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식탁에서 일·정치 얘기에만 바쁜가… 김학민씨가 말하는 대화 매개체로서의 음식
이번호 필자 청문회에는 ‘음식이야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김학민씨를 삼고초려해 모셨다. 한번은 위원들의 사정이 안 됐고, 또 한번은 김학민씨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어렵게 열린 청문회에서 김학민씨는 “음식이나 음식점 정보가 별로 없지 않나”라는 질문에 대해 “음식이야기의 기획의도가 그 음식에 깔린 사회·문화적 배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1시간을 넘긴 대화는 맛있는 음식과도 같았다.
제정희: 그 많은 음식을 언제 다 드셔보셨는지.
김학민(이하 김): 이십몇년 동안 백수건달 비슷하게 지내면서 여기저기 사람들도 많이 만났죠. 음식을 먹는 걸로만 보지 않고 대화의 매개체로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음식에 관심도 갖게 됐고.
제정희: 드실 때마다 그 음식을 분석하시나요.
김: 그러면 머리가 아파서 되겠어요? 보통 시민들의 대화 주제가 우리나라는 정치나 회사일이지만 유럽은 음식입니다. 우리는 대개 술 얘기 하면 얼마나 많이 먹었느니, 폭탄주를 어떻게 먹었느니, 취해서 어쨌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데, 그러지 말고 술에 깔려 있는 사회·문화 얘기를 해야죠. 음식에 대한 품격 있는 얘기들을 같이 풀어나가면 대화를 풍부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정희: 음식 칼럼인데 음식점 얘기는 조금 나오고 음식에 관련된 문화나 역사가 많이 나오는데, 관련 자료를 따로 모아 조사하시는지. 김: 대부분의 매체가 어느 집이 맛있고 그 음식의 영양가가 어떻고 하는 글을 싣는데, 너무 천편일률적이라 새로운 각도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가 소개하는 음식점이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맛이란 것이 워낙 주관적이잖아요. 칼럼에 식당 정보도 필요하니까 음식이야기에 곁들이는 수준이죠. 저는 30년 전부터 음식에 얽힌 역사·문화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칼럼을 쓰다보니까 통설을 그냥 글에다 올릴 수 없어서 자료를 많이 뒤졌죠. 요즘은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합니다. 하루종일 자료만 뒤져본 적도 많아요. 인터넷 자료는 별 가치가 없고 옛날 문헌 등을 많이 뒤져봅니다. 최일우: 학생운동도 하고(67학번인 김학민씨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반독재투쟁 때문에 94년에야 졸업할 수 있었다) 출판사 경영도 하셨는데 어떻게 음식칼럼을 쓰게 되셨는지. 김: 특별한 계기는 없고 음식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본 책들을 많이 읽었어요. 우리나라 음식들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옥자: 사람이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채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 인류가 식품으로 인정해온 것 중 개고기처럼 극단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많아요. 하지만 자기의 관습으로 다른 쪽의 관습을 평가하고 억누르는 모습은 문제가 있습니다. 채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꼭 채식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시시대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잡식을 해야 했죠. 그러나 육식을 부추기는 신화에는 반대합니다. 미국은 곡물과 육류 생산 사이의 경계라는 게 없어졌어요. 대부분의 곡물은 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료로 쓰입니다. 그 곡물로 전 세계를 먹일 수 있는데도요. 미국의 메이저 곡물업체들, 햄버거 업체들은 끊임없이 고기의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때문에 우리는 육식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죠. 제정희: 저는 미식가라는 사람들이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맛있는 걸 찾아서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책에서 ‘맛있는 걸 찾아먹는 건 인간의 탐욕일 뿐’이라는 대목을 읽은 것 같은데요. 김: 저도 맛있는 집을 억지로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에요. 가까운 집들 중 기왕이면 맛있는 데로 가는 거죠. 맛있는 걸 찾는 것도 본능 아닐까 싶어요. 맛은 결국 단맛이 원초적인데, 단맛 때문에 전쟁도 있고 퇴폐도 있고 부정도 있었죠. 단맛이 인간의 본원적인 맛이면서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어왔어요. 제정희: 음식점에서 소개해달라는 압력 같은 건 안 들어오나요. 김: 제가 소개한 음식점들을 보십쇼. 어디 로비가 들어올 집인가(웃음). 체인점이나 기업화된 음식점은 잘 소개 안 합니다. 