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기 독자편집위원회의 활기찬 시작… 부화뇌동하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열려 있는 잡지를 바란다
지난 3월23일 열린 2기 독자편집위원회 첫 회의는 정말 떠들썩했다. 모일 때부터 웃음이 끊이지 않더니, 회의가 시작될 즈음에는 금세 누님, 동생 하는 사이들이 돼 있었다. 개인사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정일웅씨를 제외하고 9명이 모인 1차회의는 이렇게 시작했다. 48살의 류재수씨부터 멀리 부산과 김해에서 힘든 길을 온 대학생 김장효숙, 이희진씨, 자율학습을 마치고 늦게 도착한 여고생 이혜영양까지 모두 들뜨고 흥분된 표정이었다. 회의가 아니라 무슨 잔치 같다고나 할까. 급기야 몇명의 위원들은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해 회의가 끝난 뒤 노래방에서 ‘2차회의’까지 열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 톡톡 튀는 위원들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독자편집위원회는 앞으로 기사 평가와 제안 외에도 주제토론, 1기 위원들과의 만남 등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모였을까. 이제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나는 누구인가
변현단: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거쳐서 옛 민중당 기관지 만드는 일을 했었어요. 당이 해체되고 각자 제 살길을 찾아 흩어졌죠. 내겐 유목민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96년에 배낭을 메고 무작정 나가 유럽, 동남아시아 등을 돌아다니다가 97년 말 중국에서 외국어 학원강사로 일했어요. 귀국해서 친구의 선거운동을 해주고 2개월 밤낮으로 술만 먹다가 한국에서 심리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야간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낮에는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3일 정도 주부 인터넷 문화 강의를 해요. 내 이름은 나타날 현, 붉을 단이죠. ‘단’은 에너지를 뜻해요. 난 자유로운 영혼을 원하고, 항상 자유와 부자유의 길항 속에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천현주: 대학에서 홍보책자를 만들고 있어요. 주로 기획, 인터뷰, 사진촬영 등을 맡죠. 하니리포터 2기로 뽑혔는데 보내는 글마다 잘리기만 했어요. 2기 독자편집위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아이디어 제안 겸 몇 글자 올렸는데 뽑혀서 너무 기뻐요.
이희진: 김해가 고향이고 부산에서 대학을 다녀요. 고3 때 사회선생님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한겨레21>을 보기 시작했어요. 다양한 주제가 좋고 편협된 시각이 없는 것 같아요. 독자편집위원 응모광고를 보고 보자마자 딱 내 거다 싶었어요. 9KB나 되는 방대한 분량을 보냈는데, 담당자가 다 읽어봤는지 모르겠어요. 글이 좋아서 뽑힌 건지, 양이 많아서 뽑힌 건지. (웃음)
남우희: 저는 출판사에 다니기 때문에 출판사에 다니면서 고민했던 것들이 <한겨레21> 모니터에 생산적으로 접목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리말 사전을 만든 경험이 있어서 우리말 바로쓰기에 대해 많이 배웠는데, 그런 눈으로 잡지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이 일을 계기로 잡지뿐만 아니라 내게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구요. (미혼이냐는 질문을 받자) 미혼이라는 말은 싫어요. 미혼은 결혼을 할 수 있는데 아직 안 했다는 말 아니에요? 난 절대 결혼을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내 앞날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결혼을 하지 않을 것만큼은 분명해요.
김장효숙: 고고학과 3학년인데, 결혼은 아직 안 했어요. (웃음) 부산대학교 학보사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하고 있죠. 저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요. <한겨레21>이 페미니즘에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기획하는지 알고 싶어요. 이번에 지원하면서 남들보다 제안서를 충실히 쓰지 못했는데 왜 뽑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웃음) 그걸 만회하기 위해 집은 부산이지만 빠지지 않고 참석할 생각이에요.
류재수: 서울대에서 국제통상학 박사과정을 마쳤어요. 공직에 6년간 있었고 연구소에서 3년 정도 일했죠. 지금은 출판, 번역 일을 하고 있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현성: 광고대행사 3년차 직원이에요. 광고일을 하다보니 트렌드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잡지, 신문을 놓치지 않고 보게 됩니다. 대학 때부터 애틋한 감정을 가지고 있던 <한겨레21>을 최근에 다시 읽게 됐어요. 나는 지역적 문제보다는 AE의 기획 마인드로 크게 보고 싶어요. 잡지의 정체성을 위해서는 대중성이 필요하죠.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윤운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를 다닙니다. 지원하는 글을 하루 만에 완성했고 해보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돼서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제 개인적 역량으론 비판하는 게 부족한 거 같아 쉬운 아이템들을 제안하고 싶어요.
이혜영: 지금 19살이고 서울 송파구 영동여자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에요. 처음에 <한겨레21>에서 전화왔다는 얘기를 들을 땐 안 믿었어요. 이제 고등학생인데, 저의 말을 들어주려 할까 생각했죠. 맨 처음엔 겁부터 났지만 이제부터 열심히 해볼게요.
