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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일은 좀 덜 비열한 거리에 서길

17기 1박2일 작별 엠티…사형제에 갈등하고 로스쿨·학원에서 계급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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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4-09 18:17 수정 : 2009-04-0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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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기 독자편집위원회의 6개월 임기가 3월로 끝났다. 지난 3월21일 이별의 끝을 잡고 독편위 ‘패밀리’가 ‘1박2일’을 떠났다. 유재영 위원이 경기 양평에 있는 회사 콘도를 빌렸고, 최고라 위원이 닭 두 마리를 사와 볶음탕을 만들었으며, 홍경희 위원이 산에서 뜯은 쑥을 가져와 쑥국을 끓였다. 출장지에서 헐레벌떡 달려왔다는 조성완 위원의 손엔 케이크가 들려 있었고, 이수택 위원은 부인이 사왔다며 핸드크림을 하나씩 나눠줬다. 최고라 위원의 머리엔 지난 회의 때 “마지막인 줄 알고” 가져왔던 최우리 위원의 선물, 직접 만든 머리핀이 매달려 있었다. 서로 할 일을 미루는 ‘패밀리가 떴다’와 달리 ‘독편위 패밀리’는 상차림도 설거지도 서로 하겠다고 나섰다.

이 여행에 ‘소환’된 기자는 최근 ‘용산 커넥션’을 파헤치고 있는 임주환 기자였다. ‘비열한 거리’를 뛰어다니느라 심신이 피폐해지고 있다는 그는 ‘독편위 공동체’의 사랑을 받고 표정이 밝아졌다. 여행지에서 <한겨레21> 749~752호를 꺼내들고 시작한 마지막 모니터링 회의는 어느 때보다 여유로웠다. 시간 제약이 없다 보니 애정 어린 비판과 응원은 날을 넘겨 계속됐다.

3월21~22일 경기 양평의 한 콘도로 엠티를 다녀온 <한겨레21> 17기 독자편집위원들과 임주환·임지선 기자

사형제는 좀더 이성적으로 다뤘어야

최우리: 751호 ‘사형 집행 전야의 사형수’가 나올 즈음 한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범죄 피해자 얘길 다뤘다. 사형제와 관련해 <한겨레21>을 공감하며 읽은 뒤 사형제 폐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 이 프로그램을 보고 피해자들은 얼마나 힘들까란 생각이 들어 내 속에서도 다툼이 심했다. 한데 피해자들과 마주하면서 오히려 더 사형제 문제에 다가갈 수 있었다. 피해자를 위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한 단계 넘어설 때다.

이수택: 피해자들의 삶은 참 피폐하다. 국가가 책임질 부분이 있는데 이를 방기해두고 피해자들이 아프니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 평화로운 세상이 목표라면 범죄자를 얼마나 더 응징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범죄와 처벌, 양형에 대한 좀더 깊이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

최고라: 어린 동생에게 사형제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모르겠더라. 10년간 집행이 안 돼서 존치·폐지 논의의 수준은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우리의 철학적 기반이 약하구나 싶었다. 그래서인지 흉악한 사건이 하나 터지면 다들 많이 흔들린다.


홍경희: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도 사람들이 공감을 많이 했지만 이후 영화 <밀양>도 사람들이 이해하지 않나. <밀양>은 죄인이 종교의 힘으로 죄를 뉘우치고 거듭났다고 말할 때 피해자가 느끼는 충격과 거부감을 그렸다. 이미 대중이 <밀양>까지 올라간 상태에서 다시 이전의 ‘공지영’을 빌려 얘기했다.

이수택: <한겨레21>의 삼성 관련 보도를 보면 상당히 이성적이다. 차라리 사형제 같은 기사를 쓸 때 좀더 이성적이면 어떻겠나. 교정위원이 전하는 뒷이야기, 반성하고 죽었다는 사형수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픈데, 그럼 뉘우치지 않으면 죽여도 된다는 건지. 사형을 집행해서 얻는 게 뭔지, 누가 누굴 죽일 수 있는지, 더 이성적으로 접근했다면 독자들 입장에선 사형제를 유지하려는 움직임에 더 화가 났을 수 있겠다.

