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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비판하며 아플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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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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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청문회]

한홍구 교수가 말하는 ‘한홍구의 역사이야기’의 이면… 자신의 눈으로 역사를 보라

"문부식씨를 비판할 때 저도 마음이 아팠어요." 필자 청문회에 처음 등장한 한홍구(가운데)교수.
“내가… 꼭 나가야 돼”

사람 좋아 거절 못하는 한홍구 교수를 끌고 회의실로 들어가기까지 이런 질문을 지겹게 받아야 했다. “실물보다 사진이 훨씬 나은데요.” 위원들은 한 교수와 처음 만나자마자 인사 대신 이구동성으로 이런 덕담()을 던졌다. 독자편집위원회는 지난 회의 때 첫 필자청문회 대상으로 골수팬을 많이 확보한 한홍구 교수를 지목했다. 위원들의 사명감과 한 교수 특유의 ‘말발’이 만난 덕택에 청문회는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을 훌쩍 넘겨 계속됐다. 한국사를 전공하게 된 계기,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비판하면서도 가슴 아팠던 기억, 글을 준비하고 집필하는 과정, 마감시간을 지키지 않는 이유까지 알려지지 않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를 짚어본다.

역사에 하나의 정답이 있을까


한홍구: 청문회는 돈을 많이 먹은 사람들이 하는 건데. (웃음) 안 나온다고 뻗대다가 나왔습니다. 전 서울 출생이고, 학부 때부터 한국사를 계속 공부했어요. 미국에 자료 수집하러 갔다가 주저앉아서 10년 동안 공부했습니다. 전공은 한국 현대사 중에서 김일성, 특히 민생단 사건입니다. 미국 가기 전에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 활동 등을 좀 했습니다.

최일우: 여기 나온다니까 주변에서 글 쓰는 모습이 어떨지 궁금해해요. 역사적 사실을 조합해서 쓰기 때문에 학술적인 글을 쓸 때와는 다를 텐데요.

한홍구: 처음에 쓰기 시작할 때는 준비를 참 많이 했어요. 준비한 게 많은데, 분량은 적으니까 억울한 생각도 들고요. 논문 준비하는 거하곤 틀려요. 주로 내가 얘기할 사람들에게 들려줄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뒷받침하는 에피소드들로 구성합니다. 책이 집에도 많이 있고 연구실에도 많이 있지만 여행용 가방에 차곡차곡 쌓아 갖고 다녀요. 처음에는 정해진 마감시간을 지켰는데 요즘은 속사정을 알다 보니(웃음). 마감시간이 늦어 담당기자가 속 타서 전화하면 이러죠. 자꾸 전화하면 펑크낼 거라고. (웃음) 원고 쓰는 것 자체는 재미있는데 마감을 맞추는 게 죽을 맛이죠. (한 교수는 월드컵 기간에 축구경기를 보다 마감시간을 넘겼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는 조남준 화백과 함께 마감시간을 안 지키는 대표적인 ‘악성 필자’다.)

이선숙: 전공을 한국사로 정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한홍구: 어려서부터 역사가 재미있어서 사학과를 가게 됐어요. 아마 열살, 열한살 무렵부터 역사공부하면 재미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최일우: 민족주의 사관, 식민사관 등 사관에 대한 얘기도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홍구: 역사이야기 맨 처음 시작할 때 “자기 눈으로 보자”는 얘기를 많이 썼어요. 민족주의자는 민족주의, 유물론자는 유물론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입장이 있어요. 대학에 자리잡고 나서 교육사회 전체가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각자가 자기 눈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하고 그런 판단을 위해선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해야 하겠죠. 하나의 정답이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경숙: 자료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해요. 역사는 특히나 그런 부분이 많은데요. 어떤 기준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요.

한홍구: 어떤 일관된 입장에 대해선 별로 생각 안 해봤어요. 격주 연재물이기 때문에 저 나름대로 잘 알려지지 않고 의미도 있고 흥미도 있는 것을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가 워낙 복잡해서 원래 생각한 건 절반쯤 써먹었고 절반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썼죠. 언론개혁 얘기, 수구와 보수의 차이, 연좌제 등이 그것입니다. 담당인 고경태 기자가 김두한 얘기 안 쓰고 뭐하느냐고 그래서 김두한을 썼고요. 전 가능한 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의 역사적 뿌리를 보여주고 싶어요. 한국 현대사를 전공하는 사람 입장에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문제제기 되는 사안이 어떤 맥락에서 전개됐는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시민운동가들과 함께할 순 없지만 그런 면을 볼 수 있으니까요. 장애인 문제, 동성애 문제 등도 한번 다루고 싶고요.

자기검열 할 때 있었나

소리나: 글을 쓸 때 자기검열을 하기도 하는지.

한홍구: 제가 민감한 주제들을 많이 건드린 편이죠. 자기검열을 깨려고 하는데 그래도 알게 모르게 자기검열이 작용하는 글들이 있죠. 가령 문부식·김지하·박노해씨 비판할 때 저도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 문제에 대해선 자기검열이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친일파 문제에서도 그렇죠. 전 물론 청산돼야 한다는 점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한 개인의 친일 문제를 놓고 비판할 때 “저 사람은 참 안됐다. 좀만 더 버티지” 하는 안타까움도 느껴요.

