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역습’ 동티모르 르포는 한국 언론에서 만나기 어려운 빛나는 기획… 헤노코 투쟁·강남 아줌마 대담도 신선… 정치·경제 기사엔 사진으로 숨통을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장마를 예고하듯 하늘이 흐린 6월29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는 <한겨레21>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12기 독자편집위원회의 세번째 모임이 열렸다. 독편위원들은 최근 발행된 615호 ‘이마트의 나라’의 산뜻한 표지에 후한 점수를 주면서 토론의 문을 열었다.
소비중독 심리학 등 더 분석했더라면…
위성은: 주 독자층인 30, 40대에 어울리는 표지이야기다. 공들인 티가 난다.
이번달 베스트로 꼽고 싶다. 자취생인 나 또한 기사처럼 할인점에서 단란한 가족상과 부딪치며 상대적 결핍감을 느낀다. 이마트의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최옥화씨의 사례는 비록 특수하나 설득력이 있다.
문수경: 까르푸, 월마트 등 해외 기업을 통해 할인점의 문제를 접하다가 국내 1위 기업 이마트의 현실을 접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환기 효과가 있다.
한상헌: 기사 방향을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할인점식 소비 행태의 부작용을 파헤치느냐, 왜곡된 지역 경제의 현실을 보여주느냐가 그것이다. 굉장히 다른 두 가지 얘기가 한 그릇에 담기면서 대안이 명확히 제시되지 못해 좋은 주제의 뒷심이 부족해졌다.
양희준: 이윤을 극대화하는 가격전략, 공간전략을 분석하고 소비중독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을 곁들였다면 더 흥미진진하지 않았을까. 아예 특정 할인점의 24시간을 통해 매장 구조와 판매 방식, 매출액 등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위성은: 특집에서 다룬 일본 지자체의 미군기지 문제 접근법은 의미심장했다. ‘헤노코 투쟁’ 기사는 평택시장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다. 본문에 언급된 ‘듀공’이 기사 말미에서야 멸종위기종이라 설명된다. 좀더 세심하게 기사를 작성해달라.
한상헌: 614호 ‘제국의 역습’의 정문태씨가 낸 동티모르 르포는 한국 언론에서 만나기 어려운 빛나는 기사다. 6월의 표지이야기 중 가장 돋보였다. 매체에 따라 사안의 기술 방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현 총리와 반란군 지도자를 직접 만나 사안의 핵심에 뛰어든 점이 돋보인다.
위성은: 정문태 기자의 질문과 설명은 날카롭고 정곡을 찌른다. 다만 분량이 부족하고 해설기사가 모자라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시각도 알고 싶고, 주변국과 동티모르의 국제관계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양희준: 월드컵 목전에 다소 돌출적으로 나온 613호 ‘엄마의 외출’은 월드컵 앞에서 목소리 커진 부자의 뒤에 가만히 앉아 계신 어머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아들의 자취집에 들렀다가 고향에 돌아가시는 어머니 손에 한 권 쥐어드렸다. 흥미로운 것은 내 어머니를 포함해 노년층 여성의 외출이 학습과 연관이 크다는 점이다. 상자기사로라도 노인복지관 프로그램을 짚어봄직했다.
한상헌: 도시의 노령층에만 집중했다. 청량리발 천안행 열차엔 노인이 가득해도 천안발 청량리행 열차는 비었다. 농촌, 소도시 노인은 외출을 고민할 짬이 없고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마을회관 중심으로 형성된 노인 문화에 한계가 있어 남성 노인들은 버스 정류장 근처에 모여앉아 있다.
한윤기: 나도 요즘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를 보면 더 안타깝다. 한국 사회의 남성들은 즐기는 법을 모른 채 나이가 들며서 소극적으로 변해간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라는 기사는 객관적 수치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느라 심도 있는 인터뷰 등으로 속살을 드러내주진 못했다. 45쪽의 ‘평등하게 늙어가기’는 젊은이에게도 의미 있는 기사다.
양희준: 특집 ‘여성 농업인, 그녀들이 아름답다’는 언론에서 보기 드문 소재를 다뤘는데, 여성 농업인의 질곡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곁들였다면 더 돋보였을 듯하다. 농림부 여성정책과장의 인터뷰는 제도 지원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별로 없었다. 612호 ‘몰락 그 뒤, 열린우리당 정계개편 시나리오’는 5·31 지방선거 다음날 사서 읽었다. 시기가 딱 맞았던 기사다. 이후 정국을 예측해볼 수 있었다.
월드컵 르포, 흥미로움과 아쉬움
나연자: 정치에 관심이 부족한 난 여전히 잘 정리가 안 된다. 나 같은 독자가 봐도 머리가 환해질 도표나 그림이 있으면 좋겠다. 또한 선거 때마다 후보 선택 기준으로 삼을 평가자료가 빈약하다. 뽑고 나서도 잘 뽑았는지 알 수 없고. 정당과 정치인의 선택에 길잡이 역할을 하는 기사를 생산해주길 바란다. 614호 정치 기사 중 ‘김근태, 비토세력과의 한판 승부’는 비유가 섞인 서술 덕분에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상헌: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한 기사들이 대부분이라 정치를 다룬 표지이야기는 잘 읽지 않게 된다.