시골 궁벽한 곳의 집들이 많아서 <한겨레21>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소개되길 원하지 않는 주인들도 많아요. 제정희: 음식 선정기준은 뭔가요. 이번주에 그걸 먹고 싶어서 쓰시는지. 김: 음식보다는 그 음식에 얽힌 이야기가 정해져야 씁니다. 가급적 여름엔 여름 음식, 가을에 가을 음식 등으로 제철 음식을 해야 되는데, 가끔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아서 싣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냥 정리된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철이 아닌 음식도 소개됐는데, 이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음식 소개가 아니라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일종의 에세이로 봐달라는 겁니다. 그 음식점이 음식을 잘한다 못한다가 중요한 게 아니고. 조일억: 선생님이 만약에 햄버거를 먹고 쓰신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궁금해요. 김: 맥도널드에 대해 한번 쓰고 싶어요. 왜 근대 들어 인간이 육식에 대한 탐욕을 갖게 되는지. 여기엔 맛의 추구도 있지만 자본의 조작도 있죠. 소리나: 개인적으로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김: 칼럼에 여러 번 나온 그 음식이 좋아요 (위원들 ‘아, 개고기’ 하며 웃음). 소리나: 음식에 관한 책을 쓰실 계획도 있는지. 김: 원고료가 적어서 품삯이 안 됐으니 칼럼 모아서 책을 내야죠 (웃음). 박희진: 사실 소개되는 음식에 한계가 있어요. 저는 퓨전이나 분식 등을 좋아하는데요. 김: 제가 모든 음식에 대해 아는 게 아니라 한계가 있어요. (글씨가 빼곡히 적힌 노트를 들어올리며) 여기에 300여 가지 음식들에 대한 단상이 정리돼 있기는 하지만. 한 500회쯤 쓰면 퓨전 같은 것도 다룰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계획이 없어요. 언제 라면은 한번 써볼 생각입니다. 김건우: 잠깐 뵌 것만으로도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젊음의 비결은 어디 있는지. 김: 어린 나이부터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하고 몸을 많이 던졌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다보니까 사실 철이 안 들었어요. 신동엽의 시를 보면 모든 철든 것들은 물러가라고 하잖아요. 철이 안 든 채로 스무살 때부터 삼십년이 지나가버린 거야. 그러다보니까 나이에 비해 젊은 모습이 보여지는 것 같고. 감옥에서, 우리나라에서 ‘구라’라면 지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있었어요. 백기완·김지하·유홍준·장준하 선생도 같은 감방에 있었죠. 사식을 시키면 식당에서 따로 먹게 하니까 그 재미로 사식을 시켜서 천천히 먹어요. 먼저 김지하씨가 얘기를 풀면 백기완 선생이 ‘지하야 나도 좀 얘기하자’며 끼어들죠. 유홍준씨도 말을 무지 잘하니까 양쪽의 틈을 노려서 얘기를 하죠. 그게 과외 공부보다 더 좋았어요. 민족문제니, 음식이야기도 거기서 많이 배웠지. 내 글 보고 많은 사람들이 유홍준의 우리 문화유산 답사기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다음에 책 제목을 ‘김학민의 우리 음식유산 답사기’로 달아볼까 (웃음). 정리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김: 그러면 머리가 아파서 되겠어요? 보통 시민들의 대화 주제가 우리나라는 정치나 회사일이지만 유럽은 음식입니다. 우리는 대개 술 얘기 하면 얼마나 많이 먹었느니, 폭탄주를 어떻게 먹었느니, 취해서 어쨌느니 하는 얘기를 하는데, 그러지 말고 술에 깔려 있는 사회·문화 얘기를 해야죠. 음식에 대한 품격 있는 얘기들을 같이 풀어나가면 대화를 풍부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정희: 음식 칼럼인데 음식점 얘기는 조금 나오고 음식에 관련된 문화나 역사가 많이 나오는데, 관련 자료를 따로 모아 조사하시는지. 김: 대부분의 매체가 어느 집이 맛있고 그 음식의 영양가가 어떻고 하는 글을 싣는데, 너무 천편일률적이라 새로운 각도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제가 소개하는 음식점이 제일 맛있는 집이라고 강조하지도 않습니다. 맛이란 것이 워낙 주관적이잖아요. 칼럼에 식당 정보도 필요하니까 음식이야기에 곁들이는 수준이죠. 저는 30년 전부터 음식에 얽힌 역사·문화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칼럼을 쓰다보니까 통설을 그냥 글에다 올릴 수 없어서 자료를 많이 뒤졌죠. 요즘은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합니다. 하루종일 자료만 뒤져본 적도 많아요. 인터넷 자료는 별 가치가 없고 옛날 문헌 등을 많이 뒤져봅니다. 최일우: 학생운동도 하고(67학번인 김학민씨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반독재투쟁 때문에 94년에야 졸업할 수 있었다) 출판사 경영도 하셨는데 어떻게 음식칼럼을 쓰게 되셨는지. 김: 특별한 계기는 없고 음식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본 책들을 많이 읽었어요. 우리나라 음식들을 문화인류학적으로 분석하는 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옥자: 사람이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채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 인류가 식품으로 인정해온 것 중 개고기처럼 극단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 많아요. 