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리모컨을 찾아 에어컨을 켜야 할 정도로. 회사원, 논술학원 강사, 출판영화기획자 등 다양한 직업인들과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의 대학생들이 함께했다. 20대들이 열변을 토하자 30대들은 조용히 에어컨을 켠 뒤 제대로 된 반격에 나섰다.
손은영: 629호의 쓸쓸한 북극곰의 얼짱 각도 표지가 단박에 마음에 박혔다. 특히 ‘고래는 나의 운명’ 속 북극의 사진들은 서늘하고도 아름다웠다. 이누이트의 생활과 1002구역의 생태계 파괴에 대한 기사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명태는 돌아오지 않는다’의 강원도 고성 사례를 통해 국내 문제와 연결하는 것도 놓치지 않아 좋았다.
김영경: ‘지구는 하나다’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듯이 특히 ‘환경’ 문제는 세계인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제환경 문제를 표지이야기로 다룬 것이 좋았다.
장일호: 낯선 접이식 표지로 나왔는데 이 표지가 조금만 소홀히 보관하면 접혀버리고 너덜너덜해지더라. 원래 책을 깨끗하게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러면 마음이 아프다. 표지이야기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북극 기행문’ 같은 느낌이 더 들었는데, 나만 그런 건가.
신기수: 오랜 시간 준비한 대형 기획이었지만, 한가위에 왜 ‘추운 이야기’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한겨레21>을 봐왔는데 이번에는 한가위 느낌이 덜 났다. 환경오염이란 이슈 제기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말이다.
양희준 : 그즈음에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을 보았다. 정치인 앨 고어가 잘 드러나는 영화였는데,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하구나 하고 생각하던 차에 629호가 나와서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시너지 효과가 있었겠다고 생각한다.
이윤주 : 시의성을 생각하는 기사가 있고 아젠다를 세팅하는 역할을 하는 기사도 있다. 시의성은 같은 호에서 특집 기사들이 충족해줬다고 생각한다. 표지도 가끔 이렇게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로로 누운 한가위 특대호부터 새빨간 표지까지 이번 한 달간의 표지는 숨가쁘게 변화했다. 표지에 대한 호불호도 극명하게 나뉘었다.
손은영: 평소에도 노인 관련 기사를 보면 혼자 눈물을 찍으며 꼼꼼히 봐오던 터라 ‘리어카 할머니는 무엇으로 사는가’가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 뒤 숱한 리어카 할머니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곁에 존재하는데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그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나 같은 ‘눈먼 독자’들을 일깨우는 좋은 기사를 부탁한다.
장일호: 초점으로 다뤄진 ‘양심이 히노마루를 이겼다’를 유익하게 읽었다. 같은 주제인 630호 ‘사람이야기’ 이용석 교사의 변호를 자청한 정정훈 변호사의 이야기는 이 교사의 근황과 묶어 크게 다뤘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호의 이슈추적 ‘그라운드의 국가주의는 걷히는가’까지 그 꾸준한 문제제기를 칭찬해주고 싶다.
한글과 한국말의 차이에서 혼동 와
이윤주: 630호 국세청 표지 기사가 감정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류이근 기자와 김보협 기자의 편지글은 감정적이라서 충분히 재미있었다. 하지만 메인의 스트레이성 기사까지 그랬어야 했나 싶었다.
양희준: 이런 기사는 <한겨레21>만이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이었지만 그래서 더 기사가 마음에 와닿았던 게 아닐까 싶다.
신기수: 한글날에 맞춰서 나온 잡지이니만큼 특집이 시의성 있고 좋았다. 각국 언어를 돌아보는 시도가 좋았다.
이윤주: 여러 가지 언어를 다룬 것은 좋았지만 의도 자체가 불분명했다. 한글날에 언론에서 강조하는 과학성과 우수성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란 문자의 우수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나라와 비교할 것 없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우수성 강조를 말에 대한 것으로 확장해 비교하면서 혼동이 왔다. 글은 재밌게 보았는데, 다른 ‘언어’에 관한 성찰이니만큼 그 나라의 언어학자들이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손은영: 초점 ‘반기문 사무총장 박수만 칠 일인가’의 경우 기사를 좀더 늘렸으면 어땠을까. 정문태 기자답게 직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글이 돋보였지만 너무 감정적으로 치달은 마무리가 씁쓸했다. 너무 지면이 좁아서는 아니었을까. 후보로 거론됐던 수라끼앗 타이 전 부총리 등 나머지 후보들도 냉정히 타당성을 검토해 반기문과 비교했다면 더욱 담백한 기사가 됐을 듯하다.
