으로도 우리가 알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거기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정문태 아시아 네트워크 팀장의 취재 일기도 좋았지만 상자 기사들이 간략하면서도 깔끔하게 아체의 현실을 정리해준 느낌이었다. 아체에 대한 잘 몰랐던 사실을 일깨웠음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수민족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했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취재하고, 그 많은 기사를 혼자 다 쓰면서 엄청나게 머리와 마음과 몸, 그리고 영혼이 아팠을 기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것이야말로 <한겨레21>의 차별성이 아닐까. ☞ 관련기사

이 결론 한번 시원하군

476호 표지이야기 ‘파병은 미친 짓이다’(권혁철 기자)

박수 짝짝짝~. 이 기사가 하나의 신호탄 같은 역할을 했다. 별로 설명이 필요 없는 기사다. 파병 논란이 일면서 모두들 ‘국익론’에 현혹되어 우물쭈물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한겨레21>이 계속 물고 늘어져 달라는 요구도 있었고, 강력한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는 염원도 있었다. 파병에 찬성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때 <한겨레21>이 당당하게 ‘미친 짓이다’라고 결론을 단호하게 내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모든 논란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듯한 표지이야기였다. 전선을 매우 분명하게 그었고, 다소 선언적이기까지 했다. 대학 강의실에서도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 관련기사

송두율과 우리 사회의 상처

477호 이슈추적 ‘경계인이 던진 숙제’/ 478호 이슈추적 ‘남한에 귀환한 분단의 경계인’/ 479호 이슈추적 ‘송두율 사냥, 더 이상 더는…’(김창석 기자)

한 가지 문제를 계속 이슈화하는 것이 <한겨레21>의 장점이자 나아갈 길이다. 송두율 교수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희생자다. 그의 구속은 우리가 올바른 역사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시점에서 계속적으로 이슈를 추적해 기사를 쓴 점이 굉장히 좋았다. 송두율 교수 말고도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돌아보고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나를 짚어볼 수 있는 기사였다. 또한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다. 이에 덧붙여 김형태 변호사의 글 또한 절절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송두율 교수는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크나큰 상처다. ☞ 송두율 교수 귀국이 남긴 숙제
남한에 귀환한 ‘분단의 경계인’
송두율 사냥, 더이상 더는…

늙은 노동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

483호 표지이야기 ‘4050의 선택’(정남구 기자)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 올해의 슬픈 유행어였다. 고령 노동자의 실직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적절한 기획이었다. 문제점만 제시한 게 아니라 나름대로 해법도 제시한 기사라서 더욱 빛났다. 고령 실직자의 폭발적인 증가는 오래지 않은 미래에 분명히 닥쳐올 문제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대안을 마련하는가다. 외국의 사례를 지적하며 임금피크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지적해서, 많은 직장인들이 미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관심을 갖고 읽었다.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고 이론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평범한 기사가 아니었다. 많은 부분에서 구체성이 드러났다. 공을 많이 들인 기사였다. ☞ 관련기사

우리가 당하면 심정이 어떻겠니?

485호 이슈추적 ‘주검 되어 한국 남으리’(최혜정 기자)

고용허가제 실시를 앞두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추방 위기에 몰린 이주노동자들이 자살하는 사태. 필요할 때는 써먹고 때만 되면 단속이랍시고 다른 피부색에 채찍을 드는 우리의 이중성을 다시 돌아보게 한 기사였다. 한국어에 능통하고 숙련도도 높은 장기 체류자를 우선적으로 내치는 것은 고용허가제의 폐단이다. 정책적 오류에 대해 다시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다. 기사는 충실한 현장 취재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노동자가 독일에서 추방 위협을 받고 자살했다면 심정이 어떻겠는가. ☞ 관련기사

개인은 어떤 모습인가

478호 표지이야기 ‘쿨에 죽고 쿨에 산다’(박민희 · 이주현 기자)

<한겨레21>의 한계를 나름대로 극복한 모습이 돋보였다. 부드러우면서도 여러 계층에 다가갈 수 있는 기사였다. 무겁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의미를 주었다. 기사에서는 ‘쿨함’이 남녀관계를 위주로 설명되었다. 그걸 뛰어넘어 사회·경제·정치 분야에서도 사람들이 쿨한 사고를 갖고 있다면 어떨까. 아닌 건 아닌 거고 우기지 말자는 그런 모습 말이다. 쿨 지수를 따져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우리 사회에 서서히 떠오르고 있는 개인주의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설명하는 것도 참신했다. 말 그대로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짚어준 기사였다. 그러나 너무 가볍게만 다루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 관련기사

10대 기사 선정이 끝나면 항상 애석상 얘기가 흘러나온다. 한표 차로 떨어진 기사들 중에는 일부 위원들이 살려달라며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는 기사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의 강요에 못 이겨 선정한 2003년의 ‘애석상’은 484호 특집 ‘평준화, 과연 매맞을 일인가’, 477호 표지이야기 ‘평양이 부른다’였다. 평준화 폐지론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한 484호 특집의 ‘눈물의 호소자’는 현직 교사인 강지영 위원, 평양 르포를 통해 북에 대한 선입견을 깬 477호 표지이야기는 직장에서 <한겨레21>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취미인 조일억 위원의 추천을 받았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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