비판과 제안
김현성: 지금 현상 중에서 집단적 이민(엑소더스)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과거에 운동을 하고 조국을 사랑했던 30, 40대 분들, 특히 전문가 집단들이 왜 엑소더스의 중심층이 되었는지를 짚어주고 키핑 홈랜드 같은 것에 대한 캠페인으로도 확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변현단: 최근 국정원 문제라든가 의약분업 문제를 보면서 이건 세금문제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공적자금 문제 등 모든 문제가 세금과 관련되죠. 사회문제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세금이에요. 우리의 세금이 과연 어떻게 쓰여지고 있는가에 대한 맥을 갖고 접근을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합니다.
윤운규: 349호에 ‘신문방송 맞장뜨다’라는 표지가 나갔는데, 표현이 파격적이라 사실 좀 놀랐어요.
천현주: 전 그런 점이 <한겨레21>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자유롭고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잖아요. <한겨레21>만이 쓸 수 잇는 표현이죠.
남우희: 귀족적인 점잖은 표현을 기피하는 것은 옳지만 사전에도 없는 말을 쓰는 건 문제죠. 그런 건 구분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맞장’은 써도 좋지만 ‘무데뽀’는 좀 그렇죠.
이혜영: 2학년 때 안티조선에 대한 과제를 선생님이 내주셔서 자료를 찾다가 <한겨레21>을 알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신문을 완전히 믿었는데, 신문도 자사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모두 웃음)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능시험이 또 어려워진다고 하는데 그런 거 보면서 우리가 실험용 쥐 같다는 말들을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왜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안 일어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희진: 국·공립학교 문제 같은 걸 다뤄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공립학교를 다녔는데, 공립학교만의 문제도 있어요. 지난해에 우리 학교의 학생이 백혈병으로 사망했는데, 걔가 학교를 정말 다니고 싶어했어요. 그 학생 부모님들이 학교 운동장 한 바퀴 돌고 시신을 묻으러 가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고 학교 전체 학생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교장실까지 찾아가서 애원했는데도 교장선생님이 나와서 하는 말씀이 그러다 교육청에서 알면 어떻게 되는지 알기나 하냐고 하면서 공부나 하라고 그러더라고요. 공립학교는 너무 폐쇄적이에요.
김장효숙: <한겨레> <한겨레21> <씨네21>을 다 보는데, 서로서로 비교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중복되는 내용이 많은 것 같아요. 영화에 대해서도 내용이 <씨네21>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변현단: 병역거부 문제를 정말 인상깊게 읽었어요.
남우희: 나도 어머니가 여호와의 증인이셨어요. 그 기사를 보며 상당히 위안이 됐죠. 초등학교 때 종교 조사를 할 땐 상당히 고민했어요. 기타종교로 남아야 하느냐, 마느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종교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는 게 많을 텐데 그런 점을 다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마지막 한마디들
이혜영: 만화가 좋은데 보면서 쓴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게 정말 좋아요.
이희진: 얼마 전 우리 학교 교수님이 종이뭉치를 들고 오더니 주민번호와 연락처를 적어달라고 하시던데요. 환경복지단체를 만들려고 하는데, 나라에서 지원을 받으려고 회원을 늘리려 한다고요. 그런 단체들의 문제점도 한번 뒤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천현주: 기자가 뛰어든 세상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고 있는데, 여건과 환경이 된다면 독자가 뛰어든 기자의 세상 같은 것도 몇회 정도 특집으로 내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류재수: 우리가 해방된 지 50년 넘었는데 일본식 말을 쓰고 있어요. 일본식 어투를 바꾸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김장효숙: 제가 지방에 있다보니까 주류, 비주류 얘기를 하는데 지방의 소식들을 계속 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사람들 정서가 많이 매말라간다고 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잔잔하고 따뜻한 얘기들을 조금 더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우희: 저는 살아오면서 해방된 개인으로 풍부하게 살아가는 것과 남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문제를 고민해왔어요. 요즘 정리가 돼가는 것 같아요. <한겨레21>에 바라는 것도 그런 것이죠. 집단주의가 아니라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습은 무엇일까 살펴가는 일, 그러면서도 주체적인 삶을 생각해 보는 일 말이에요.
변현단: 남우희씨가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주셨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10대의 성문화는 바로 드러내야 한다는 점이에요. 10대의 성과 불륜 같은 일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사람들이 고민을 많이 합니다.
김현성: 광고일을 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많이 얘기합니다. 학교 다닐 때 교수님과 논쟁한 적이 있어요. 채만식론을 가르치는 분이셨는데, 그의 풍자에 대해 극찬을 하셨죠. 나는 30년대 풍자를 동시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었는가의 문제를 제기했어요. 풍자하는 대상이 고위층들이었고 교육수준이 낮았던 마이너리티들이 이해하길 바랐을 텐데, 과연 그들이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한겨레21>도 그런 오류를 범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한겨레21> 독자 중엔 고소득자, 고학력자가 많습니다.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윤운규: 지금 신문과 방송이 사이가 안 좋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한겨레21>이 이번을 계기로 TV 비평란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해요. 아줌마가 가지는 사회적 의미라든가 이런 걸 특집으로 다뤄서 좋았는데, 아예 고정란을 만들어준다면 좋겠어요.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