김영경: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해 왠지 모를 경외감에 박수만 치고 있었는데, 이 기사를 읽고 다른 면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조성웅: 많기만 한 쌀 브랜드가 별다를 게 없다는 기사가 신선했다. 비단 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난립한 지역 축제, 영화제뿐 아니라 지자체 인증 농수산물 마크도 서로 비슷비슷하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것들을 더 폭넓게 다뤄봤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도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있구나
장일호: 도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한겨레21>의 표지를 좋아하지만 631호 표지와 제목은 그 ‘도발’이 과하지 않았는가 싶다. <한겨레21>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데 이번 ‘오르가슴’ 표지는 색깔과 제목이 너무 강해서 표지가 안 보이게 접어서 들고 다녔다. 진보와 보수를 단순히 대결구도로 놓고 공격적인 담론을 생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보수의 오르가슴’이라는 표지 제목과, 표지이야기의 연결고리가 헐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윤주: 표지가 보여주는 것이 내부 기사의 주제와는 다른 게 아닌가 싶었다. 당시의 이슈인 핵문제를 보수의 여러 가지 문제로 확장해서 다루었기에 그런 게 아닐까. 보수 전체에 대한 해부도가 그려졌으면 좋았겠다.
홍선표: <한겨레21>과 나의 다른 관점을 발견했다. 한반도 최초 핵실험에 대한 평가보다도 정치권과 보수단체에만 초점을 맞춰 아쉬웠다. 진보를 주장하면서 핵에 대해 용인하는 태도를 보이는 데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김영경: 특집 ‘새엄마·새오빠·새동생은 알고 있을까’는 접근하기 힘든 문제를 ‘아이’의 시각으로 친근하고 쉽게 끌어낸 것이 좋았다. 문제제기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결 방안까지 제시한 것에 대해 좋은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신기수: 이런 좋은 기획 기사가 표지에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아 묻힌 느낌이다. 표지 디자인을 표지이야기의 콘셉트로 전부 가는 것보다는 특집 기사도 함께 보여주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한다.
양희준: 교육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한영외고의 유학반’ 기사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한영외고에 유학반이 있는 것인가 하다가, 쪽기사를 보고 방과후 학교 형태로 유학반이 운영된다는 것을 알았다. 일반인이 잘 접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앞에 용어나 개념 정리라도 했어야 이해가 쉽지 않았을까.
홍선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영화 기사의 경우 소재는 신선한데 기사의 내용이 없지 않나. 패션기자가 쓰는 영화평이라는 특별한 느낌이 전혀 없었다.
손은영: 고농축 우라늄의 위험성을 다룬 과학 기사는 알려주려는 정보량이 너무 많아서 읽기에 부담스러웠다. 일반인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정말 어렵게 했다.
이윤주: 632호 특집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사를 보기 전에는 우리나라에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없는 줄 알았다. 신선한 기사를 예를 통해서 잘 풀어갔다.
김영경: 이슈추적 ‘금강산 관광 중단은 자학이다’는 시기상 예민한 문제를 다룬 기사다. 사설이 아닌 이상 기사가 객관성을 유지하고 상대적 개념을 같이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와 반대 입장을 가진 전문가 목소리도 실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손은영: 언론사도 정치적인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너무 같은 이야기의 반복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옆에 붙은 ‘일본 우경화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다채로운 기사가 좋았다.
비닐하우스촌 후속보도 부탁해요
홍선표 : <야만시대의 기록>에 관한 기사는 치졸하고 저급한 고문의 실체를 자세히 다뤄서 좋았다. 노무현 시대에도 고문이 있다니 충격을 받았다.
신기수 : 갑자기 이근안의 근황이 궁금했다. 요즘에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데 어딨는지 아나?
장일호: 인터넷 스타에서 다룬 ‘김본좌 패러디’는 소재 선택이 적절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겨레21>에서 다뤘기에 인터넷에서도 찾아보았다가 실망했다. 장난스러운 이야기들이지만 ‘야동’을 공급한 사람에 대한 옹호로만 비쳤다. 단순히 웃긴 소재가 아닌 ‘안아주기 운동’ 같은 따뜻한 이야기를 지면에 데뷔시켜주길 바란다.