조성완: 사형제는 민주화 과정에서 악용되는 사례가 많았다. 사형제가 내 문제가 된다면 끔찍하지 않은가.

이현정: 강호순 사건의 피해자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더라. 그래서 그런 놈은 사형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사를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래도 아직 완전한 폐지론자는 아니다. 어렵다.

최우리: 752호 ‘삼성 남매의 1라운드’에서 이부진씨에 대한 기사는 가십성인 것 같았다. 왜 삼성의 내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서문에 배치했어야 한다. 어찌 보면 이부진이 후계자로 더 적당하다는 뉘앙스도 풍겼다.

조성완: 외국에 가면 삼성을 자랑스럽게 보게 된다. 우리와 동떨어진 얘기 같아도, 자긍심을 가질 만한 기업으로 경영이 되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학원 끊기, 개인 노력 문제로 환원

최우리: 749호 ‘그들만의 로스쿨’이란 말이 상징하는 게 크다. 결국 또 다른 서열화일 뿐이다. 폐쇄적인 신분 상승의 기회다. 통계 기사를 좋아하진 않는데 이 기사에 눈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성완: 현 사회에서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갈 정도면 이미 사교육이 엄청나게 투입된 상태다. 거기서 또 어느 정도 부모가 재정적으로 받쳐줘야 로스쿨을 간다.

최우리: 로스쿨이 처음 도입된다고 했을 때 이럴 줄 알았다.

이수택: 대안이 뭔지 궁금하다. 어떤 이는 10%는 시험을 봐서 뽑자는데 그럼 또 사법고시만 보는 사람들이 부활할 거고. 그럼 20~30%는 저소득층을 모아야 하는지, 담론을 모아주었으면 좋겠다.

최고라: 로스쿨, 약학전문대학원 등은 ‘스카이·20대·강남’이 장악하겠구나 싶다. 이는 750호 ‘학원 탈출’ 기사와도 통한다. 사교육 시키지 말라고 하지만 엄청나게 사교육한 애들이 ‘스카이’ 가고 로스쿨 가고…. 계급의 논리가 읽힌다.

조성완: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사교육에서 좀 벗어나 있다. 하지만 다들 시키는데 나만 다르게 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나중에 딸이 원망하면 어떡하나.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도 요즘 학생들은 수업을 안 듣는 자세가 몸에 배어 있다. “대학교 수업엔 메가스터디가 없다”는 말을 한 학기 내내 한다.

최고라: 750호 기사를 보면 사교육을 끊고 부모가 피나는 노력을 하더라. 제도와 사회의 문제인데 개인에게 너무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저열하고 찌질한 생활밀착형 비리

‘소환’된 임주환 기자에게 독자편집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임주환: 2001년 입사해 <한겨레> 문화부·편집부·경제부를 거쳐 <한겨레21>에 온 지 6개월이 됐다. <한겨레21>에서는 ‘산업+사회부’ 결합 기사를 써보려고 하는데, ‘성공사례’가 많지 않아 민망하다.

홍경희: 그동안 쓴 기사 중에 용산 기사만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

임주환: 그동안 표지이야기로 쓴 기사는 ‘괴물 경제 고물 인생’ ‘자장면의 눈물, 청바지의 한숨’ 등이 있다. 경제 기사를 주로 썼다.

