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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겐 너무 가벼운 창간기념호

453
등록 : 2003-04-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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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중매혼 기사에 찬반 엇갈려… 왜 창간기념호에서 다양한 특집 기획을 찾아볼 수 없나

5기 독자편집위원회의 항해가 닻을 내렸다. 5기 위원들이 활동한 6개월 동안 한국 사회는 대선, 지하철 참사, 북핵 위기, 이라크 침공까지 정말 많은 사건을 겪었다. 격변기의 <한겨레21>을 지켜준 위원들께 감사드린다.

마지막 회의에서는 창간기념 특대호(450호)가 도마 위에 올랐다. 우선, 표지이야기 ‘결혼, 혹은 위험한 쇼핑’에 대한 비판과 지지가 엇갈렸다. 최근 급증하는 국제중매혼의 실상을 체험르포라는 형식을 통해 제대로 파헤쳤다는 칭찬이 많았으나,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국제중매혼을, 그것도 007영화를 방불케 하는 잠입취재 방식으로 다뤄야 했는가”, “선보러 나온 베트남 여성의 인권을 무시했다”는 따끔한 질책도 있었다. <한겨레21>은 독자들의 비판을 수용해 452호에 당사자 좌담을 실었으며 앞으로도 이 문제의 합리적 해결방안을 논의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위원들 대부분은 창간기념호가 ‘함량 미달’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다양한 기획을 선보인 지난해와 달리 인도네시아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의 기고를 제외하면 특집호라고 느낄 수 있는 특별 기획들을 찾아볼 수 없어 밋밋했다는 지적이다.

450호 표지이야기 ‘결혼,혹은 위험한 쇼핑’에 대해 “문제를 잘 파헤쳤다”는 칭찬과 “중대한 시기에 왜 이런 문제를 표지이야기로 다뤄야 했나”는 비판이 엇갈렸다.

이윤영: 447호 표지이야기 ‘방망이는 말한다’의 부제는 ‘때리는 남편들의 육성고백’입니다. 이 한줄로도 관심을 끌기 충분했어요. 읽고 나서 보니 기사에 쓰인 ‘속내’라는 단어는 속내가 아닌 ‘변명’이라고 했어야 옳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폭력남편의 속내를 들었다면 맞고 사는 아내의 그럴 수밖에 없는 속내도 들어줬어야 하는 게 아닌지요. 시인 김갑수씨의 글은 개인적 울분을 손광기씨에게 화풀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많은 독자를 상대로 쓰는 글이라면 근거 있는 사실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했어야지 당사자를 비아냥거리는 듯한 태도로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448호 표지이야기 ‘도시여 식은땀 나는 흉기여’에서 대구참사 현장을 둘러보며 쓴 기사와 ‘메트로폴리탄이 의미하는 것’ 이후의 기사가 한데 묶여 있는 것이 좀 이상했어요. 현장르포는 르포로 끝내고 이번 사건의 근본적 문제와 여기서 파생된 또 다른 문제들에 대한 문제점을 따로 분석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450호 ‘국경 없는 언론으로 가자’는 아시아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한겨레21>의 창간특집 기사로 아주 적절했다고 봐요. 더구나 첫장을 장식했으니 더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외국인이 쓴다는 걸 알고 읽어서 그런지 번역문체라는 게 느껴져요. 영어에 목마른 사람들, 혹은 심심한 사람들을 위해 한쪽 구석에 원문 그대로 올려주는 건 어떨까요. 450호 ‘노무현의 여자들’이란 표현은 대통령이나 여성장관들 모두에게 무례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어요. 노 대통령이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태클을 걸어올 듯싶어요.(웃음) 447호에 청와대 비서진 31명에 대한 기사가 실렸고 450호에 청와대를 접수한 투사들에 대한 기사가 또 실렸어요. 이 기사에서 청와대로 들어간 젊은 피들 모두 운동권 출신이라는 것을 나열한 것 외에 무슨 정보가 있었나요. 독자는 왜 수십명의 프로필을 읽어야 하나요. 결론은 그들 모두 고난의 세월을 함께한 386세대라는 것뿐인데. 창간 9돌 특집호였는데 한겨레의 9년을 있게 한 독자들의 의견을 모아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대담, 수다, 축하 메시지 등등 몇주 전부터 광고를 냈더라면 한면을 장식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10주년 때 한번에 몰아서 축하해달라고 미뤄놓은 건지.