최일우: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쉽진 않겠죠. 책이나 영화를 보면 “먼 훗날 역사가 평가해주리라”라는 말이 많이 나오잖아요. 청문회도 그렇고. (웃음) 평가에 있어 일정한 시간을 두어야 하는 건지.

한홍구: 그건 사회적 약자가 말하느냐 강자가 말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역사가들은 순발력이 떨어지고 몸이 둔한 편이죠. 절 봐도 알겠지만. (웃음) 하지만 모든 행위에 대해서 당대의 평가가 있어요. 조선시대에도 당대의 사료를 작성하는 사관이 왕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에 남겼어요. 한 개인의 판단이긴 하지만 그 기록을 공유하면서 시기가 지난 뒤 다른 판단이 있을 수도 있어요. 요새 흔히 역사가 평가해주리라 하는 사람들은 대개 현재의 역사가들이 비판을 하고 있어요. 그런 평가는 바뀌지 않죠.

이경숙: 친일파는 물론 나쁘다고 하지만 당시에 태어났다면 그렇게 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지위를 가질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워요.

한홍구: “너는 그렇게 안 했겠느냐” 하는 논리로 친일파에 대해 문제제기 하면 나쁜 놈이 되는 거죠. 가장 극단적인 예가 이문열이나 복거일이고. 저도 개인적으로 친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고 외할아버지 친일파예요. 사실 두분이 결코 크게 다른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친일파 문제 평가하는 데서 큰 문제가 아픔이 없다는 거예요. 친일이 단죄되는 것은 마땅하고, 그 마땅한 단죄를 가슴 아픈 일로 받아들였어야 하지만 해방 뒤에도 친일파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에서 그럴 수 없었죠. 당대에 친일파 문제가 청산되었으면 아파하고 서로 화해하고 했을 텐데 그 과정이 사라지고 늦게서야 친일파 문제가 나오니까 단죄만 남은 것 같아요. 사람을 평가할 땐 굉장히 섬세해질 필요가 있지만 원고지 40장 되는 글에서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나갈 수는 없더라고요.

정윤: 김두한에 대한 글은 교수님 쓰기 직전에 <시사저널>에 기사가 나왔어요. <시사저널>이 한결 비판적이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선생님 원래 역사관이 그런 건지 <한겨레21>이라는 지면을 통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부드럽게 표현하는 건지 궁금했어요.

한홍구: 사실은 더 과격한 놈인데 <한겨레21>에 맞추진 않는가 하는 질문인가요 (웃음)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김두한을 해방 직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 보인 우익적 행태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에는 아주 안 좋은 면을 썼을 거예요. 글에서 조금 더 좋게 써줬다면 권력의 꼭두각시 역할만 하다가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국회에서 똥물 뿌린 게 최후의 일인데, 누가 시켰다고도 얘기합니다만 전 그렇게 뿌린 행동 자체가 민심을 대변한다고도 봐요. 적어도 50년대 국회의원 하면서 자유당의 개헌시도에 맞서서 야당쪽에 선 것은 평가를 해줘야죠.

평가와 비판의 고통

정윤: 그렇다면 박정희도 그렇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 박정희도 사실 일제와 한국전쟁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경제발전 등에서는 평가기준이 많이 다를 수 있잖아요.

한홍구: 무엇을 가장 중시하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을 텐데요. 평가에서 섬세해져야 한다는 것과 엄격한 기준을 세우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경제성장이 제일 중요하면 박정희만 면죄부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히틀러, 김일성, 스탈린도 그렇지 않겠어요 박정희 경우에는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겠죠. 김두한은 자신이 일종의 하수인격인, 역사의 흐름 속에 동원이 된 그런 부분이 있지만 박정희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돼서, 자기가 계획을 짜고 한국 현대사의 방향을 틀어낸 인물이죠. 그래서 김두한과 박정희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려워요.

이경숙: 나이가 들면서 명확했던 것들이 좀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뭔가 정리됐다는 생각이 드세요

한홍구: 아니요. 저도 나이를 먹으니까 단순명료하게 얘기하는 게 꼭 옳은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돼요. 흐리멍텅한 걸 흐리멍텅하게 얘기하는 게 맞고. 단순명쾌가 좋은 건 아니죠. 나이 들면서 예민해지고 여려지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좀더 확고해지는 것도 있어요. 세상이 복잡하니 나 자신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죠.

승인: 요새 사극이 굉장히 유행했고 그와 관련된 도서들도 인기를 끌었는데 역사 유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예술적으로 변형 가능하다는 논쟁도 있었는데요.

한홍구: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죠. 경빈이 실제로 “뭬~야” 그랬겠습니까. 그런 거 너무 따지면 재미가 없죠. 그렇다고 맘대로 만들어도 좋다는 건 아니고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정신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드라마는 드라마로 받아들이도록 해야죠. 독재정권의 잔재인데, 한국인들은 교과서나 언론에 나온 건 다 진짜로 알고 교육받아요.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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