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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거지 사병’을 구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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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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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 독자편집위원회 마지막 회의를 마치며… 군대문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한 계기

4기 독자편집위원회가 6개월 긴 항해의 닻을 내렸다. 마지막 회의라서 그런지 가장 후한 평가와 덕담이 쏟아졌다. 지난 한달 동안의 기사 중 위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은 기사는 427호 표지이야기 ‘대한민국 사병은 거지인가’이다. 아이템이 도발적이고 참신했으며 기사에서도 꼼꼼한 분석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위원들은 이 기사를 계기로 우리 군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병원 파업을 다룬 기사와 기자가 뛰어든 세상, 427호 문화면 ‘독신남·독신녀의 연휴 보내기’도 호평을 받았다. 위원들은 작은 고정란들 중 김학민의 음식이야기와 영광댁 사는 이야기가 <한겨레21>의 성격에 가장 잘 맞고 참신하다며 앞으로도 이런 작은 난들을 많이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마지막 회의의 뒤풀이는 오랜만에 신문사를 찾은 3기 위원들의 ‘축하공연’까지 이어지며 새벽 3시를 넘겼다. 그 자리에 참석한 3·4기 위원들 모두 새로 탄생할 5기 위원들을 고대하고 있었다. 5기는 또 어떤 얼굴들로 채워질까. 몇주 안에 그 ‘정체’가 드러날 것이다.

구가인: 425호에서 9·11 이후를 다룬 표지이야기가 좋았고 병원 노동자 파업, 군의문사, 공소시효 배제법안 등은 기사가 실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장 가상대담’이나 <섹스 앤 시티>를 다룬 문화면 기사도 재미있었어요. 426호는 보유세 관련 표지이야기와 마음의 병을 다룬 과학특집 기사가 좋았어요. 표지이야기는 한겨레스러운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강남과 강북, 지방의 연간 땅값·집값 상승률과 교육 등 생활환경에 대한 기사도 실어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흥미롭지만 2% 더 마시고 싶은 기사는 ‘고이즈미 방북’, ‘경의선’, ‘아해ㅎ해ㅎ(합성요망)’ 등이에요. 고이즈미 방북은 좀더 크고 깊게 다뤄야 했을 사안이라고 봐요. 이를테면 그렇게 많은 성과가 있었음에도 지금까지 북한과 일본의 만남이 미뤄져온 이유, 미국이나 중국의 입장 등이죠. 경의선 관련 기사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인 얘기만 늘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도 들어요. 아해ㅎ해ㅎ 역시 재미난 기사였지만 ‘사이버 폐인’들에 대한 시선이 마냥 고운 것만은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그리고 수해복구 현장 자원봉사를 체험한 기자가 뛰어든 세상도 좋은 기사였지만 수해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다뤄야 했다고 생각해요. 체계적이지 못한 자원봉사자 관리, 성금활용 문제 등도 기사로 지적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사진/ 위원들은 한결같이 427호 표지 ‘대한민국 사병은 거지인가’를 가장 인상 깊은 기사로 꼽았다. 한국 군대의 문제점을 심층 깊게 보여줬다는 평이다.
427호에서 가장 좋았던 기사는 사병 월급을 다룬 표지이야기예요. 도발적인 문제제기 자체부터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조근조근한 분석 역시 일품이었어요. 문화면 ‘솔로들의 추석나기’도 재미있어요. 역시나 문화기사만큼 재미를 주는 기사가 없더군요. 유익하기도 했어요. 428호에서는 경제기사들이 모두 좋았어요. 특히 정보화촉진 기금 문제와 이동통신업체 관련 기사는 돋보였습니다. 비단 정보화촉진기금뿐 아니라 심의를 하지 않는 무수한 기금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것 같아요.

요즘 편입 시장의 규모가 장난이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어요. 학벌위주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편입 열풍에 대한 기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성형 열풍과 외모지상주의에 대해서도 다룰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마음이 고와야지 하며 아무리 떠들어대도 쌍꺼풀 수술자는 계속 늘고 있어요. 특히 동북아 전체의 현상으로 보입니다. 대체 왜 그런지 무척 궁금해요. <호기심 천국>에서 다뤄야 하나. (웃음)

승인: 427호 교육운동 벌이는 강남지역 학부모들 이야기도 눈에 띄었습니다. 강남지역 하면 일반 서민들에게 거리감을 주는 것이 사실인데, 그들 사이에서 고민하고 벽을 깨는 모습이 좋았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한겨레21>에서 교육에 대한 대담을 한번 진행했으면 합니다. <한겨레21>에서 올해 성폭력 문제 외에는 교육문제를 크게 다룬 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학생, 학부모, 교사뿐만 아니라 교육계 인사까지. 각자 위치에서 우리 교육을 이야기하고 바꿔나가는 자리가 있었으면 합니다. 426호의 ‘아 문화’에 관한 기사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저로서는 아쉬움이 남는 기사였습니다.

김선의: 427호 사람과 사회 ‘여중생 죽음을 헛되이 말라’를 읽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미군 범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사무실 제 책상에 미군 장갑차 압사사건의 희생자인 여중생들의 사진을 붙여두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사진을 치워버렸지요. 이 기사를 보고 마음이 울컥울컥하더군요. 처음엔 미칠 듯이 분노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져버린 내가 부끄러워서죠. 서랍에 넣어둔 사진을 다시 붙여둬야겠습니다. 미군 범죄 ‘0’을 위해. 김학민의 음식이야기 중 1670년 러시아 농민지도자 스텐카 라진, 그리고 보드카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맛있는 음식에 잔잔한 이야기까지 더해주니 정말 좋았습니다.

