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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오바 마시고 밑바닥 봐주세요

733~736호에서 뽑은 네 가지 주제, 오바마·비정규직·뉴라이트·문화면을 토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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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2-03 14:07 수정 : 2008-12-0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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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부쩍 추워졌다.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이 썰렁했다. 17기 독자편집위원들의 두 번째 모니터링 회의날인 11월25일 저녁. 독편위원 중 조성완 교수는 “휴강을 못해” 참석하지 못했고, “학교가 일찍 끝난” 진보경 학생은 미리 와서 자습을 하고 있었다. 이번달부터 지난 4주간의 <한겨레21>을 보고 주제를 몇 개 선정해 토론을 하기로 했다. 733~736호에서 4개의 주제를 뽑아든 독편위원들은 회의실을 금세 후끈하게 만들었다.

<한겨레21> 733~736호

미 대선에 대처하기

사회: 미 대선과 버락 오바마 당선을 보도하는 <한겨레21>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이수택: 오바마 당선에 진보 매체들이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느꼈다. <한겨레21>도 오바마 당선을 보도한 735호는 표지이야기 ‘축제의 키스’에서 ‘만리재에서’까지 일곱 꼭지를 할애했다. 물론 표지이야기 첫 기사인 ‘환호 그리고 피부색이 바뀌었을 뿐’은 비판적 시각으로 썼지만 나머지는 분위기가 다르다. 이건 마치 대한민국에 진보적 대통령이 탄생한 듯하다. 오바마도 민주당도 그렇게 진보적이지 않고, 오바마는 지극히 미국적이며 미국을 위한 대통령이다. ‘오바’하지 말아야 한다.

홍경희: 흑인 대통령 탄생에 전세계적인 의미가 있다. 전세계가 환호하고 있는데 <한겨레21>만 비판의 날을 세웠다면 그것도 호소력이 떨어졌을 것이다. 735호에 이어 736호 세계 ‘무슬림과 유대인의 동거?’ 기사로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의 성향을 분석하는 등 차분히 접근했다.

이현정: ‘흑인이 투표한다 백인이여 일어서라’라는 제목에서 흑과 백을 나눈 것은 오바마 당선의 상징성을 깎아먹는 것이 아닌가. 통합을 얘기하면서 또 분열을 일으킬 수 있어 보였다.


이수택: 정희준 동아대 교수가 ‘오바마 당선은 그가 백인적 흑인이 됐기 때문이다’라고 쓴 글을 봤다. 정 교수는 타이거 우즈, 마이클 조든 등 백인적 흑인에 대해 얘기했다. 엘리트 과정을 겪어 백인이 충분히 인정할 만한 흑인이란 거다. 흑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색다른 분석을 보고 싶다.

최우리: 난 오히려 오바마 당선을 두고 언론이 얼마나 호들갑을 떨까 궁금했는데 <한겨레21>은 생각보다 그렇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평상심을 유지하며 보도하지 않았나. 흑인정치 수난사와 승리 비결을 정리해줘 정보성 있는 기사였다.

홍경희: 앞으로는 ‘오바마 시대’에 한국이 택할 수 있는 전략적인 방향을 기사에서 제시해주면 의미가 있겠다. 735호 ‘오바마 인맥 운운은 시대착오적’ 기사에서 ‘풀뿌리의 시대’ 얘기를 했다. 이런 대목을 구체화해줬으면 한다.

이현정: 이제 오바마가 당선됐으니 그의 정책으로 초점이 옮겨졌으면 한다.

유재영: 뉴라이트를 다룬 736호 표지이야기 ‘임을 향한 일편다심’을 보면서 궁금했다. ‘오바마 시대’에 뉴라이트는 어떻게 나올까. 계속 성조기를 들고 나올까.

이수택: 오바마의 정책 중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짚어줬으면 한다.

최우리: ‘오바마의 사람들’도 어디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실체가 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어떡해

사회자: 독편위가 ‘비정규직’이란 키워드를 뽑았다. ‘인권 OTL-30개의 시선’ 시리즈도 끝났으니 종합적으로 얘기해보자.

최고라: 커다란 정규직 노조나 비정규직 전반을 얘기하는 기사에선 식상함이 느껴진다. 734호 인권 OTL ‘공룡에게 먹힌 꿈, 막내작가 무한노동’의 문제제기는 신선했다. 눈길이 닿지 못하는 부분의 노동 문제를 많이 다뤄줬으면 좋겠다.

이수택: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88만원 세대’식의 접근이 지겹다. 문제의 뿌리를 봤으면 좋겠다. 비정규직-정규직의 소통 문제가 있다. 이를 해결하는 데 <한겨레>가 역할을 해야 한다.

최고라: 언론이 노조를 너무 큰 덩어리만 보도한다. 725호 인권 OTL ‘감단직 노동 착취 현장, 아파트’와, 734호 막내 방송작가 문제 등의 기사를 통해 자기가 비정규직인 걸 인식도 잘 못하는 사람들을 알게 됐다. <한겨레21>의 감단직 기사를 보고 경비원 감축을 하지 않았다는 ‘보도 그 뒤’(730호 ‘아빠, 감단직 알아요?’)는 주변의 비정규직 사례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기사의 힘을 보여준다.

17기 독자편집위원회

홍경희: ‘감단직’ 기사가 좋았던 이유가 틀만들기(프레이밍)를 해줬다는 점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감단직’이란 이름으로 보게 해주는 시선. 방송작가도 ‘막내작가’라는 이름으로 집중해줬다. 현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행동들, 대안들을 알려줬으면 한다.

