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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청문회|권혁철] 비전투병 파병은 덜 미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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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12-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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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철 기자에게 우리의 안보상황과 미군 철수 · 파병에 대한 입장을 들어보다

사회팀에서 주로 국방 · 통일 문제 기사를 많이 써온 권혁철 기자. 그가 거의 전담하디시피 한 파병 관련 기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 청문회가 마련됐다. 위원들은 그에게 미군 철수와 자주국방, 이라크 추가파병에 대한 입장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조일억: 서동만 국정원 기조실장 문제를 다룬 ‘그 딱지 무식하다’ 이후 팬이 됐어요. (웃음) 얼마 전 평준화 문제에 대한 기사를 쓰셨는데 ‘첩보’에 의하면 경남 지역의 일류 고등학교와 명문대학을 나오셨다고. (웃음)

권혁철: 우리 사회에서는 서울대 몇명 더 보냈느냐로 학교의 명성이 좌우되죠. 평준화는 학생을 배분하는 방식입니다. 그런 걸 놓고 엄청난 논란이 벌어지는 건 단순히 교육 문제가 아니라 계급 문제죠. 현실에서 평준화의 개선 방향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지금 방향은 유지냐 폐지냐의 논란으로 가는 게 문제입니다.

김옥자: ‘그 딱지 무식하다’를 보면서 기자의 감정이 섞여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땐 그게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서동만 교수의 활약이 있는지 의문스러워요.


권혁철: 국정원 기조실장은 조직관리와 예산업무 두 가지 일을 합니다. 어떤 조직이나 예산과 인사를 쥐고 있으면 실세죠. 개인적으로 서동만 교수가 기조실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은 북한 전문가이지 조직관리에 적임자는 아니라고 봐요. 보수언론이 비판을 예리하게 했으면 타당하다고 봤을 겁이다. 그런데 언론은 주사파니 어쩌니 근거 없는 비판을 했어요. 출발 자체가 악의적이죠. 거기에 대해서 문제제기 했던 겁니다.

김정훈: 국방 문제를 취재할 때 정보를 얻기 어려울 텐데, 취재원 확보나 신뢰성있는 정보를 취득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게 있을까요. 보안이 허용하는 선에서 얘기해주세요. (웃음)

권혁철: 국방 분야가 가장 폐쇄적이에요. 군사보안 때문에 대부분의 정보가 묶여 있어요. 가령 군대 갔다온 사람이면 다 아는 한국군 사단의 배치 지역도 대외비입니다. 그러다보니 기사로 쓸 수 있는 건 거의 없어요. 저는 국방부 출입할 때 공식·비공식적으로 알고 있는 군인들을 많이 만나고 요즘에는 인터넷을 많이 활용합니다. 미국 국방부, 국무성, 안보 관련 연구소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기밀자료들이 상당히 많이 올라 있습니다.

김종옥: 국가안보전략이 지금껏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기사를 읽고 놀랐어요. 우리나라엔 왜 그런 게 없었나요.

권혁철: 여러 곳에 확인해봤지만 국가안보전략이라고 발간된 문서는 없습니다. 미국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합니다. 안보는 군사·외교 등 총괄적으로 전략을 짜야 하는데, 한국은 한-미 동맹이란 큰 틀이 있어서 전략을 생각할 필요성을 못 느낀 겁니다. 군대로 치면 장군 역할이 있고 소대장 역할이 있는데 소대장이 장군 역할을 할 필요는 없는 거죠.

조일억: 지금 그 틀이 변했나요.

권혁철: 지금은 문제의식이 넓어졌어요. 미군이 몇십년 동안 한반도에 있으리란 보장이 없고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가 예전처럼 전술적 사고만 해선 안 됩니다.

강지영: 우리나라가 자주국방을 이루고 주한미군이 철수할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고 어떤 조건들이 있어야 할까요.

권혁철: 저는 솔직히 주한미군의 즉각적 철수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백이 크고 미군이 당장 철수하지도 않을 거고. 그런데 주한미군이 몇십년 동안 우리의 벗으로 있을 거란 건 나이브한 생각입니다. 자주국방은 능력과 의지의 문제라 보는데, 미군이 빠지면 얼마 투자해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위험해요. 북한의 위협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거기에 맞춰서 미군이 빠져나가는 것만큼 우리 전력을 늘린다는 생각말고, 상호 군축을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오기 위해 7년간 협상했습니다. 그런 사례에 비춰보면 자주국방은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모르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를 갖춰야 합니다. 대충 2030년 무렵이면 우리가 독자적으로 한반도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된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죠.

김종옥: ‘파병은 미친 짓’이라고 했는데 비전투병 3천명 파병은 덜 미친 짓인가요.

권혁철: 개인적으로는 파병을 할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다고 보는데, 만약 제가 정책결정 과정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반문해보기도 해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재야에서 오랫동안 통일 문제를 연구하고 운동도 했던 분이 들어가 있는데, 반대는 못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예상되는 불이익이 너무 크다는 겁니다.

김성훈: 이건 기사 제보인데요, 논산훈련소 처음 들어가면 훈련병들에게 정신교육 교재를 달달 외우라고 시킨 다음에 시험을 봅니다. 주한미군 주둔의 당위성, 북괴는 우리의 적이다 이런 내용인데, 정말 인권침해라고 봐요.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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