승인: <한겨레21>의 주요 섹션들이 2주 간격으로 연재되고 있는데 ‘2% 경제학’은 개인적으로 매주 연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경제분야에 관심은 많은데 지식이 부족해 허덕이는 저로서는 쉬운 내용으로 경제 이야기를 풀어가서 읽기도 좋고 이해하기도 좋거든요. 지금까지는 주로 우리 생활 가까이 있는 문제에서부터 접근했는데, 다른 분야, 예를 들어 세계 경제나 증권에 관련된 기사도 써주었으면 합니다. 450호는 창간 9돌 특집호였는데 ‘창간 9돌’이라는 이름에 맞는 특별 기사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템포> 기자의 글 외에는 그냥 매번 보던 <한겨레21> 같아 보였습니다. 특히 <한겨레21> 내에서 <한겨레21>에 관한 비평, 아니면 반성 등을 저는 참 듣고 싶었거든요. 언론개혁으로 우리나라가 떠들썩했던 시간이 이제 많이 지났는데, 한번쯤 다시 짚어줘도 좋았을 텐데요. 1기 독자편집위원들의 마지막 회의 주 내용이 뭔 줄 아십니까? “언론개혁은 끝까지 물고늘어져 달라”였습니다. 내년 10돌이나 500호 특집호가 벌써 빨리 보고 싶어지네요. 마지막으로, 451호부터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뀌었던데요. 처음 봤을 때는 그 전의 디자인에 비해 글자가 작아 보여 읽기 답답했는데 계속 보니 오히려 여백이 더 많아져 편안한 느낌이 들더군요. 우리나라에서 ‘문화’ 하면 보통 20, 30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사례가 많지요. 그들의 부모 세대, 40, 50대들을 위한 문화는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있습니다. 영화 <클래식>이 장년층 여성들에게 인기 있었다는 기사가 문득 생각나네요. 40, 50대 문화 기사를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주 토요일에 라디오에서 잠깐 들었는데 이북에서 넘어온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가 생겼다더군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지 못해 많은 부작용들이 있고, 그래서 그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생긴 거라던데, 한번 다뤄보면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최일우: 449호 이슈추적 ‘이도행은 이미 사형을 당했다’를 읽고 432호 ‘대선이 두려운 56인의 사형수’의 사형제 폐지에 관한 기사가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한 인간의 죄에 유·무죄를 가림에 있어 진정으로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다시 확인하는 기사였습니다. 사람과 사회 ‘119억800만원짜리 장관자리’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이야기는 사실 스톡옵션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의 이중국적과 병역문제입니다. 이런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단지 경제적 이득을 포기한 점만 부각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집2 ‘나는 잠꾸러기가 되련다’는 그동안 잠을 적게 자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신선한 기사로 다가왔어요. 특히 잠을 적게 자는 것으로 잘못 알려진 유명인들의 일화를 읽고 유난히 초저녁 잠이 많아 학창시절 내내 부모님께 혼난 과거를 기억해내고 웃음이 절로 나왔어요. 이 기사를 읽고 하찮은 주제지만 기자의 시각과 노력에 따라 유익한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50호 표지이야기 베트남 호치민 국제매매혼 체험르포를 읽고 몹시 착잡한 마음이 들었어요. 더구나 간절한 눈빛으로 간택되길 바랐을 항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사실 <한겨레21>이 베트남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줄은 알지만 하필 중차대한 시기에 표지이야기로 등장할 만큼 이런 기사가 필요했을까요. 미국 중심의 언론관과 세계관에 길들여진 나에겐 <한겨레21>은 강대국 중심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망원경입니다. 반전의 외침 속에 이라크 전쟁이 치러지는 요즘은 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난 항상 ‘움직이는 세계’ 면에 눈길을 더 줍니다. 451호 프랑스와 세르비아 기사를 통해 전쟁의 부당성과 테러의 공포를 알 수 있었어요. 세계 각 도시에 있는 <한겨레21> 전문위원들의 소식은 어느 매체보다 신속하고 잘 정리되어 좋습니다.

김건우: 450호 표지이야기 ‘결혼, 혹은 위험한 쇼핑’을 읽고 언젠가부터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길거리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플래카드가 걸리기 시작해 그 실상이 궁금했는데 궁금증을 잘 풀어준 것 같아요. 사병월급 현실화, 군 영창 문제 등 쉬쉬하던 것들에 화끈한 폭격을 퍼붓는 점, 높이 살 만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속였다는 점은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450호 홍세화·한홍구 대담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두분이라 굉장히 기대했어요. 전에 박노자·홍세화님의 대담도 굉장히 재미나게 읽었거든요. 앞으로도 우리 시대 지성인들의 진지한 대담을 계속 듣고 싶어요. 그러나 홍세화님이 이번에는 대담이 아니라 취재기자 역을 하지 않았나 싶어 아쉬움이 듭니다. 450호 채팅 아시아는 다 좋은데 사진이 너무 걸립니다. 6명의 사진이 있죠. 나머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그 중 2명은 이미지 사진에다가 부담스런 포즈를 취해 성질이 날 지경입니다. 450호 김학민의 음식이야기는 “첫째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부근의 식당은 피한다”에서 시작되는 맛없는 집 소개법이 저한테는 참 깜찍하게 다가왔어요.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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