이수택: 용산 취재를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불법’의 내용을 보면 ‘생각보다 큰 불법은 아니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임주환: 용산 취재의 괴로움은 그 세계가 저열하고 찌질하며, 그 안에서 돈 버는 자들의 이야기는 더 저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론되는 비리의 단위도 5억~10억원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대부분이 인간관계로 이어진 ‘생활밀착형 비리’다.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숨진 이상림씨와 재개발 조합장인 이춘우씨는 같은 교회에서 각각 집사와 장로를 맡고 있었다. 정비용역업체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 이상림씨의 아들인 이충연 철거대책위원장(구속)과 동네 선후배로 친분이 있던 이들도 있다. 이처럼 비리의 행태가 생활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남루하다.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조차 “재개발 비리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라며 외면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놓치면 토건공화국의 생활밀착형 비리를 더는 파헤치지 못할 것 같다는 절박감이 있다.

조성완: 앞으로 기사를 쓸 방향은?

임주환: 사람이 여섯이나 숨졌는데 실체적 진실이 묻힌 채 넘어가선 안 된다. 용산은 물론 사회 곳곳의 재개발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것이다. 재개발 비리 보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토건세력들의 논리가 먹혀들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파트든 주상복합이든 지으면 ‘대박’이 터지는 까닭에 시민들이 불법과 비리에 대해 둔감해진다. 선량한 시민과 토건 세력의 ‘짬짜미’(담합)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짬짜미 체계를 깨뜨리는 데까지 나아가고 싶다.

홍경희: 누구라도 비열해질 수 있는 체제나 구조의 문제를 알려달라. <한겨레21>이 해줘야 한다.

17기 독편위를 마치며

“만리재는 따뜻했노라”

비열한 거리는 용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을 학습하고 신자유주의가 내면화된 우리는 저마다 용산 같은 밀실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겨레21>은 6개월간 나의 밀실에 새바람을 주었습니다. 소중한 인연과 대화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소통하는 즐거움으로 변화에 대한 열망을 더했습니다. 짝꿍과 맞잡은 손에 당신들의 숨결이 스밉니다. 감사합니다. 유재영

출발점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다. 내가 막연히 꿈꾸던 변혁은 이미 이 사회의 것이 아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새로운 ‘연대’의 영역을 기웃거린다. 내 기웃거림의 한 정거장이 만리재(한겨레신문사가 위치한 고개)에 있다. 만리재로 달려가면 온기를 만날 수 있었다. 온기는 냉기 안에서 조금씩 틈을 벌릴 수 있다. 그 안에서 글·사람·실천에 대한 내 열정을 모두 실어낼 수 있으리라는 푸릇푸릇한 믿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최고라

첫 모니터링 회의 날, 집에 가는 전철이 끊겼다. 여섯 번의 만남은 이렇듯 늘 부족하고 또 뜨거웠다. 훗날 내 ‘인생 잡지’를 발간한다면, 17기 독편위 활동은 미담 기사로 나가지 않을까.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한겨레21>이 달라졌다. 폭풍도 산들바람도 좋다. 당신이 일으키는 새바람을 지금처럼 묵묵히 쐬고 싶다. 그 바람에서는 매정한 잉크 냄새보다 오래된 책처럼 눅눅한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이현정

펜은 칼보다 강한 게 맞다. 애정을 담은 비판적 시선으로 부드럽게 칼을 휘두르겠다고 다짐했는데, 비판의 칼은 기자의 펜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매주 만나는 기사가 내가 속한 사회를 성찰하게 했다면, 매달 만나는 기자는 내 삶을 살피게 했다. 내 삶과 사회의 건강을 함께 고민하게 한 독편위 활동. ‘앎과 삶의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내 숙제다. 홍경희

사람다운 삶을 알아주는 ‘인권 OTL’이 있어 고마웠다. ‘경방고수’의 힘찬 날갯짓에 집단지성의 꿈도 꿨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마저 잃어가는 한국 사회가 ‘용산’을 낳았고 ‘사형’ 논의를 재생산함에 아팠다. ‘산중수복의무로 유암화명우일촌’(山重水復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이라. 산 넘고 물 건너 길이 없는 줄 알지만, 버드나무 우거지고 활짝 꽃핀 또 다른 마을이 있다는 희망을 갖자. <한겨레21>과 함께 꿈을 꾸는 우리들, 모두 힘을 내자! 최우리

