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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교장 자살의 본질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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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4-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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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기 독자편집위원회의 힘찬 출발… 이라크전 심층분석과 북한 인권문제 관련기사 돋보여

6기 위원들은 만만치 않았다. 첫 모임에서 반수 이상이 새벽 2시까지 남아 술잔을 기울인 기수는 독자편집위원회 역사상 없었다. 6기의 항해는 ‘음주’에 이은 ‘거침없는 비평’이 되지 않을까. 모두 1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6기는 최일우·소리나·김건우 위원이 5기에 이어 계속 활동하고, 2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위원들이 새로 참여했다.

첫 회의에서 452호 표지이야기 ‘미국은 진다’와 456호 ‘민감하다, 뜨겁다 북한 인권’이 호평을 받았다. 452호는 전쟁에 대한 심층적 분석과 일관성 있는 반전·평화 논조가, 456호는 북한 인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돋보였다는 평이다. 한편, 455호 사람과 사회 ‘구호만 있고 학생은 없다’는 문제를 심층적으로 보지 못하고 단순히 학생의 입장에서만 서술했다는 비판을, 453호 특집 ‘아이 낳지 않을 권리’는 지나치게 신변잡기로 흘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옹호론을 제기하는 위원도 있어 찬반 논란이 벌어졌다.

어느 기보다 ‘드센’ 6기 활동은 6개월 동안 계속된다.

소리나: <한겨레21>이 다른 매체에 비해 민감하거나 잘 건드리는 부분이 있는데 456호에 북한 인권에 대해 잘 다뤄준 것 같아요. 처음에는 주간지가 연성화돼야 독자층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너무 심해지는 거 아닌가 생각하게 돼요. 배종옥·허재 같은 분들이 지면에 나오지 말아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크게 보도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453호 ‘아이 낳지 않을 권리’를 보고 아이템은 좋았는데 글을 읽고 실망스러웠어요. 너무 신변잡기적이어서 기대에 못 미쳤어요. 초등학교장 자살사건 기사도 미흡한 같아요. 그 사건에 대해 차별성 있는 분석을 읽고 싶었는데 너무 가볍게 넘어간 건 아닌지요.


최일우: 초등학교 교장 자살사건, 기자가 뛰어든 세상, 아이 낳지 않을 권리 세 가지를 짚어보고 싶어요. 교장 자살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는데도, 학생들의 피해만 강조한 기사는 진실 파악에 미흡하지 않았나 싶어요. 기간제 교사 문제에 대해 알고 싶은데 잘 언급된 기사도 없었고요. 최근 많은 매체들이 기자가 체험하는 기사를 싣고 있어요. 기자가 체험을 통해 우리 현실을 생생하게 알려줄 수 있다면 좋다고 봅니다. 하지만 과거에 나온 애로영화 스태프 체험 같은 건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점에서 453호 ‘양심수와 함께 하는 봄의 축제’를 읽으면서 ‘아,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기사라면 충분히 3~4일간 뛰어들어도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해요. 머리보다 마음으로 쓰는 기사가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제정희: 제 경우에는 ‘기자가 뛰어든 세상’에 잘 모르는 분야가 나오면 재미있어요. 양심수 문제도 좋지만 잘 모르는 분야, 막연하게 편견과 거부감이 있는 분야를 기자가 체험하면서 소개해주니까 좋은 것 같아요. 오히려 전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것을 평이하게 쓴 기사가 실망스러워요. 인라인 스케이팅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험했거나 쉽게 체험할 수 있거든요. 교장선생님 자살사건 기사를 보면 양비론이 아닌가 의심스러워요. 학생이 피해를 보는 건 맞지만 이 문제를 전교조와 교장단의 대립처럼 몰아가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한겨레21>조차 그렇게 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차 심부름이나 기간제 교사 문제말고 더 본질적 문제, 교장 보직제의 문제를 얘기해야 합니다. 교사다 보니 평화교육의 문제를 다룬 454호 표지이야기에 관심이 갔어요. 그런데 읽어보니까 실망스럽더군요. 교육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어요.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를 얘기해줄 필요가 있어요. 계속 이라크전 관련 표지이야기가 나오다가 455호에서 인라인과 마라톤이 갑자기 나와 놀랐어요. 너무 허무하게 분위기를 전환한 것 아닌가요.

사진/ 4월 기사 가운데 위원들에게 논란대상이 된 기사들. 찬반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전미영: 인라인과 마라톤이 뜬금없어 놀랐다고 하셨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2~3년 전부터 <한겨레21>이 노동문제에서 발을 뺀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한겨레21>만의 독특함이라고 생각해요. 사안에 따라서 가벼움과 무거움의 수위조절을 할 수 있는 능력, 무료해질 만하면 재미있어지고 그렇다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이 <한겨레21>의 힘이 아닐까요. 4월에는 451호가 가장 좋은 호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과 평화로 묶였습니다. 시와 반전운동을 다룬 ‘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다시 보는 틱낫한’ 등이 돋보였습니다. 456호에 북한 인권을 다룬 기사도 참 좋았어요.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떻게 건드려야 할까는 여러모로 문제가 될 것 같아요. <한겨레21>이 북한에 대한 애정과 불안함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박희진: ‘아이 낳지 않을 권리’가 기억에 남았어요. 독자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건 좋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떻고 정부는 어떤 조처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쉬웠어요. 454호 경제면 ‘사내 여성회의 행복한 퇴장’을 보고 반가웠는데 회사가 하나밖에 안 나오더군요. 회사에서 보낸 보도자료를 읽고 쓴 느낌밖에 들지 않았어요. 다양한 정보를 주는 기사가 됐으면 합니다.