이수택: 사안별로 접근하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안마사 역시 비정규직이다. 나도 1년 정도 안마사로 일했는데 아주 열악하고 비참하다. 735호 인권 OTL ‘욕망의 도시, 안마하는 사람들’에선 안마사협회 쪽의 목소리를 전했는데 그런 식으로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현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 겁나서 노동운동조차 못하는 사람들의 얘기 말이다.

최고라: 세대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내 주변의 20대는 노동에 대한 지식이 없어 고립되고 소외돼 있다. 지금 노조 윗선에서 공유되는 가치가 우리 세대를 끌어안지 못했다.

최우리: 친구들이나 나나 갑갑한데 탈출구가 없다. 사회적 기업을 다룬 735호 경제 ‘전태일이 꿈꾸던 일터 참 신나는 옷’과 같은 훈훈한 기사를 기대하고 있다. 아픈 현실을 후벼파는 기사도 좋지만 대안이 될 만한 사례 소개도 의미 있다.

진보경: 다른 나라는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궁금하다.

유재영: 일상 속의 비정규직을 알리는 기사를 많이 보고 싶다.

뉴라이트, 새 접근법?

진보경: 도대체 보수·진보가 뭔가. 한나라당은 보수고 무슨 당은 진보라고 하니까 정의가 뭔지 모르겠다.

홍경희: 보경씨처럼 고등학생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진보의 자기 가치 정립이 늘 반보수였다. 실제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 진보가 무엇엔가 반대하는 것으로만 보여지는 건 문제다.

유재영: 어떤 이념조차 없는 사람들도 6월 서울시청 광장에 나갔다. 그런데도 보수 매체에서 ‘좌빨이다, 진보다’라고 테두리를 지어놓는 것에서 그런 균열이 생길 수 있다.

이수택: 대한민국 땅에 진정한 보수가 있나.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을 인터뷰한 736호 표지이야기 ‘대통령이 국민통합을 팽개쳤다’를 보면 매우 합리적인 것처럼 얘기하지만, 체제 전복 세력으로 백낙청 교수를 들었다. 백낙청 교수도 못 받아들이면서 무슨 합리를 이야기하나. 진정한 보수를 만드는 운동을 <한겨레21>이 할 수도 있겠다.

홍경희: 보수가 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생각했는데, 736호에서 안병직·김진홍·박세일 인터뷰로 3인3색을 보여줘 신선했다. 인터뷰 방식도 중립적이려고 애를 쓴 것 같다. 한데 이들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다면, 자칫 위험하지 않을까.

이수택: 중립적으로 인터뷰를 잘했다. 진보 쪽에서 가르치려 들지도 않고 질문만 던졌다. 근데 인터뷰 뒤에 따라온 기사들은 진보적 잣대로 보수를 재단하려고 한다. 진보적 학자를 데려다 비판의 말을 툭툭 날리게 했다.

최우리: 정말 잘 알기 때문에 흥분하지 않고 대답에 꼬리를 물어 질문할 수 있는 인터뷰 기술을 보여줬다. 한데 과연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와 새로워진 뉴라이트를 놓고 볼 때 뭐가 달라졌는지 기사에선 잘 안 잡힌다. 이명박이 올드라이트를 비판하며 뉴라이트를 표방하면서 나왔고, 또 국민 통합을 얘기하니 새로운 뉴라이트가 된다는 건데, 말장난 아닌가.

‘레드’ 색깔 논쟁

최우리: 레드 기획은 문화현상의 분석이 아니라, 사회성 기사에 기자 개인의 느낌이 들어간 듯하다. 좀더 말랑말랑하게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이현정: 733호 ‘고양이’는 구둘래 기자, 734호 ‘낚시’는 전종휘 기자, 737호 ‘탈모’는 신윤동욱 기자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기자와 가까워진다는 느낌은 있지만 개인의 체험이 전체를 다 포괄하기엔 한계가 있다.

최우리: 733호 ‘책에서 길고양이를 줍다’가 좋았다. 고양이라는 키워드로 영화, 책 등 문화 전반을 볼 수 있었다.

최고라: ‘레드’라는 이름이 <한겨레21>만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주자는 것 같은데, 지금까진 화제성 중심이어서 특별한 색깔을 모르겠다.

이수택: ‘문화’로 사회를 깊이 있게 읽었으면 한다. 김연아 선수나 길고양이 문제도 좀더 적나라하게 썼으면 좋았겠다.

이현정: 문화에 사회 전반의 의식까지 담는다면 <한겨레21>만의 시각이 들어가 기사가 독특해질 순 있지만, <한겨레21>에서 마음 놓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기사는 줄어든다.

이수택: 예를 들면 735호 문화 ‘한국의 문화잡지는 왜 늘 망하나’ 기사도 그냥 던질 게 아니라 아직도 문화를 천박하게 여기는 성향, 성공 지향적인 사회 분위기 등을 짚어줄 수 있다.

홍경희: 736호 ‘엄친딸이어도 좋아, 김연아라면’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인물을 썼다. 김연아를 좋아해서 재밌게 읽었지만, 대중이 다 알고 있는 기사를 원하는 건 아니다.

최우리: 난 <한겨레21>에서 정보를 많이 얻는다. 컬처타임에 소개된 국제노동영화제 소식을 보고 찾아서 봤다. 시민단체의 시민강좌나 축제 현장을 소개해줘도 좋겠다. 주초에 사서 보고 주말에 갈 곳을 정하는 식으로 할 수 있도록.

이현정: 나도 컬처타임에서 보고 핑크영화제에 관심을 가졌다. 어떤 행사 소식을 소개한 뒤 갔다 와서 ‘어땠다’라고 쓰는 방식은 어떤가. 예를 들면 ‘기자와 독자가 함께 간 핑크영화제’식으로.

사회·정리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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