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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엄마한테 말 걸기 쉽진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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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2-28 00:00 수정 : 2008-12-1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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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인터뷰 제안에 머뭇거리다 ‘미국 영어 몰입’에 답답해진 마음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2월18일 열린 15기 독자편집위원회의 다섯 번째 회의는 ‘영어’와 ‘가족’이 화두였다. 기사 모니터링을 하다가 어느새 자기 이야기로 흘러들곤 했다. 694~697호 <한겨레21>은 한 달 동안 그들의 삶에 섞였다. 2시간 반 동안 치열하게 회의를 하고 나서도 남은 이야기는 뒤풀이 자리로까지 이어졌다.


무거운 코포크라시, 생기발랄 아파트

이미지: 694호 ‘코포크라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은 기업의 거대화와 더불어 그것이 권력화하는 모습을 잘 풀어냈다. 국가와 비등한 규모로 성장한 기업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순위를 매긴 것을 보고 나니 그 심각성이 확연히 다가왔다. 하지만 인수위의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코포크라시와 직접적으로 어떻게 연계되는 건지 명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좀더 치밀하게 한국의 예와 세계 사례를 연결할 필요성이 있었다.

김민: 표지의 곰과 코포크라시의 이미지가 잘 맞더라. 한데 이명박 당선 이후 뭔가 매주 터지다 보니 이번 이슈도 기존 매체에서 보던 것과 큰 차이가 없더라.

김승현: 이명박 당선자의 책이나 외국 학자의 눈을 빌려 바라보는 것보다, 인수위 안의 살아 있는 논리를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유진아: 특집 ‘생기발랄 아파트를 찾았다!’는 복잡하고 단일화된 도시의 삶에서 소통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보여줘 인상 깊었다. 한데 과정 중심이 아니라 결과 중심으로 나와 아쉬웠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려웠던 과정에 대해 써줬으면 다른 아파트가 참고하기도 좋았을 텐데.

유진아: ‘빨래터’ 논란은 앞부분의 설명이 길어서 오히려 핵심인 ‘감정 기구’와 관련된 문제는 짧게 다룬 듯했다. 중요한 문제이니만큼 조금 더 자세하게 다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진아: 695호 ‘기지촌 할머니 51명 실태조사’를 봤을 때 사실 좀 뻔한 이야기 같았다. 주한미군 남성들의 성 문제를 누가 관리하냐의 문제였는데 국가에 책임을 지울 거면 할머니들 개인을 불쌍한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당시 사회상을 확실히 말해줘야 했다.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의 되풀이였던 듯하다.

이미지: 맞는 말이지만 화두를 던져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표지이야기와 표지 사진은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데 기사의 내용만으로는 국가가 할머니들을 ‘달러벌이’나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이용했단 식의 해석을 하기 어려워 보였다. 물론 불가피하게 그런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참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이들에 대한 국가 대책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안타까웠다.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에서 더욱 많이 알려졌으면 한다.

유진아: 국가적 배상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인간극장’식 휴머니즘으로 흐르는 듯했다. 필리핀 여성 문제까지 가면서 사회적 책임의 근거를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김승현: 사람을 얘기하지 말고 구조를 좀 짚어줬다면 좋았겠다.

윤형각: 난 재밌게 읽었다. 이런 기사를 보면 신파구나 싶어서 안 읽는데 이건 매우 재밌게 읽었고 국가의 책임도 공감했다. 자발적으로 했더라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까지 했다는 것은 당시의 국가주의를 비판할 일이다. 단지 이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것을 비판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앞으로 닥칠 문제도 처리하지 못할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처럼 계속해서 조망을 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질라 여당 탄생하면 그 이후는?

유진아: 오마이섹스 ‘헤픈 여자’는 재밌게 읽었지만 그 속에 ‘여자의 적은 여자’란 논리가 들어 있는 듯해 50% 정도 불만이었다.

김민: 남자로선 신선한 내용이었다. 여자들의 세계까지 같이 얘길 하니까 맛깔난다.

김승현: 경제 ‘철강 클러스터, 당진은 뜨겁다’를 읽고 혼란스러웠다. 좋은 기업이긴 하지만 지난호 표지였던 코포크라시와 연관해 생각해보니 당진군에서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현대제철 지원팀’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좋은 일인가?

유진아: 노땡큐 ‘태안 돌 닦기 유감’을 가장 공감하면서 읽었다.

윤형각: 요즘 노땡큐가 가장 재밌더라.