김옥자: 전 결혼 7년째인데 아직 애가 없어요. 일부러 안 낳은 건 아닌데 검사를 해봐도 이상은 없어요. 인공수정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까지 아이를 낳아야 될까 생각했어요. 무모하게 한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 453호 ‘아이 낳지 않을 권리’를 보면서 내 입장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좋은 엄마 콤플렉스를 여자들에게 강요하는 문제에 대한 심층취재를 다시 한번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454호 움직이는 세계 ‘달러가 침략자를 구원하리라’는 제가 생각하지 못한 점을 다뤘고 참 유익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455호 인라인과 마라톤 기사를 굉장히 재미있게 봤고 뛰고 싶은 욕망을 느꼈어요. 약간 가볍게 다룬 게 마음에 걸린다는 분이 있지만 긴장과 완화를 적당히 조율해 표지이야기를 기획하는 게 좋다고 봐요. 456호 정치면에 실린 국회의원과 운전기사의 세계에 대한 기사가 재미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운전기사들의 고충을 알게 돼서 유익했습니다. 시사SF가 예전에는 참 재미있었는데 요즘은 무겁고 딱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김종민: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룬 기사가 단순하게 찬반 입장을 대비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인권을 미국의 잣대로 보지 말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이라크전 이후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데, <한겨레21>에서 일관되게 한 게 민족의 화해 협력을 많이 강조했고 그 모습이 좋았어요. 우리가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남북의 화해협력에 있다고 봅니다, 미국과의 외교전술만으로 한반도의 상황을 개선할 수는 없지요. 언젠가는 한번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겨레21>이 그런 논쟁을 주도하는 매체가 되면 좋겠어요. 한총련 의장의 편지를 실은 것도 <한겨레21>의 ‘용감함’을 보여준 것 같아요.

허유경: 저는 일단 제목을 보고 제목이 마음에 드는 기사를 먼저 읽는데 가끔 제목과 내용이 잘 안 맞는 기사가 있어요. 제목을 보고 내용을 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아요. 경제기사는 어려운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쉽게 설명을 해주면 좋겠어요.

조일억: 인라인 대 마라톤은 ‘꼭 이 시기에 이 얘기가 표지이야기로 다뤄져야 하나’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전 그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주간지도 대중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편하고 유쾌하게 가는 건 좋지만 매호 사회적 이슈를 정확하게 물고늘어지는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연성화는 좋지만 최근 이슈를 끌고가는 적극성이 부족하지 않나 싶네요. 기간제 교사 얘기가 여러 번 나왔는데 455호 ‘구호만 있고 학생은 없다’는 아이들의 시각에서 본 짧은 글 하나뿐이어서 아쉬웠어요.

김선열: 저는 독자들이 너무 <한겨레21>에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겨레21>이 특정 당이나 이념단체의 기관지가 아닌데 너무 한쪽 방향으로 자꾸 몰아가려고 합니다. 잡지는 기본적으로 잡지로서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떤 특정한 방향을 가진 사람들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어요. <한겨레21>이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꼭지를 여러 개 할애해서 독자들에게 뭔가 가르치려는 자세를 보이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경제분야는 가진 사람들을 너무 배격하는 모습이 보여요. 452호에서 국세청장이 세금 적게 낸 것에 대해 자세하게 기사를 쓰면서 결국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 세제개편을 한 것 아닌가라고 비판하는데, 잘 이해가지 않아요. 공정한 룰을 정해놓으면 그 룰에 따라 최대한 노력하면 되는 건데, 그 노력을 비판하는 기사는 좀 무리하다는 느낌이 들죠.

김건우: 453호 ‘북폭, 위험한 상상’에서 ‘나이 먹으면 미국을 믿네’라는 제목은 장년층을 너무 비꼬는 듯했어요. 같은 호 전국 교도소 순례는 정말 신경써서 기사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호 김장호의 환상박물관 ‘가장 악랄한 최정예’는 미국 특전사 같은 특수부대에 대한 괜한 동경심만 유발하지 않았나 싶어요. 같은 호 문화면 ‘문학은 항복하지 않으리’가 좋았습니다. <한겨레21>이 시사주간지기 때문에 문학에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있는데, 이번 기사를 보고 문학이 시사와 단절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같은 호 경제면 ‘폭탄은 달러에도 떨어진다’는 전쟁과 미국 경제상황을 잘 분석해준 기사였어요. 이번 기회에 우리 경제가 얼마나 미국경제에 예속돼 있는지, 이런 예속을 벗어날 길은 없는지 분석하는 기사가 있었으면 해요. 전 모든 문제를 역사적으로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454호에서 사스 문제를 역사적으로 바라보니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455호 사람과 사회에 새만금 삼보일배에 동행한 교사의 기사가 있었는데, 새만금에 관심을 계속 가지는 것 같아 고마웠어요. 하지만 삼보일배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방법을 소개해 줬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사진/ 6기 독자편집위원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옥자,제정희,허유경,박희진,전미영,조일억,김선열,김종민,소리나,최일우 위원(이용호 기자)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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