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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대추리와 말짱의 속살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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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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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이재호 20주기·체르노빌 르포·문화대혁명 모두 생생하네… 쟁점 재빨리 잡았지만 집중분석 없던 ‘19세 선거권’ ‘월드컵 자세’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 사진·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초여름의 공기가 감지되는 5월의 막바지, 12기 독자편집위원들이 두 번째 모니터링 모임에 참석했다. 5월29일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열린 토론 모임은 607호 ‘김세진·이재호는 아직도 묻고 있다’에 대한 위성은 위원의 감상과 함께 시작됐다.

말짱 비법, 서적 인용보단 인터뷰가 재밌어


위성은: 78년생인 나는 그들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식으로 기사가 전개돼 부끄러웠는데, 주변인들과 독편위 분들에게 물어보니 모르는 이가 여럿이다. 사건 개요를 설명해줬더라면 도움이 됐을 듯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의 죽음이 유효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나연자: 김세진씨의 아버지가 투사로 거듭난 과정과 학생운동에 몸담은 젊은이들의 심리가 서술된 ‘무서웠어요, 미안했어요’와 단숨에 읽힌 소설가 방현석씨의 ‘문무대의 겁없던 녀석들’은 생생한 묘사와 서술이 돋보였다.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는 반미 운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다만 ‘제국인’의 내막과 ‘이재호’의 이야기가 부족했다.

한상헌: 좌담회는 평택 사건,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과 맞물린 오늘의 한-미 관계를 조명하는 데 역부족이었다. 최근 좌담 기사들이 성향이 비슷한 패널들이 비슷한 말을 되풀이하거나 주제가 모아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윤주: 표지이야기와 함께 체르노빌 사태를 다룬 특집도 공들인 표시가 났다. 그러나 한 호에 묵직한 기획이 둘이라 읽는 부담이 가중됐다. 가벼운 기사와 적절히 배합해달라.

위성은: 체르노빌 현지 리포트는 필자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을 통해 다이내믹하게 서술했다. 이런 글이 많이 발굴되길 바란다. 그런데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대립이 첨예한 만큼 양쪽 논리가 함께 실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연자: 다른 매체에서도 원자력의 필요성을 자주 언급했다. 굳이 찬성의 논리를 반복할 이유가 없다. 기계적 균형을 좇다 보면 옳은 걸 말하기 어려워지고 진짜 필요한 이야기가 빠진다. 한쪽 향을 정하는 게 낫다.

한상헌: 각 사안의 성격에 따라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정당 간의 이해가 얽힌 사안에서 최근 한쪽 편을 편향되게 공격하는 듯해 보기 좋지 않았다. 에너지 문제처럼 효율성과 윤리성이 대립할 때는 또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윤주: 608호 ‘말짱의 비밀’은 말랑한 주제를 좋아하는 성향 탓에 눈이 즐거웠다. 한 달에 한 번은 이런 주제를 실어달라. 신동엽씨를 내세운 표지에 논란이 있는데, 신동엽씨가 연예인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그가 표지 이야기의 대표성을 띠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다. 본문의 말짱 대표들을 차라리 내세웠더라면.

김유홍: ‘말짱이 되려면 듣기 짱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놓치지 않았다. 다만 연장자에게 발언하기 힘들고, 사석에 비해 공석에서 말을 아끼는 우리의 말문화까지 살폈다면 좋았을 듯하다.

문수경: 참고서적 인용이 많아 다소 산만했다. 식상해 보일 수 있다. 발로 취재한 신동엽, 정재환 인터뷰가 더 맛깔스럽다. 범주를 넓혀 경제계의 말짱 안철수씨나 태극전사들의 말말말, 예비 직장인의 면접 노하우 등을 다뤘더라면 풍성했겠다.

최영재: ‘말하기는 학원도 춤추게 한다’는 특정 말하기 교실의 소개가 강조됐다. 학원이 대안이 아니라면 관계자·학부모의 의견을 인용하는 대신 대안 사례 발굴에 집중했다면 유용했을 것이다. 공교육 말하기 진단도 교수의 의견만 참조했다. 특집 ‘지방선거, 신나게 펑펑 쏩니다’는 돈이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인 선거와 결합해 씁쓸한 양극화 현상을 만드는 모습을 잘 설명했다.

한윤기: 특집 ‘인권영화제 10주기’ 기사가 돋보였다. 표지에서 신동엽 얼굴은 땀구멍까지 보였는데 특집 기사 제목은 보이지 않다니 아쉬웠다.

독일 의원과 18세 선거권 대표의 솔직담백한 글

이윤주: 609호 ‘대추리와 거짓말’은 매체 중 평택 관련 보도로 최고가 아니었을까. 한쪽에선 이전 반대단체들을 비판하고 보상금 문제를 언급하느라 바쁘고, 다른 쪽에선 대치 상황을 감정적으로 실시간 보도할 때 <한겨레21>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다뤘다. 쟁점 정리도 잘됐다. 진실 보도였다.