김승현: 696호 ‘고질라 여당이 온다’는 대선 이후에 정치 기사를 안 봐서 몰랐던 뉴스를 정리해줬다. 이 공식대로라면 이렇게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

유진아: 진보개혁 세력에 대한 평가가 ‘왜 이명박이 당선됐나’ 기사를 봤을 때와 비슷하더라.

윤형각: 진짜 200석이면 어떡하지 했는데 더 끔찍했던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유진아: 거대 여당이 지방정부·입법·행정을 장악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총선 전에 정리해볼 수 있는 정도의 기사다.

김승현: 민주적으로 독재를 만들어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지: 특집으로 다룬 ‘패밀리 인터뷰’는 대학 학부 시절 들었던 ‘역사사회학’ 수업의 마지막 과제였다. 민주화, 산업화의 한가운데를 걸어오신 부모님의 일대기와 내가 몰랐던 지난 얘기들이 무척 소중한 배움으로 남았다. 기회가 된다면 모두 가족 인터뷰를 해보길 권한다. 매일 콩 섞인 잡곡밥을 차려주던 우리 엄마가 사실 콩 알레르기가 있단 사실을, 늘 무섭게 호통 치던 아빠가 사실 학창 시절 굉장히 소심한 모범생이었음을 알게 된다.

김승현: 설 합본호에 있어서 더 의미가 있었다.

유진아: <한겨레21> 기사 중 임팩트가 가장 컸다. 직접 엄마한테 전화했다가 괜히 한판 싸웠지만. 기왕에 다룰 거면 가족의 종류를 좀더 다양하게 했더라면 좋았겠다.

이미지: ‘미국 고문 우려국 지정’ 기사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런 기사를 실을 때 소개한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해주면 좋겠다.

이미지: 강준만의 세상읽기 ‘댓글 민주주의에 대한 착각’의 몇몇 주장은 동의할 수 없었다. 악플러들이 한국적 특수성인가. ‘인터넷은 대안매체라는 진보주의적 편견이 횡행’한다는데 정말 ‘편견’인가? 악플러들의 비판에 위축되는 지식인이 정말 지식인인가.

영어로 사회 가르치니 아예 모르더라

김지환: 697호 ‘영어에 점수를 매기지 마라’는 표지에서부터 고통이 느껴졌다. 초등학교를 캐나다에서 나와서 영어의 혜택을 많이 받은 사람인데도 영어 광풍이 이해가 안 가고 답답하다. 현재 영어를 많이 쓰는 무역회사의 가장 영어를 많이 쓰는 부서에 있으면서도 3년간 영어 쓸 일이 없었다. 사교육 시장을 만들기 위해 영어를 가르치는 게 아닐까 싶다. 대학생 때 사회, 과학을 영어로 가르치는 과외를 했는데 결국 학생에게 한국어 교과서를 읽어오라고 했다.

김승현: 90%의 국민이 영어 쓸 일이 거의 없으니 필요할 경우에 영어 전문 인력을 따로 키워야 한다는 부분이 가슴에 와닿았다. 영어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서울 중심주의를 더 공고히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지방에 살고 있는 나로선 불안했다.

김지환: 영어를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계급을 나누고 누군가를 평가하기 위해 배우는 것 같다. 게다가 미국식 영어만 강조한다. 최근엔 회사에서 최고경영자(CEO)가 영어 독서토론을 한다고 하더라. 직급별로 영어 잘하는 직원들을 모아서 영어책을 읽고 외국인 패널을 불러서 사장님과 함께 해야 한다. 직원들이 ‘이명박 때문’이라고 한다.

유진아: 소통의 도구를 넘어서 권력화된 영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좋겠다.

김지환: 특집 ‘의자는 하나’가 재밌었다. 기사를 재밌게 쓰려 노력했고 일러스트도 잘 어울렸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오는 얘기는 지루할 수 있는데 한명한명 캐릭터화가 되니까 관심이 갔다.

유진아: 라이프 & 트렌드 ‘환절기, 나만을 위한 보약 찾기’와 같은 기사는 별 도움이 안 된다. 결국 전문가와 상의를 해보라니, 이런 정보는 인터넷에서 더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미지: <한겨레21>과 조갑제의 만남이 신선했다.

김지환: 이 죽일 놈의 PC ‘내 검색어를 노리는 사람들’을 읽고 그동안 사기당한 것 같았다. 광고인 줄 모르고 즐겨 이용했는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참 많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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