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개편의 옥석을 가리는 제2회 독자편집회의… 피부로 느끼는 현실의 문제를 좀더 철저히!
“잠시 좀 나가 주시겠어요? 저희들끼리 할 얘기가 있어서요.”
독자편집위원회의 두 번째 회의가 열린 지난 10월20일 출판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며 못다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독자편집위원들을 보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자편집위원회를 시사주간지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인 만큼 위원들에 대한 주변의 기대와 관심도 많고 이에 따른 부담감도 클 것이다. 혹시 이들이 버거워하는 것은 아닐까. 무슨 ‘은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일까. 그러나 밖에서 머쓱하게 기다리는 기자에게 위원들은 차비로 나눠준 3만원이 든 봉투를 차곡차곡 모아 건네주었다. “베트남 성금으로 쓰세요.” 이들의 환한 표정을 보며 든 생각. <한겨레21>의 독자는 언제나 기자보다 한발 앞서간다. 두 번째 회의에는 서울에 거주하는 9명의 위원 중 김복숙, 홍윤기, 이은주, 강화수, 문진화, 이혜연, 이선숙씨 등 모두 7명이 참여했다. 약 3시간에 걸쳐 지면개편호(제326호)부터 330호까지의 기사들에 대한 평가와 토론, 기사제안이 이어졌다. 서로 다른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만큼, 같은 기사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차가 존재했다. 전반적으로 지면개편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편이었고, 특히 ‘시시비비’, ‘성역깨기’, ‘마이너리티’, ‘아시아네트워크’ 등 신설된 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이날 회의에서 326∼330호의 6개의 표지이야기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330호 빈부격차에 대한 기사였다. 최근 경제침체에 따라 심각해져가는 빈부격차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다뤘다는 평가였다. 반면 ‘발굴과 도굴의 진실’이나 ‘재판을 재판한다’는 편집진들의 기대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가장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린 표지이야기는 조기영어교육에 관한 기사(제329호). 홍윤기씨는 “10년 경력의 영어교사인 아내가 가장 열심히 읽은 기사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세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은주씨는 “시중 육아잡지에 나와 있는 정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또 “<한겨레21>이 이런 것까지 다뤄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됐다. 특집 기사들 중에서는 ‘마음의 텃밭에 시를 가꾸자’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저녁식사와 함께 진행된 토론에서 쾌도난담에 실린 김훈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발언이나 교회 내 성폭력을 다룬 성역깨기 기사 등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킨 쟁점들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다. 이은주씨는 김훈 국장의 발언에 문제가 많다며 “그를 초대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문진화씨는 “극소수의 목사들이 저지른 일을 마치 교단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확대했다”고 성역깨기를 질타했다. 교회 내 목사세습이나 세금 등의 문제 등은 전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으나 왜 극소수의 교회에서 나타난 성문제로 성역깨기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의 문제제기로 성역깨기의 위상에 대한 논의까지 개진되는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독자편집위원들의 열성은 계속됐다. 홍윤기씨는 일주일 전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까지 했고, 퇴원한 지 며칠 안 돼 성치 않은 몸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목이 잘 안 돌아가는 것 빼곤 멀쩡하다”며 웃음짓는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회의준비를 했다. 강화수씨는 아셈반대집회에 갔다가 바로 회의에 참석하는 바람에 말을 충분히 못했다며 글자가 빼곡이 적힌 A4 용지 5장을 건네주었다. 그 ‘골치아픈(?)’ 종이에는 지난호 기사들을 점수까지 매겨가며 세밀하게 분석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진화씨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그는 첫 번째 독자편집위원회 기사에서 ‘애인’을 ‘남편’으로 표기한 기자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한겨레21>을 읽은 동료 교사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했다고 한다.
다음은 각 독자편집위원들이 밝힌 기사평가와 제안 내용 등을 간추린 것이다.
홍윤기: ‘김영삼 주연, 김병관 우정출연’을 재미있게 봤다. 그러나 주간지 기사는 단순 사건 나열이 아니다. 코미디, 냉소적 시각은 기사내용에 적절치 않다. 냉철하고 심도깊은 시각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건강만세’가 없어졌는데 조금 아쉽다. 개편시 대안이 있었으면 좋았을걸. 기자실의 폐해를 파헤치는 ‘성역깨기’ 기사는 기자가 스스로의 성역을 파헤친다는 면에서 돋보였다. 이런 식으로 계속 나갔으면 좋겠다.
대학교수 임용에는 몇 천만원대부터 수억원까지 재단에 기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 현실이 사람들을 좌절감에 빠뜨린다. 그렇게 임용된 사람이 교육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겠는가. 전국대학강사노조 사이트의 글들을 찾아보면 안타까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아주었으면….