최영재: 정말 내가 그 기사를 읽지 않았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을까. 인권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많은 이들이 다친 평택의 그날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한윤기: 개인의 재산권 행사를 옹호하던 사람들이 평택 문제에서 강제수용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고압적으로 훈계하는 게 말이 안 됐는데, 그런 부분을 짚지 않아 아쉽다.

나연자: 사소한 것이지만 이전 관련 법안이 통과될 때 찬성표를 던진 13명의 의원 이름은 꼭 밝혔어야 했다.

최영재: 신문은 관심이 쏠리는 현안을 부각시키는 데 힘쓴다. 우토로, 새만금, 한-미 FTA, 평택 문제 등을 꾸준히 다루면서 좀더 생각하도록 도와준다는 게 잡지의 장점이다.

이윤주: 610호 표지이야기 ‘열아홉, 너의 능력을 보여줘’는 쟁점을 잘 포착했다. 그러나 선거 연령이 낮춰진 이유가 ‘세계적 추세’라고만 설명하는 듯해 그 이유가 궁금했다.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의 말을 더 들었더라면. 또 이들이 정치판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지 정교한 진단과 예측이 있었다면 기획이 더 탄탄해지지 않았을까.

나연자: 실제 중·고교 현장에서 어떻게 민주주의 교육이 이뤄져야 하는지 실천 방안이 보강되길 바란다.

최영재: 기사 제목, 사진, 그래프 등를 잘 활용했다. 독일 최연소 의원 ‘안나 뤼어만’의 편지에선 솔직 담백함이 느껴졌다. 김효선 한국YMCA ‘18세 참정권 확보를 위한 낭랑포럼’ 대표의 글이 학생과 유권자에게 널리 읽히길 바란다. 그러나 겉표지 사진의 색감이 어두웠다. 특집 ‘석유값이 콜라값, 그 어두운 미래’에선 그래프가 묻혔다. 오일쇼크의 역사를 더듬은 기사는 호기심을 끄는 서두와 깔끔한 마무리가 맞물려 유익했다. 한-미 FTA 특집 때처럼 가상 시나리오를 써보는 건 어땠을까.

한상헌: 611호 ‘월드컵에 대처하는 자세’는 실망스러웠다. 1986년부터 한 경기도 안 빼고 월드컵 한국전을 지켜본 축구광이지만, 축구 안 보면 왕따가 되는 지금 이 주제는 진부하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지적하지도 못했다.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공 싸움이라든지 축구가 신화화된다는 점을 보여줬더라면. 반면 ‘문화대혁명’ 특집은 이번달 본 기사 중 가장 돋보였다.

위성은: 축구라는 스포츠의 미학적 가치를 설명해주는 기사도 없었다. 축구를 잘 모르지만 협업 운동의 묘미가 느껴질 때가 있다. 비전문가들의 ‘나의 월드컵’에 머물면서 수준 있는 분석이 누락됐다.

이윤주: 중계식 보도를 피하고 소재를 선점한 건 좋았지만 ‘삐딱하게 보지 말고 그냥 즐길래’ 같은 거칠고 도발적인 글이 하나쯤 있다면 10개의 기고문이 한목소리로 들리진 않았을 것이다. ‘<한겨레21>이 월드컵에 대처하는 자세’도 궁금하다.

연재만화에 관심 집중, 빡빡한 지면 지적

한윤기: 옴니버스 연재만화를 좋아한다. 소득 격차 같은 적나라한 문제를 공감할 수 있게 생활 얘기로 풀어냈다. <습지생태보고서> 시절부터 작가를 좋아했다. 젊은 만화가 중에서 눈에 띄는 시사 만화가다.

한상헌: 하지만 비애와 연민으로 일관하는 듯하니, 여기에 골계미나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태 묘미를 살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나연자: 옛날을 떠올리며 즐겨 보고 있지만 내 아들딸이 반가워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쯤은 모두 봤으면 좋겠다. 내가 가르치는 시골 학교에도 생활이 어려운 애들이 많고, 만화를 볼 때마다 우리 반 애들이 보면 공감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상헌: 대전에 사는 지인이 기사식 광고를 보고 경제 기사로 착각해 대전 지역에 투자해볼까 생각했다고 한다. 분명하게 광고 표시를 해줘야 하지 않을까. 또 도전인터뷰에선 정치인 외의 인물을 만나고 싶고, 라이프 & 트렌드에선 신발이나 휴대전화 기사처럼 특정 업체를 대변하기보단 사물의 기호학적 의미를 파헤치는 글을 보고 싶다.

김유홍: 문화 기사들은 드라마·영화의 단순한 소개와 줄거리 요약을 되도록 줄이고 칭찬 혹은 비판의 강도를 높여주기 바란다. ‘조계완의 노동시대’를 노동절에 출근해서 읽으며 상념에 빠졌는데, 지면이 빡빡해 보기에 불편하다. 초점 ‘북녘 어린이들에게 학습장을!’은 특히 상자기사가 좋았다. 북에서 채팅을 하며 ‘ㅎㅎ’를 쓴다는 사실이 남다르게 보인다.

나연자: 서투르게 작성된 문장들이 자주 눈에 띈다. 외부 기고에서 종종 보인다. 필자에게 양해를 구해서라도 편집 과정에서 과감히 다듬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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