위성은: 정치전문가들의 좌담과 강남 아줌마들의 갑론을박이 재미난 대조를 보였다. 주부들의 솔직한 담화가 신선하다. 이들이 강남 내에 자리하는 다양한 층위를 드러내진 못했지만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김경환 교수의 인터뷰도 신선했다. 강남 집값을 잡기보단 다른 쪽에 집중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비록 <한겨레21>의 시각과 거리가 있을지 몰라도 다른 시각에 대한 관용 또한 <한겨레21>의 장점이 될 수 있다.
이번달에 매주 나온 월드컵 특집은 생각보다 분량이 많았다. 두 명의 기자가 유럽에 간 것도 의외였다. 협찬이라 가능했던 것인지, 기업 협찬은 아무 조건 없이 이뤄지는 건지 궁금하다.
한상헌: 축구팬에게 재미있는 기사들이었다. 그런데 월드컵 기사를 담당한 필자 네 명의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노르웨이 평가전과 프랑스-멕시코 평가전에 많은 지면을 할애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
문수경: 차범근의 도시, 레버쿠젠이나 FC메스의 유소년 축구 관련 기사가 흥미로웠다. 월드컵 경기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유소년 축구 영역까지 다뤄 의미가 깊었다.
한윤기: 하지만 <한겨레21> 특유의 시선이 없어서 아쉬웠다. 축구를 싫어하는 유럽인과의 대화라든지, 남들이 다루지 않는 변두리 시선을 담아주길 기대했다. 사실 레버쿠젠 이야기는 포털에 가면 다 나와 있다.
나연자: ‘원샷’은 좀더 글을 짧게 해서 사진이 말을 하도록 하면 좋겠다. 613호 사람과 사회 ‘성폭력 웃으며 얘기해요’는 반가웠다. 성 관련 문제를 꾸준히 다뤄주기 바란다. 614호 경제 ‘사채의 피묻은 칼을 빼앗아라’는 더 쉽게 생활밀착형으로 풀어쓰면 좋지 않았을까.
문수경: 613호 라이프 & 트렌드 ‘스타일 여행 떠나볼까요’는 내용이 어렵지 않아 좋았다. 낯선 용어가 등장하는 다른 기사들에 비해 친절하다. 정치·경제 기사는 내용이 딱딱하니 사진을 많이 써서 숨통을 틔워주기 바란다.
한윤기: 613호 문화 ‘칠레 화상이 서울에 온 까닭은…’은 미술관 알레르기가 있는 이들에게 미술에 다가설 기회를 제공했다. 612호 움직이는 세계에서 다룬 관타나모 수용소 출신 파키스탄인 인터뷰는 한국 언론에서 보기 힘든 기사다. 615호 ‘최윤의 종이비행기47’의 ‘멈추지 못하는 겁쟁이’는 생산성에 대한 압박감을 지닌 현대인에게 사색을 주는 글이었다.
‘신세대 코드’기사엔 더욱 친절한 설명을
한상헌: 지역의 문화 정보를 다루는 코너를 만들 수 없을까. 지역 매체도 서울의 공연 소식을 다루는 실정이다. 또 615호 ‘노마디즘은 침략주의인가’ 같은 학술 기사를 종종 다뤄주길 바란다. ‘라이트 노블’의 인기를 다룬 문화 기사처럼 뉴미디어나 신세대 코드를 소개할 땐 마니아 집단의 자의식에 호소하기보다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듯 기술되면 좋겠다. 614호 53쪽의 책 광고는 ‘기사식 광고’라는 표기가 없었다.
양희준: 사진 기사 ‘펼쳐진 세상’의 인도편은 흥미로운 사진이었지만 뉴스적 가치가 다소 떨어졌다. 펼쳐진 세상도 원샷처럼 일관된 방향성이 필요하다. 6·15 축전과 관련된 미술 창작 집단의 사진은 원샷의 6·15 축전 사진과 소재가 중복됐다. 614호 이슈추적의 학도호국단 관련 기사는 <한겨레21>이 정보공개를 요청한 시점이 5월4일이고, 청소년단체의 국가인원위 진정서 각하 시점이 3월31일이라 헌법소원을 추진하겠다는 청소년 단체의 최근 입장을 감안해도 다소 생뚱맞아 보였다.
한상헌: 저출산을 다룬 614호 강준만의 세상읽기 ‘교육비 공포가 피임을 부른다’와 노땡큐 ‘콤플렉스’를 잘 봤다. 가끔은 저출산이 정말 문제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인구의 편중 현상이 더 심각한 문제 아닌가.
나연자: 괜스레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노동인구가 줄고 부양인구가 는다는 논리인데 제대로 계산해본 적이 있는지. 젊은 층의 취업난이나 중년층의 조기 은퇴가 더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까. 상상력을 가지고 고민해보기 바란다.
위성은: 주 독자층인 30, 40대에 어울리는 표지이야기다. 공들인 티가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