이은주: 지면개편 이후 문화면이 강화된 것 같다. 326호 이슈추적에서 북파간첩 문제를 공식화한 것이 좋았다. <한겨레21>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정치면 DJ정권 위기에 대한 기사는 대안제시라는 부분에서 문제를 느꼈다. 인물론에 그친다. 327호 쾌도난담에는 김훈 국장의 발언이 많이 실려서 최보은, 김규향의 반론이 잘 얘기되지 않은 것 같다. 328호 ‘사내하청 노동자라는 이름의 절망’이 눈에 띄었다. 문화면에 언론비평을 추가했으면 좋겠다. 다른 언론은 하지 못하는 일이다.
지금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알몸 수색을 다루어야 한다. 양심수들도 일반 사범과 똑같이 알몸수색을 한다고 들었다. 내가 독자편집위원 활동을 한다고 하니까 병원노련 위원장이 나한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다. 완전히 다 벗겨서 항문을 들춰보는 수모까지 겪었다는 것이다.
문진화: 개편 뒤 편집이 좀더 산뜻해졌다. 시를 다룬 특집이 맘에 들었다. 시사주간지는 뭔가 무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시나 환경부분에서 야생화를 다룬 기사는 정감어린 기사였다. 주간지는 정보제공의 역할도 해야 하는데 경제면은 그런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
이은주씨가 알몸 수색 문제를 제기했는데 우리 학교에서도 그 문제가 심각하다. 25일 전교조 선생님들이 모두 연가를 내기로 결정하고 후원금도 걷고 있다. 언론이 교육을 위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좀 크게 다루어 주었으면 한다.
이선숙: 지면개편 때 어디가 어떻게 바뀐다는 충실한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제대로 설명이 안 된 것 같다. ‘교육’, ‘통일로’ 등이 나오다말다 해서 약간 혼란스럽다. 독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통해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들 등록금 문제도 다시 관심을 기울여달라. 기성회비는 액수가 많은데 비해 어느 용도로 쓰이는지 알 수 없다.
이혜연: 시시비비는 지면개편호부터 기대를 많이 했는데, 2주에 걸쳐 읽으면서 ‘썰렁’하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모니터단이 지적한 것처럼 본인이 빠진 시비가 무슨 소용인가. 서태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 자신의 입장을 다 밝히지 않았나. 2주나 실을 필요는 없었다. 마이너리티는 다 좋았다. 329호 과학면 건강식품은 사진이 328호 ‘종교보다 깊은 신념, 채식’이라는 기사에 실린 것이 그대로 나왔고, 사진설명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이것은 정말 <한겨레21>의 실수이다. ‘이상수의 동서횡단’은 정말 유익하게 읽었고 기획이 계속됐으면 한다. 결여된 사상의 자유 등을 지적하는 좋은 기사인 것 같다.
김복숙: ‘백화점식 나열’은 문제가 있다. 집중을 한번 해봤으면 어떨지. 여성지는 인테리어, 의상, 문화 등을 다 다룬다. 이렇게 나가면 개성이 없어진다. <한겨레21>이 다른 주간지를 따라가려고 하다가 개성이 없어지면 안 된다. 또한 ‘기사예고제’ 같은 걸 실시해서 다음호에는 이런 기사를 실겠다는 것을 공지하여 좀더 집중력 있게 기사를 읽도록 만들었으면 한다.
월세는 서민들에게 엄청난 짐이 되고 집주인에게는 큰 수익을 안겨준다. 집주인들이 세금을 제대로 신고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는 논현동은 월세로 바꾼 집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한번은 짚어줘야 한다.
강화수: 전체적으로 접근방식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내용은 괜찮아졌다. ‘대법관들 구멍가게로 떠나다’는 실제로 전관예우 악습으로 인해 어떤 판결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예가 부족하지 않았나. 또한 변호사제도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점검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민사소송도 변호사 없으면 안 된다. 정치인들은 언론에 노출을 바라는데, 386 의원을 다룬 기사들은 알게 모르게 이런 정치인들의 욕망에 편승해갔다는 생각도 든다. 일간지와 차별되는 신선한 정치뉴스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시아 네트워크는 기대를 많이 했는데 ‘꺾이지 않는 깃발’이 너무 길었다. 마이너리티는 소수자들의 문제, 음지를 밝혀준 좋은 기사들이었다.
제2차 외환 자율화와 관련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교수들이 많다. 심지어는 그대로 놔두었다가는 경제위기가 다시 온다고 지적하는 교수들도 있다. 그 문제를 다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온라인 복표 사업도 문제가 있다. 온라인상에서 복권을 사게 되면 접근성이 굉장히 좋아져서 전국이 도박장화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다.