직장·경제·장애로 인한 스트레스가 한창 나를 괴롭히고 있을 즈음 <한겨레21> 독편위 모집 공고를 보았다. 답답한 현실의 일탈을 위해 독편위에 도전했다. 6개월 독편위 활동은 일탈 그 이상의 것을 가져다주었다. 독편위원들과 만나면서 진보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고 열정적인 기자들과 만나면서 <한겨레21>의 내일을 볼 수 있었다. 지금 5살, 3살인 내 딸들에게도 <한겨레21>을 소개해줄 수 있길. 이수택

인생은 나이가 먹을수록 더 빨리 달려간다 했던가. 어느덧 아쉬운 독편위 활동 6개월이 마감됐다. 상경하는 것이 쉽지 않아 항상 힘들었지만 막상 활동이 끝난다고 하니 아쉬움이 앞선다. 더 열렬한 독자가 되어 <한겨레21>을 관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기사를 볼 때마다 독편위 활동 중에 알게 된 기자들의 얼굴이 떠오르겠지. 독편위 여러분 그리고 <한겨레21>, 고마웠어요. 조성완

마지막 시험 바로 전날. 일요일이었는데, 그때 공부는 안 하고 밤 10시까지 독편위 지원서를 붙들고 있던 생각이 나네요. 원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파여서, 조금 생각하고 무작정 신청했어요. 좋은 사람들과 이런 인연을 맺게 된 것, 감사해요. 덕분에 일개 고등학생이던 제 세계가 넓어졌어요. 고3 끝나면 ‘1박2일’ 다시 가요! 진보경

17기 독자편집위원회

18기 독자편집위원 모집 공고

직접 참여해 <한겨레21> 만들 뿐이고~

어디를 둘러봐도 웃음짓기 힘든 시절이라고 합니다. 정치는 실종됐고, 경제는 파탄났고, 사회는 더욱 각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한겨레21>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재기발랄하면서도 희망찬 소식들을 전해야 하는 책무의 의미가 더욱 새롭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겨레21>이 독자 여러분의 응원과 참여를 요청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따뜻한 마음과 날카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마주하고픈 독자님들을 독자편집위원으로 모십니다.

자격: 학력·직업·나이에 관계없이 <한겨레21>을 사랑하는 독자

지원 방법: 아래 내용을 담은 지원서를 보내주세요.(분량은 각각 A4용지 1장 이내)

① 자기 소개와 지원 이유(주소·휴대전화번호 등 연락처, 직업, 성별, 나이 기재)

② 최근호 <한겨레21> 기사에 대한 소감과 앞으로 다뤘으면 하는 기사 제안

모집 마감일: 2009년 4월19일(일)

문의 및 접수: 전자우편 han21@hani.co.kr(전자우편 제목에 [독편위] 말머리를 달아주십시오)

기타: 접수 여부는 4월20일(월) 일괄적으로 전자우편 통보합니다.

선발된 분 명단은 4월21일(화) 인터넷 <한겨레21>(h21.hani.co.kr)을 통해 공지합니다. 18기 첫 모임은 4월28일(화) 저녁 6시30분에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립니다.

독자편집위원회의 활동

1. 매주 인터넷 <한겨레21> ‘독자편집위원회 클럽’에 최근호 모니터링 결과를 올립니다.

2. 매주 해당 주에 다뤘으면 하는 사안, 특정 현안의 기사화 방향, 기자들이 취재 중인 사안에 대한 조언 등 <한겨레21> 지면 제작과 관련한 의견을 내놓습니다.

3. 격월로 오프라인 회의를 합니다. 두 명의 기자를 ‘소환’해 토론을 하고, 그 결과는 다음호 지면에 실립니다. 회의 참석 때 소정의 좌담료를 드립니다.

4. ‘독자가 뛰어든 세상’ 등 직접 기사를 쓸 수도 있습니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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