하지만 자기의 관습으로 다른 쪽의 관습을 평가하고 억누르는 모습은 문제가 있습니다. 채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꼭 채식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원시시대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잡식을 해야 했죠. 그러나 육식을 부추기는 신화에는 반대합니다. 미국은 곡물과 육류 생산 사이의 경계라는 게 없어졌어요. 대부분의 곡물은 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료로 쓰입니다. 그 곡물로 전 세계를 먹일 수 있는데도요. 미국의 메이저 곡물업체들, 햄버거 업체들은 끊임없이 고기의 신화를 만들어냅니다. 때문에 우리는 육식에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죠. 제정희: 저는 미식가라는 사람들이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맛있는 걸 찾아서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느 책에서 ‘맛있는 걸 찾아먹는 건 인간의 탐욕일 뿐’이라는 대목을 읽은 것 같은데요. 김: 저도 맛있는 집을 억지로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에요. 가까운 집들 중 기왕이면 맛있는 데로 가는 거죠. 맛있는 걸 찾는 것도 본능 아닐까 싶어요. 맛은 결국 단맛이 원초적인데, 단맛 때문에 전쟁도 있고 퇴폐도 있고 부정도 있었죠. 단맛이 인간의 본원적인 맛이면서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어왔어요. 제정희: 음식점에서 소개해달라는 압력 같은 건 안 들어오나요. 김: 제가 소개한 음식점들을 보십쇼. 어디 로비가 들어올 집인가(웃음). 체인점이나 기업화된 음식점은 잘 소개 안 합니다. 시골 궁벽한 곳의 집들이 많아서 <한겨레21>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소개되길 원하지 않는 주인들도 많아요. 제정희: 음식 선정기준은 뭔가요. 이번주에 그걸 먹고 싶어서 쓰시는지. 김: 음식보다는 그 음식에 얽힌 이야기가 정해져야 씁니다. 가급적 여름엔 여름 음식, 가을에 가을 음식 등으로 제철 음식을 해야 되는데, 가끔 이야기가 정리되지 않아서 싣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냥 정리된 이야기를 하다보니 제철이 아닌 음식도 소개됐는데, 이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음식 소개가 아니라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일종의 에세이로 봐달라는 겁니다. 그 음식점이 음식을 잘한다 못한다가 중요한 게 아니고. 조일억: 선생님이 만약에 햄버거를 먹고 쓰신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궁금해요. 김: 맥도널드에 대해 한번 쓰고 싶어요. 왜 근대 들어 인간이 육식에 대한 탐욕을 갖게 되는지. 여기엔 맛의 추구도 있지만 자본의 조작도 있죠. 소리나: 개인적으로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김: 칼럼에 여러 번 나온 그 음식이 좋아요 (위원들 ‘아, 개고기’ 하며 웃음). 소리나: 음식에 관한 책을 쓰실 계획도 있는지. 김: 원고료가 적어서 품삯이 안 됐으니 칼럼 모아서 책을 내야죠 (웃음). 박희진: 사실 소개되는 음식에 한계가 있어요. 저는 퓨전이나 분식 등을 좋아하는데요. 김: 제가 모든 음식에 대해 아는 게 아니라 한계가 있어요. (글씨가 빼곡히 적힌 노트를 들어올리며) 여기에 300여 가지 음식들에 대한 단상이 정리돼 있기는 하지만. 한 500회쯤 쓰면 퓨전 같은 것도 다룰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럴 계획이 없어요. 언제 라면은 한번 써볼 생각입니다. 김건우: 잠깐 뵌 것만으로도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젊음의 비결은 어디 있는지. 김: 어린 나이부터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하고 몸을 많이 던졌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다보니까 사실 철이 안 들었어요. 신동엽의 시를 보면 모든 철든 것들은 물러가라고 하잖아요. 철이 안 든 채로 스무살 때부터 삼십년이 지나가버린 거야. 그러다보니까 나이에 비해 젊은 모습이 보여지는 것 같고. 감옥에서, 우리나라에서 ‘구라’라면 지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있었어요. 백기완·김지하·유홍준·장준하 선생도 같은 감방에 있었죠. 사식을 시키면 식당에서 따로 먹게 하니까 그 재미로 사식을 시켜서 천천히 먹어요. 먼저 김지하씨가 얘기를 풀면 백기완 선생이 ‘지하야 나도 좀 얘기하자’며 끼어들죠. 유홍준씨도 말을 무지 잘하니까 양쪽의 틈을 노려서 얘기를 하죠. 그게 과외 공부보다 더 좋았어요. 민족문제니, 음식이야기도 거기서 많이 배웠지. 내 글 보고 많은 사람들이 유홍준의 우리 문화유산 답사기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다음에 책 제목을 ‘김학민의 우리 음식유산 답사기’로 달아볼까 (웃음). 정리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