유현산 기자bretolt@hani.co.kr
| 제1기 독자편집위원회 명단 채규정(53) 교사 kyjoungu@edunet4u.net 장성하(40) 북디자이너ss5847@chollian.net 김복숙(39) 주부 boksooki@hanmail.net 홍윤기(37) 교수 uirohong@netsgo.com 이은주(32) 지하철공사 노동자 kimsane@nownuri.net 이혜연(29) 연구원 frufrok@hanmail.net 양성윤(29) 사진작가 ugeme1999@yahoo.co.kr 강화수(28) 시민단체 간사 hwasoo@mail.ccej.or.kr 문진화(28) 양호교사 394-6505@hanmail.net 김호귀(25) 교사 shyarara@chollian.net 이선숙(22) 대학생 sunsook_lee@hanmail.net |

(사진/지난 10월20일 열린 독자편집위원회 2차 회의, 식사시간을 포함해 밤10시까지 열띤 논쟁이 이어졌다)
독자편집위원회의 두 번째 회의가 열린 지난 10월20일 출판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며 못다한 얘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기려는 순간,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독자편집위원들을 보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자편집위원회를 시사주간지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인 만큼 위원들에 대한 주변의 기대와 관심도 많고 이에 따른 부담감도 클 것이다. 혹시 이들이 버거워하는 것은 아닐까. 무슨 ‘은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일까. 그러나 밖에서 머쓱하게 기다리는 기자에게 위원들은 차비로 나눠준 3만원이 든 봉투를 차곡차곡 모아 건네주었다. “베트남 성금으로 쓰세요.” 이들의 환한 표정을 보며 든 생각. <한겨레21>의 독자는 언제나 기자보다 한발 앞서간다. 두 번째 회의에는 서울에 거주하는 9명의 위원 중 김복숙, 홍윤기, 이은주, 강화수, 문진화, 이혜연, 이선숙씨 등 모두 7명이 참여했다. 약 3시간에 걸쳐 지면개편호(제326호)부터 330호까지의 기사들에 대한 평가와 토론, 기사제안이 이어졌다. 서로 다른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만큼, 같은 기사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차가 존재했다. 전반적으로 지면개편에 대해서는 만족하는 편이었고, 특히 ‘시시비비’, ‘성역깨기’, ‘마이너리티’, ‘아시아네트워크’ 등 신설된 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이날 회의에서 326∼330호의 6개의 표지이야기 중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330호 빈부격차에 대한 기사였다. 최근 경제침체에 따라 심각해져가는 빈부격차 문제를 시의적절하게 다뤘다는 평가였다. 반면 ‘발굴과 도굴의 진실’이나 ‘재판을 재판한다’는 편집진들의 기대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다. 가장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린 표지이야기는 조기영어교육에 관한 기사(제329호). 홍윤기씨는 “10년 경력의 영어교사인 아내가 가장 열심히 읽은 기사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세살배기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은주씨는 “시중 육아잡지에 나와 있는 정보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꼬집었다. 또 “<한겨레21>이 이런 것까지 다뤄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됐다. 특집 기사들 중에서는 ‘마음의 텃밭에 시를 가꾸자’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저녁식사와 함께 진행된 토론에서 쾌도난담에 실린 김훈 전 <시사저널> 편집국장의 발언이나 교회 내 성폭력을 다룬 성역깨기 기사 등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킨 쟁점들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다. 이은주씨는 김훈 국장의 발언에 문제가 많다며 “그를 초대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문진화씨는 “극소수의 목사들이 저지른 일을 마치 교단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확대했다”고 성역깨기를 질타했다. 교회 내 목사세습이나 세금 등의 문제 등은 전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으나 왜 극소수의 교회에서 나타난 성문제로 성역깨기를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의 문제제기로 성역깨기의 위상에 대한 논의까지 개진되는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독자편집위원들의 열성은 계속됐다. 홍윤기씨는 일주일 전 교통사고를 당해 입원까지 했고, 퇴원한 지 며칠 안 돼 성치 않은 몸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목이 잘 안 돌아가는 것 빼곤 멀쩡하다”며 웃음짓는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회의준비를 했다. 강화수씨는 아셈반대집회에 갔다가 바로 회의에 참석하는 바람에 말을 충분히 못했다며 글자가 빼곡이 적힌 A4 용지 5장을 건네주었다. 그 ‘골치아픈(?)’ 종이에는 지난호 기사들을 점수까지 매겨가며 세밀하게 분석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문진화씨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그는 첫 번째 독자편집위원회 기사에서 ‘애인’을 ‘남편’으로 표기한 기자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한겨레21>을 읽은 동료 교사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했다고 한다.

(사진/독자편집위원회는 시사주간지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인만큼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있다.10월5일치<미디어오늘>에 게재된 관련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