홍창욱: 9·11과 아시아를 다룬 아시아 네트워크 특집은 미국의 패권에 휘둘리는 아시아 상황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각국 정부가 어떻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새로운 안보환경과 연결해 연장시키려고 하는지가 분명히 드러난 것 같아요. 다만 내용이 정부의 움직임에 맞춰져 있어서 너무 비관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터러전략에 편승하는 정부와 함께 이에 맞서는 비정부기구(NGO)들의 움직임도 다루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시사주간지라 그런지 보통사람들, 특히 농촌의 소외된 사람들 이야기가 거의 없었어요. 작게나마 영광댁 사는 이야기를 통해 지금 농촌의 시간은 언제인지(씨를 뿌릴 땐지, 거둬드릴 땐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김학민의 음식이야기는 단순히 음식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적인 음식 소개와 음식점에 얽힌 이야기 등을 편하게 풀어내고 있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음식을 텍스트로 보고, 사람과 사회에 연결해 나가는 방식이 시사주간지의 음식 소개다워요.

이동화: 지난달 <한겨레21>에서 관심 있게 읽은 기사가 2개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427호의 표지이야기인 ‘대한민국 사병은 거지인가’이고 두 번째는 427호까지 연재된 ‘움직이는 세계- 발칸기행’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사병은 거지인가’는 우리가 그동안 성역 혹은 금기시해온 군 내부의 여러 문제들을 사병의 월급을 통해 접근하면서 여러 문제들을 다시 한번 부각시켜주고 대안을 제시해준 점은 <한겨레21>에서만 할 수 있는 기획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움직이는 세계- 발칸기행’은 전쟁이 얼마나 사회와 개인의 삶을 뒤틀어놓는지를 사례를 통해 잘 보여준 기사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너무나 오랜 기간 전쟁을 하느라고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기까지 한 발칸반도의 실상을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도움이 많이 되었으며, 요새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425호에서 다룬 병원 파업 관련 ‘천사의 소망’도 기존 매체들과 달리 병원 파업의 원인과 분규가 길어지는 이유 등을 소상히 다루어서 좋았지만 좀더 일찍 이런 기사가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426호 특집인 ‘한반도 복덩이가 놓인다’는 단순하게 철도의 연결로만 알고 있었던 경의선 복원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기사로 시의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특별부록으로 나온 은 좀 이상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427호의 ‘한가위 퀴즈큰잔치’는 지난해보다 선물이 많이 줄어들어서 아쉽던데요. 이럴 때 <한겨레21>의 정기구독권이나 한겨레출판부에서 펴낸 좋은 책들을 상품으로 추가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사진/ 마지막 회의를 자축하는 4기 독자편집위원들. 맨 오른쪽은 정영무 편집장.
백대현: 이번 독자편집위원회 회의는 사실 제 마음에 드는 기사들이 많아서 기사 평을 하기가 참 힘듭니다. 하지만 잘 쓴 기사를 잘 썼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425호 병원 노동자 파업 기사와 428호의 기자가 뛰어든 세상은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충실한 내용의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기자가 뛰어든 세상은 안영춘 기자의 고민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되면서 6월 역시 월드컵에 열광하며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던 저 자신의 모습을 느끼게 했습니다. 426호 부동산 보유세에 대한 기사는 사람들의 막연한 생각을 잘 정리해준 것 같아요. 그 중 ‘경제관료들이 수상하다’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바를 정확히 짚었다고 생각합니다. 흔한 얘기로 “자기들이 거기 살고 집값 뛰니까 좋아하고 있을 거야”라는 얘기를 사석에서 많이 하지만 항상 근거 없는 막말에 가까웠죠. 하지만 그 글은 그런 막연한 말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426호 문화면에 민중가요에 대한 기사가 있는데, 전 여전히 그렇게 편곡된 민중가요가 어색합니다. 집회현장에서 불리는 형식만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런 노래를 리메이크한다면 최소한 자기들이 부르는 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27호 사병 월급에 대한 기사는 제가 본 기사 중 가장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병농일치로 군인 인력을 거의 공짜로 쓰던 때와 일제시대 때 마구잡이 징병, 한국전쟁 때 국민방위군 등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군인들은 항상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겨우 밥만 얻어먹는 모습이었습니다. 고등학생이 일주일도 못 쓸 돈을 한달 월급으로 받는 군대를 보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빈민개병제’라는 한홍구 교수의 말이 지금의 군대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야기 ‘내가 서울시장이라면…’이라는 기사는 더 키워서 이명박 서울시장 당선자를 인터뷰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울시 관용차를 경차로 바꾸는 아이디어는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도 보고요. 그냥 보고 넘기기에는 아이디어가 너무 좋잖아요. 마지막으로 지금의 국회를 보면 나라가 망하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게 우리 민족의 저력이자 단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난리쳐도 나라가 유지되니까 더 그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에요. 또한 낙선낙천운동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보며 정치를 망치게 한 원인이 입법부에만 있는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한겨레21>이 제 몫을 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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