손은영: 사람과 사회 ‘강남의 숙원이 이루어졌는가’를 통해 장지동 비닐하우스촌에 대해 알게 됐다. 매년 되풀이되는 방화는 새롭고도 가슴 아픈 현실이었다. 그렇게 사회적 약자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한겨레21>의 존재는 칭찬받을 만하다. 앞으로 후속 보도도 기대한다.
홍선표: 기자가 뛰어든 세상에서 물범 사냥에 나선 것을 보고 주제가 꼭 사냥이어야만 했을까 싶었다. 야만적인 행위에 동참하는 것이 북극에 간 취지와 맞지 않지 않다. 주민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잡겠지만 기자가 잡는 체험을 한 것은 유희가 아닌가. 피를 흘리는 사진까지 실은 것은 야만적이다.
신기수: 새책 소개에서 소외받는 인문학 서적들을 알려주는 배려는 좋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어려운 책들 위주로 소개하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된다. ‘에디터스 컷’의 경우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실감 나는 일상을 쉽게 풀어 보여줘 재미있다. 독자 코너를 즐겨 읽는데 앞으로 독자 참여와 관련해 인터넷 블로그를 소개해주는 코너를 마련하면 좋겠다. 온라인을 통한 글쓰기와 사이버 활동이 활발한 요즘, 잡지를 통해 온라인과의 만남을 연계하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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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느낌표 대신 물음표‘젊어진’ 13기 여덟 위원들의 한마디
김영경: 한겨레 독편위 활동이 하나의 ‘여행’같이 느껴진다. 용맹하고 대담하게 채찍과 당근을 잘 사용하는 무서운 독자가 되어 <한겨레21>이 진정 서민들에게 힘이 되는 매체가 되도록, 열띤 토론 뒤 사람들과의 소주 한 잔이 힘든 여행 속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도록.
손은영: 고등학교 때, 존경하던 선생님과 졸업식을 앞두고 사진을 한 장 찍었을 때의 우쭐함과 떨림. 첫 번째 모니터링을 하고 나서 그런 느낌이었다. 이제 바라만 보는 것에서 벗어나 얼치기 회초리로 꾸짖으려 한다. 그냥 허허 웃으며 넘어가도 될 일을 따끔한 충고로 다듬으려 한다. <한겨레21> 기자 못지않은 독자가 되도록.
신기수: <한겨레>는 내 삶의 기준점이자, 가치관의 등대이다. 독자편집위원회 활동을 통해 치열했던 80년대의 독자가 다시 찾는 잡지, 20대의 커가는 젊은이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가는, 시사잡지의 전범(典範)으로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 싶다. 또한 인터넷이란 새로운 매체와 잡지의 ‘행복한 만남’을 모색해보고 싶다.
양희준: 12기에 이어 두 번째로 독편위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다. 그동안 기사의 배치와 편집에 숨은 의도에 관해 많이 알게 됐지만, 앞으로도 기자와 편집자를 이해하려는 어설픈 짓은 안 하겠다. “재미없어서 읽다 말았다” “표지가 엉망이라 사보지도 않았다”는 말도 하는 그런 ‘순수 독자’가 될 것이다.
이윤주: 지난 12기 활동을 생각만큼 열심히 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에 13기에 다시 신청하게 됐다. 지역, 나이, 정치 성향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던 12기에 비해 13기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이 많다. 매번 자유로우면서도 열띤 토론이 될 듯하다. 조금은 보수적인 시각으로 보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겠다.
장일호: 디지털 세대라 해도 종이 매체를 좋아하고,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동안 <한겨레21>만의 다양하고 심층적인 기사들에 강한 느낌표를 찍어왔다면, 앞으로는 물음표를 그려가며 읽어가겠다. 그 물음표들이 더 좋은 <한겨레21>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성웅: 미디어는 ‘세상을 볼 수 있는 창’이라는, 흔해빠졌지만 기본에 충실한 생각을 갖고 기자가 되기 위해서 공부 중이다. 평소 진보적인 ‘마음’을 지녀왔지만 충분한 근거들은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겨레21>을 통해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쑥쑥 커가고 있다. 신나게, 열심히 하겠다.
홍선표: 평택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도 꾸준히 캠페인을 전개하는 <한겨레21>이 자랑스럽다. 개인적으로 <한겨레21>의 ‘연성화’를 지지하는 편인데 꼭 딱딱한 정치 기사가 아니더라도 채식과 마이크로 크레디트 기사처럼 충분히 진보적 가치들을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치열하게 비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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